<화산지연리>
짹짹- 짹짹-
오랫동안, 무영은 가늠조차 하기 힘든 어둠 속에 파묻혀 있었다. 힘겹게 고개를 들었을 즈음, 저 광활한 무저갱 너머로 한 줌의 별이 보였다.
그저 달렸다. 온 힘을 다해 질주할 뿐이다. 어렴풋이 보이는 저 별을 손안에 움켜쥐기 위해, 그게 흡사 사랑하는 아내라도 되는 듯, 그녀에게 달려갈 열쇠라도 되는 듯이.
“무천이 형!”
“뭐, 뭐야?”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뜻밖에도 어린 시절의 비극이 막 시작되려는 때가 있었다.
그는 어느덧, 열 다섯 살 꼬마가 되어 있었다.
‘이건 또 뭐지?’
“뭐야… 십오 사제, 이번엔 또 뭐냐, 인마?”
“….”
무영은 고개를 들었다.
참 아프게 떠나 보내야만 했던 사람, 십사 사형 무천이 지금 바로 제 눈앞에 있었다.
“뭐야, 대체 무슨 일이냐니까?”
“….”
너무나 건강한 모습으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기가 막힌 무영은 절로 말을 잃었다.
‘내가 회귀하다니.’
회귀라니.
이세계의 기서(奇書)에서나 볼 법한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하지만 회귀 외에는 이 상황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무영은 쓰게 웃었다. 다시금 맞이한 이 생명의 기운을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고 나니, 이 기묘한 상황이 아주 조금 실감이 났다.
‘이건 회귀야….’
틀림없다. 급작스럽게 맞이해야만 했던 이별의 무대가 지금 이 배경과 참 흡사한 이유부터 상황은 이미 분명했다. 역시 자신이 회귀했기 때문이다.
“무천이 형….”
무영은 나직하게 십사 사형의 이름을 불렀다.
“왜 인마?”
눈앞에 선 십사 사형은 이상하다는 듯 또 미간을 구겼다. 그런 상대의 표정에 다시 또 먹먹해지는 가슴을 힘겹게 내리누르며, 무영은 애써 환한 목소리로 외쳤다.
“죽은 거 아니지…? 그렇지, 정말…살아 있는 거, 맞지!”
덩달아 머릿속에 피어나는 슬픈 옛 기억. 무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생각만으로도 핑 도는 눈물을 견딜 수가 없었다.
<대체 이것이 어찌 된 일이옵니까, 사부? 십사 사형이, 어째서.>
그 기억도 역시. 옛날,
무영의 열다섯 번째 생일날 찾아온 뼈아픈 슬픔이다.
“…….”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옵니까. 사부, 십사 사형이… 대체 왜?”
제 탓이 아니기만 바랐다.
그러나 쓰린 진실이 뇌리에 닿았을 때, 무영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십사 사형은 딱, 정월대보름을 기념하는 원소절 날밤 실종됐다.
무영과 마지막까지 같이 있었던 그는 저잣거리에 내걸린 풍등을 줍기 위해 먼저 자리를 떴다. 생일선물로 풍등을 갖고 놀고 싶다는 무영의 어린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였다.
무영은 기다렸다. 점점 멀어지는 상대의 뒷모습이 언제쯤 다시 돌아올까 고대했다. 그러나 십사 사형은 하늘에 뜬 풍등의 불빛마저 다 사라질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혹 사형이 길을 잃어버려서 먼저 본당으로 간 것은 아닐까?’
당시 무영으로서는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혼자 본당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하지만 손윗사형의 모습은 다음 날이 되어도 만나지 못했다. 그때의 어린 무영은 적잖게 당황했다.
“사부!! 큰일이 났습니다!”
결국 본당에 계신 사부와 사형들, 그리고 다른 어른들을 찾아 십사 사형이 사라졌다고 알렸다. 다 함께 수색에 나섰지만, 결국 살아서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십사 사형은 끝끝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그것도 무영과 헤어지던 바로 그 저녁에.
다른 사형들은 그때 두 아이가 헤어지지 않았다면 둘 다 끔찍하게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윗사형 무천의 몸에 남은 상처가 너무나 잔혹했기 때문이다.
소년의 슬픔은 그 무엇으로도 위로할 수 없었다. 그건 무영이 오랫동안 혼자 마음에 품고 있던 빚이었다. 그는 여전히 제 열다섯 살 생일날 밤에 벌어진 끔찍한 악몽을 잊지 못했다.
수십 년이 흘러, 화산을 떠나 이세계로 향하기 전까지도 줄곧.
