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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Oct 10. 2021

第1章. 떠날 수 없었던 이유(4)

<화산지연리>

“십사 사형, 이쪽이야!”


저잣거리에 사람들이 가득 몰려 있었다. 모두 정월 명절을 기념하기 위한 자들이다. 바로 그 무리의 정중앙을 지나 무영은 빠르게 치고 달렸다. 


“오냐!”


그 뒤를 따라 십사 사형 무천이 바삐 질주했다. 군중들은 그 누구도 두 꼬마의 행동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쩌면 가랑이 사이로 조그만 다람쥐 새끼 몇 마리 지나가나 싶었을까.


“저기 좀 보게, 공주마마야!”


정확히 말해서, 무리의 시선은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그것도 아주 특별한 풍경이었다. 바로 정월 대보름을 맞아 이곳 화산 아래 마을까지 황실의 행렬이 당도한 것이다.


‘그래, 바로 여기서 무천이 형이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 행렬을 목도한 순간, 무영의 머릿속에 일련의 그림이 번뜩였다.


‘자, 이제 어떻게 십사 사형을 구할 것인가!’



“공주마마, 천세천세 천천세!”


황실의 행렬은 확실히 격이 달랐다. 다들 지엄한 궐에서 온 여인들이니 그 미색도 저마다 상당한 수준이다. 하다못해 가마를 호송하는 시녀와 시동 무리의 면면조차도 매우 화려하다.


“와아아!”


특히나 이색적인 볼거리는 따로 있었다.

행렬의 맨 앞에서 향불을 들고 아장아장 걷는 색목인 동자의 깜찍한 모습이다. 


흡사 여인의 것처럼 보이는 백옥같이 하얀 피부하며, 연지라도 얹었는지 새초롬하기 그지 없는 도톰한 앵두빛 입술도 심히 매혹적이다. 거기에 아이의 눈동자는 푸른 벽옥을 박아 넣은 듯 아름답게 빛났으며, 치렁치렁 늘어뜨린 머리칼은 또한 붉은색이었다. 


그야말로 이 행차의 화룡점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모습. 대중은 모두 그 자태에 말을 잃었다.


하지만 뭇 군중이 입을 모아 칭송하는 사람은 감히 이조차도 아닌 것이라.


“참으로 고우시구나!”


“아무렴, 제아무리 천하삼미(天下三美)라도 마마의 옥안 앞에서는 저자를 걷는 아낙들만도 못하고 말 것이야!”


“…….”


숙덕이는 군중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내용이 모두 그런 뜻이었다. 

저 꽃가마를 탄 여인의 미모가 심히 예쁘다. 심지어 경국지색의 미모로 유명한 세 명의 미녀, 천하삼미조차도 댈 수 없을 만큼. 


물론 무영은 이러한 좌중의 평가에 조금도 동의하지 않았다.


‘내 눈엔 런이 더 예쁜데….’


이유는 뻔했다. 그 천하삼미 중에 일미(一美)를 담당한 여인이 바로 무영의 아내, 일런이었기 때문이다. 무영은 덩달아 그리운 마누라의 아리따운 낯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 보니 세상 사람들이 런을 가리켜 천하삼미인지 뭔지라 불렀던 거 같기는 해.’


하긴 그랬다. 

무영은 졸지에 그런 천하의 가인(佳人)과 결혼까지 성공했다.


그로선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 제 생애의 모든 운을 여기에 써버렸다고 해도 좋을까. 혼례식을 올리던 날의 일조차 여전히 생생한 것은, 그 때문이리라.


“으으… 피곤하다.”


“…….”


당시 신방에 들어서자마자 무영이 뱉은 말이었다. 피곤할 수밖에 없는 하루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자 신랑 신부, 서로 절을 하세요.”


중원에서 전해오는 예법에 따라 두 사람이 올려야 할 식만도 4번. 여기에 색목인인 아내를 위한 배려로 무영은 욕심을 좀 더 부렸다. 


그녀의 고향, 시실리 섬의 방식을 따라 다시 추가로 한 번의 식을 더 올리자고 밀어붙인 것이다. 덕분에 두 사람 모두 종일 옷을 갈아입었다. 


다섯 번의 예식을 연이어 올리고 나서야 하루가 겨우 끝났다. 

당연히 녹초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수도 없이 서로 바라보고 절을 했던지 허리가 다 쑤셨다. 무영은 침상에 드러누워 짧게 한숨을 뱉었다. 신혼을 축하하기 위한 장식 따위 피곤한 마당에는 다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있잖아요, 무영.”