결국 그 슬픔이 화를 불러오고 말았다. 사부의 표현에 따르자면 그랬다.
당시 성년이 되었던 무영은 바람 쐴 겸 홀로 장안성으로 향했다. 화려한 구중궁궐까지 가진 않더라도, 일국의 수도인 만큼 그곳에는 볼 것도 풍부하고 예쁜 여자들도 많았다.
“말도 안 돼…!”
하지만 당시 그의 눈에 들어왔던 문제는 따로 있었다.
십사 사형의 어린 몸을 잔인하게 짓밟은 그 상흔. 여전히 잊지 못했던 바로 그날의 상처. 그게 대체 어떤 잔악무도한 놈의 손에서 온 것인지 무영은 그날 장안성에서 목격했다.
‘그 칼자국은 분명, 황실 무관의 검에 베였을 때 나는 특유의 상처였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아내와 함께 이 땅을 아예 뜰 결심을 한 것은 반은 그 때문이었다.
화산파의 영광된 후기지수로서, 그는 사람을 죽였다.
도반의 복수를 하기 위해.
그렇지만 황실의 사람을 죽였으니, 이는 달리 쓰면 대역죄요, 모반의 죄였다. 무영으로선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
무천과 무영, 두 사람은 항렬자조차 같았다.
나이도 한 살 차이로 엇비슷했고, 덕분에 얼굴이 제법 닮았다는 말도 들었다. 누구는 친형제가 아니냐고도 물었지. 그만큼 각별했던 화산의 두 아이였다.
피범벅이 된 채, 사부의 품에 들려서야 십사 사형 무천은 원소절이 끝난 다음날 밤늦게 돌아왔다. 물론 그 낯에 생명의 흔적이란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어디서 무엇을 보고 대체 무슨 사특한 일을 겪은 걸까.
십사 사형의 까만 눈동자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눈조차 감지 못했다.
가엾은 내 가족. 그게 너무나 안타까웠던 무영은 온기조차 없는, 차갑고 딱딱한 나무토막 꼴이 된 십사 사형의 그 작은 손을 붙들었다. 잔뜩 충혈된 상대의 눈꺼풀을 감겨주려 애썼다. 그렇지만 그때조차도 손윗사형의 두 눈은 감기지 않았다.
그때의 한을 잊을 수가 없었다.
십사 사형의 그 초점 없던 까만 두 눈의 잔상을 도무지 뇌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그건 낙인이었다.
평생을 짊어져야 할 자신의 죄다.
그래서 그 형상이 머릿속에서 반복적으로 떠오를 때마다 무영은 눈물이 났다. 회귀해서 손윗사형의 생환을 다시 목도하게 된 지금에 와서도 쭉.
“아니, 이놈이……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야?”
아마 짐작조차 못할 것이다. 나름대로 얼마나 기가 막히는지, 십사 사형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곤 무영을 이렇게 타박했다.
“인마, 네놈 어디서 술지게미라도 잔뜩 퍼먹고 온 게야, 왜 뜬금없이 이상한 소리를 하니, 자꾸?”
그렇지만 연거푸 쏟아지는 손윗사형의 잔소리를 듣는 일조차 기분이 좋았다.
어쨌든 자신은 그 무시무시한 죽음을 뚫고서 다시 생환했으니까. 설령 그게 회귀라는 사술을 부린 결과라 할지라도.
“….”
그래서 무영은 말없이 멋쩍게 웃었다. 그러자 십사 사형도 황당하다는 듯 피식, 마주 웃어 보인다.
“됐다, 이놈아! 어쨌든 잔말 말고 썩 본당으로 돌아가기나 해. 오늘이 원소절이기에 망정이지, 여느 때 같았으면 너나 나 역시 모조리 통금시간에 걸리고 말았을 것이야!”
“그야말로 화산의 망신이요, 사형도 참, 알았다니까!”
바로 그 순간, 뒤따른 손윗사형의 너스레가 무영의 심장을 시리게 관통했다.
“으이구- 이놈, 사내자식이 입만 살아 가지고는 진짜! 인마, 생일잔치에 주인공이 쏙 빠지다니 어디 그게 될 말이더냐?”
생일잔치. 사형은 지금 분명, 생일잔치라고 말했다.
그 단어를 명백히 인지한 순간, 핏기 없는 얼굴로 무영이 다급하게 외쳤다.
“생일… 그거, 누구 생일인데?”
“어엉?”
“대체 오늘이 누구 생일이냐고!”