그러자 묵묵히 그의 곁에 앉아 있던 아내가 이렇게 운을 뗐다.


“역시 피곤하니까, 오늘은 그냥 잘 건가요…?”


“아, 아니! 설마 그럴 리가?”


무영은 펄쩍 뛰었다. 

물론 이대로 침대에 누워 잠들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첫날밤에 지쳤다는 이유로 아무런 짓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그의 안타까운 고민은 아랑곳하지 않고서 아내는 재차 이렇게 부연했다.


“졸리면, 먼저 자도 돼요. 나는 좀 더 여길 구경하다 잘게요.”


‘뜨아아….’


일런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저지른 몹쓸 실수를 자각했다. 일단 아내가 첫날밤부터 삐졌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무영은 기가 죽었다.


‘젠장… 연무영, 이 돌대가리야!’


피곤하다니 한숨이니, 바로 곁에 곱게 단장한 새색시를 두고 절대 해선 안 될 소리다. 게다가 자신은 아직 그녀의 얼굴을 가린 붉은 가리개조차도 벗겨주지 않았다. 


신부의 얼굴을 가린 붉은 천을 벗기는 일은 마땅히 신랑의 몫. 따라서 그는 새신랑으로서 할 일조차 하지 않은 셈이다.


“헤헤… 있지, 런.”


무영은 다시 아내를 응시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조금 지친 듯도 했지만, 그래도 붉은 주단 예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참 예뻤다. 무영은 아내의 얼굴을 가린 천을 향해 손을 뻗었다.


“…왜요?”


그 순간, 뾰로통했던 아내가 고개를 돌렸다. 무영은 그런 그녀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며, 얼굴을 가리운 천을 조심스럽게 벗겨 냈다. 그리곤 가볍게 입맞춤을 하며, 이렇게 속삭였다.


“잠시 나갔다 올까?”


“어머, 지금요?”


오로지 단단히 화가 난 아내의 마음을 풀어 주기 위해서, 무영은 그녀를 안아 들고서 화산 이곳저곳을 질주했다. 다행히 하늘에 걸린 달도 풍성한 만월인지라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세상에, 어머나!”


“자자, 일런, 꽉 붙잡아!”


“꺄아악!”


어쩔 수 없다. 이거야말로 딱히 가진 것 없는 그가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유희였다. 물론 신부의 발이 땅에 닿으면 안 된다는 옛 금기를 지키기 위한 이유도 있기는 했지만!


‘하여튼, 그랬었지….’


무영은 쓰게 웃었다. 이젠 모두 돌아갈 수 없는 과거로 흘러간 옛 추억에 불과했다. 


어차피 지금 이 자리에 아내는… 없었으니까. 

아직 그녀와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토록 사무치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무영은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휘장에 수놓아진 이름은, 안락공주(安楽公主)라, 천하를 평안케 하고 즐겁게 할 분이라는 뜻일 터!”


“아무렴, 과연 옳은 말이지!”


무영은 멀리 보이는 꽃가마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곁에 선 생원의 말 대로였다. 


가마의 양 옆을 호위하는 두 무관이 ‘안락공주’라고 적힌 휘장을 들고 서 있었다. 휘장은 값비싼 금색 비단에 빨간 색 실을 사용해 수를 놓은 모양.


그게 어찌나 화려한지 보는 내내 ‘대체 저게 얼마 짜리일까’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저기 좀 봐!’
”오오!”


행렬에는 이와 비슷한 규모의 꽃가마가 한 채 더 있었다. 아직 채 피지도 않은 연꽃의 모양을 흉내내기 위해 얇은 비단을 사용해 겹겹이 짜맞춘 꽃들이 가마를 장식하고 있었다. 


호송하는 무리의 위세도 굉장했다. 아마도 저건 좀 더 격이 높은 사람의 가마라고 짐작이 됐다. 


그 가마의 양 옆에도 무관들이 휘장을 들고 걸었다. ‘태평공주’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두 분 공주마마께서 올해에도 화산의 본당에 정월 축원과 더불어 공물을 바치기 위해 오셨다지?”


여하튼 그 말 그대로였다. 수도 장안에 있어야 할 황실 사람들이 이곳 화산까지 행차한 이유는 분명하다. 역시 옛날부터 내려오는 원소절 풍습을 지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얘야, 무영아.”


십사 사형은 그때까지도 완전히 넋이 나간 눈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홀린 듯이 지나가는 황실 행렬만 바라보고 있었다. 무심하게 주변만 살피는 무영과는 대조적이었다. 


십사 사형은 그런 무영이 신기하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이윽고 그가 한마디 했다.