당황한 십사 사형은 눈을 끔벅이기만 했다. 조급해진 무영은 재차 그런 십사 사형의 멱살을 붙들고서 언성을 높였다.
“어서 말해!”
“야… 무영이 너야 말로 뭔 소릴 하는 거야?”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손윗사형은 이렇게 답했다. 절대로 해선 안될 답변을.
“오늘… 바로 네 열다섯 번째 생일이잖아!”
시발 진짜 망했다. 무영은 직감했다.
다시 없을 절망의 선택이 제 앞에 또 되돌아왔다.
‘젠장 맞아… 원소절이 열리는 정월대보름은 내 생일이잖아.’
어이가 없었다. 회귀한 충격에 제 생일날조차 까먹고 있었다니.
하지만 여기서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십사 사형, 우리 이럴 때가 아니야!”
“뭐?”
냅다 지른 외마디소리. 무영의 고성에 십사 사형 무천은 완전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인마, 십오 사제! 너 대체 뜬금없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어이가 없다는 듯 십사 사형 무천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를 응시하며, 무영이 재차 펄쩍 뛰었다.
“십사 사형, 우리 일단 여길 빨리 떠야 해! 한시라도 바삐 본당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풍등은 어찌 하구? 생일선물로 달라구 하지 않았어?”
갑갑했다. 어이가 없다는 듯 십사 사형은 고개를 저을 뿐이다.. 짜증이 난 무영은 결국 다시 큰 소리를 냈다.
“제기랄, 풍등 따위 필요 없어! 생일선물 같은 건 없어도 좋아, 그러니까 제발 좀!”
“야…… 무영아.”
무영을 바라보는 십사 사형의 눈이 느리게 끔벅거렸다. 아무래도 그는 저 막둥이가 부리는 뜻밖의 생떼가 진짜로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 듯했다.
“그래도 그렇지, 어찌 도반의 생일날에 내 아무 선물도 해주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이더냐?”
이윽고 예의 그 가벼운 너스레로 화산파의 열네 번째 제자인 무천이 말을 보탰다.
“혹시나 뭔 걱정일랑 하들 말구, 내 금방 다녀올 터이니.”
상대의 이런 반응에 기가 죽은 쪽은 다름 아닌 무영이다. 덩달아 그의 머릿속에서 점점 더 두려움이란 괴물이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젠장, 젠장!’
이대로는 다시 또 끔찍한 비극이 닥쳐올 것이다.
그것만은 막고 싶었다.
“안 돼, 십사 사형….”
“인마, 풍등 하나 줍는 게 뭐 오래 걸린다고 자꾸 생떼야? 고만 하고 먼저 들어가라니까!’
하지만 십사 사형의 마음은 확고했다.
이대로는 똑같은 사태만 반복될 뿐이다. 무영은 작전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잠깐만 기다려, 십사 사형.”
“엉?”
“그럼 나도 같이 가겠어!”
이 뜻밖의 선전포고가 퍽 기막히게 들린 걸까.
십사 사형이 어린 무영을 향해 피식, 웃었다.
“그래라, 정 그렇게 가고 싶다면 무영이 너도 같이 가자꾸나.”
이번 생에서만큼은 십사 사형이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
무영은 다짐했다. 이 회귀란 것 자체가 어쩌면 그러라고 하늘이 준 기회일지도 몰랐다.
잘못된 선택을 다신 반복하지 말라고.
일어나설 안 될 사건을 다신 겪지 말라고.
생각이 여기까지 닿은 무영은 조용히 숨을 죽였다.
“아이고, 녀석도 참….”
이놈의 십사 사형은 진짜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무영의 작고 동글동글한 얼굴을 여느 때와 꼭 같은 따스한 눈빛으로 응시하며 이렇게 또 신소리나 흥얼댈 뿐이다.
“하하… 이거이거, 스승님과 사형들께서 크게 화를 내시겠는걸-”
그렇게 두 아이는 함께 산 아랫마을로 내려갔다. 풍등을 줍기 위해서다.
날도 늦어 벌써 밤이 깊었다.
하늘도 온통 까맸고, 와중에 둥그스름한 노란 달이 흡사 백옥과도 같이 빛났다.
“와아아!”
내리쬐는 달빛을 따라 한참 동안 수풀 속을 질주하자, 때마침 저 멀리 마을 사람들이 내건 각양각색 풍등의 아롱다롱한 빛이 눈에 들어왔다.
한 해 가운데 가장 큰 보름달이 뜬다는 정월, 원소절(原宵節)의 어느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