“역시 올해에도 저 궁궐 귀인들께서 본당까지 다녀가셨겠지? 아쉽다, 근처에서 공주마마를 뵐 기회였는데!”


물론 무영으로서는 딱히 관심도 없는 이야기긴 했다. 그에겐 좀 더 집중해야 할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게, 십사 사형. 우리 둘 다 가까이에서 볼 기회를 놓쳤네.”


십사 사형의 말을 담담하게 받아넘긴 다음, 무영은 재차 주변을 살폈다. 대체 왜 그때 당시의 원소절 밤에 십사 사형이 황실 무관에게 사고를 당했는지 알아야만 했다. 


그리고 응당 그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끔 막아야만 했고. 

자신은 그러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다.


‘그래, 반드시…!’


시야를 가득 메운 황실 행렬을 샅샅이 눈여겨보며, 무영이 숨을 죽이고 있을 바로 그때였다.


“앗, 풍등이다!”


손윗사형은 때마침 하늘을 떠돌던 풍등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그는 참 진지하게 막내 도반 무영의 생일선물을 고르고 있었다.


“저게 좋겠는걸….?”


가장 크고 아름다운 등불 한 점.

흡사 보름달을 닮은 듯한 그 노란 불빛이 마침 딱 황실 행렬 근처에서 아른거렸다. 행차에 눈이 팔린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이 기회다.

화산파의 열네 번째 제자 무천은 빠르게 내달렸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금방 잡을 법도 한데, 으이구!”


몰려든 군중의 틈을 날렵하게 헤집고 다니며 무천은 달렸다. 그로선 저 큼직한 풍등이야말로 딱 안성맞춤이었다. 자신이 아끼는 귀여운 막내 도반에게 줄 생일선물로 더욱.


“으악!”


행차의 맨 앞에 서서 아장아장 걷던 색목인 동자와 부딪히기 전까지는, 아마도 그랬을까.


“잉, 십사 사형… 대체 어디 갔지?”


무영이 상황을 파악한 것도 딱 그 즈음이었다.

십사 사형이 사라졌다. 곁에 두고 감시해야 하는데, 아내 생각을 하느라 놓치고 말았다.


무영은 당황했다. 이대로 가면 똑같은 사고가 반복될 것이다. 

그런 직감이 막 왔다. 


무영은 재빨리 담 위로 올라갔다. 담벼락을 덮은 기왓장 위에서 까치발을 들고 주변의 형상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손윗사형을 찾아야 했다.


“십사 사형, 안 돼!”

“으으-“


제기랄, 상황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저 멀리 십사 사형 무천이 보였다. 아니 이 미친 놈이 큼지막한 풍등을 쫓아 지나가던 황실 행렬의 바로 코앞까지 뛰어들어간 상황이다. 무영은 기함했다.


“진짜 죽을라고 그러는 거야, 왜 그러냐고!”


와중에 이방인 화동과 십사 사형이 서로 부딪혀 나뒹굴었다. 그 와중에 풍등은 놓칠 수 없다는 듯, 십사 사형이 색목인 아이를 팽개치고서 풍등을 끌어안았다.


“아니, 이런 건방진 꼬마놈이…!”


“으, 으아아-”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이미 잔뜩 성이 난 황실 무관 하나가 검을 뽑아 든 직후.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황실의 행차 앞을 범하다니, 네놈은 필경 대역 죄인이 틀림없으렷다!”


“안 돼!”


무영은 외마디 소리와 함께 몸을 날렸다. 

숙덕이는 군중들의 어깨와 머리의 상투는 그저 발판일 뿐이었다.


“십사 사형!”


비록 지금의 그는 한 자루의 검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그저 어린애일 뿐이다. 하지만 저 참상이 반복되는 일은 용납할 수 없었다. 


기필코 막아야만 한다.

무영은 이를 악물었다.


‘이번 생에서는…..’


그랬다. 자신은 반드시 이 중원 땅에 남아 그녀와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십사 사형의 죽음이 재현되는 참상을 반드시 막아야만 했다.


“대역 죄인에게는 참형뿐이다!”


그 순간, 황실 무관이 허공을 향해 높이 검을 치켜들었다. 겁에 질렸는지 십사 사형은 바들바들 떨었다. 그 와중에도 무영에게 줄 풍등을 꼭 끌어안은 모양이 애처로웠다.


“기다려!”


무관의 등 뒤까지 바짝 추격한 무영이 허공으로 몸을 던지며 힘차게 외쳤다.


“죽엽수(竹葉手)!”


동시에 무영의 고사리손이 번뜩이는 빛의 궤적을 그리며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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