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을 앞두고 제 혈액검사 수치들을 자세히 분석하면서, 단순히 “LDL 콜레스테롤이 높아서”라는 설명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LDL 수치가 200을 넘는 사람들도 멀쩡히 지내는데, 160 정도의 저는 급성심근경색이 왔을까?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혈액 속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전쟁의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했다.
혈액은 단순한 액체가 아니다. 그 안에는 수십 종류의 단백질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복잡한 생화학적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특히 지단백질들 간의 상호작용은 마치 정교한 물류 시스템과 같아서, 이 시스템에 작은 불균형이 생기면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혈액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 구성을 알아야 한다. 지난 화에 이미 이야기했지만 다시 한번 복습하면,
혈액은 크게 혈구(45%)와 혈장(55%)으로 나뉜다.
혈구에는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이 있다.
백혈구는 우리 몸의 경비병이고,
적혈구는 산소 배달부이며,
혈소판은 응급 수리팀이다.
혈장은 91%의 물과 7%의 혈장 단백질,
그리고 2%의 염류로 구성된다
지단백질도 지난 화에 이야기했지만 한번 더 복습하면,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은 기름 성분이어서 물인 혈액에 그대로 녹을 수 없다. 마치 기름과 물이 섞이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다. 따라서 이들을 운반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포장재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지단백질이다.
지단백질들을 화물선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킬로마이크론: 음식에서 흡수된 지방을 운반하는 대형 화물선
VLDL: 간에서 만들어진 중성지방을 실어 나르는 중형 화물선
IDL: VLDL이 LDL로 변하는 중간 단계의 화물선
LDL: 주로 콜레스테롤을 운반하는 소형 화물선
HDL: 남아도는 콜레스테롤을 회수하는 청소선
지단백질들이 콜레스테롤을 간에서 다른 조직으로 운반하는 것과 달리, HDL은 남아도는 콜레스테롤을 다시 간으로 가져와서 처리한다. 마치 재활용 수거차처럼 불필요한 콜레스테롤을 회수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단백질들은 각각 고유한 단백질 껍질을 가지고 있다.
이를 아포지단백질이라고 부르는데, 마치 화물선의 선박 등록증과 같은 역할을 한다. HDL을 제외한 모든 지단백질은 ApoB라는 아포지단백질이 외곽을 둘러싸고 있고, HDL만 ApoA라는 특별한 아포지단백질로 둘러싸여 있다.
이 구별이 중요한 이유는 각 아포지단백질이 서로 다른 수용체와 결합하기 때문이다. 마치 각기 다른 항구에 정박할 수 있는 선박들이 서로 다른 신분증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ApoB를 가진 지단백질들은 주로 콜레스테롤을 세포 안으로 운반하는 역할을 하고, ApoA를 가진 HDL은 반대로 콜레스테롤을 빼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단순 콜레스테롤 수치가 아니라 ApoB를 가진 지단백질들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ApoB지단백이 더 문제라는 글).
우리가 흔히 HDL 콜레스테롤, LDL 콜레스테롤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콜레스테롤 자체는 모두 같은 물질이고, 다른 것은 그것을 운반하는 지단백질이다. 따라서 정확히는 HDL에 실려 있는 콜레스테롤, LDL에 실려 있는 콜레스테롤이라고 해야 한다.
콜레스테롤은 우리 몸에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다.
세포막을 구성하고,
호르몬을 만드는 원료가 되며,
담즙산을 만들어 소화를 돕는다.
문제는 양과 위치다.
필요한 곳에 적절한 양이 있으면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 물질이지만, 혈관벽에 과도하게 쌓이면 생명을 위협하는 독이 된다.
우리 몸의 콜레스테롤은 두 곳에서 온다.
하나는 음식에서 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간에서 직접 만드는 것이다.
하루에 약 1그램 정도의 콜레스테롤이 혈액으로 들어오고 나간다고 한다. 이는 작은 양 같지만, 매일 반복되면 상당한 양이된다.
음식에서 오는 콜레스테롤은 장에서 흡수되는데, 흥미롭게도 절반 정도만 흡수되고 나머지는 배출된다. 따라서 음식으로 콜레스테롤을 많이 먹는다고 해서 혈중 콜레스테롤이 그만큼 증가하지는 않는다. 이를 천장 효과라고 부르는데, 어느 정도 이상 섭취하면 더 이상 흡수되지 않는다.
오히려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포화지방이다. 포화지방은 주로 동물성 지방에 많이 들어있는데, 이것이 간에서 콜레스테롤을 만드는 과정을 촉진합니다.
따라서 콜레스테롤이 많은 음식보다 포화지방이 많은 음식이 혈중 콜레스테롤 상승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간에서는 전체 콜레스테롤의 약 70퍼센트를 만들어낸다.
음식에서 오는 것이 15퍼센트,
담즙이 재흡수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15퍼센트 정도다.
이 비율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간이 콜레스테롤 대사의 중심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내 관상동맥을 막았던 현상을 주치의는 동맥경화라고 했지만,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죽상경화증였다. 이 둘은 일반적으로 혼용해서 사용되지만 의학적으로는 다른 개념이다.
동맥경화는 분포 범위가 넓고 주로 퇴행성 섬유화로 인해 발생한다. 이는 주로 고혈압이나 노화로 인해 혈관벽이 전체적으로 두꺼워지고 탄력을 잃는 현상이다. 마치 고무줄이 오래 사용되어서 늘어나지 않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반면 죽상경화는 혈관의 일부분에서 국소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혈관벽 안쪽에 콜레스테롤 덩어리가 쌓여서 혹처럼 자라나는 것이다. 뇌경색과 심근경색은 모두 이 죽상경화증의 결과다. 혈관 전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부위에 집중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죽상경화증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재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론은 “손상에 대한 반응 가설” 또는 “염증 가설”이다. 이 과정을 8단계로 나누어 보면,
첫 번째 단계는 콜레스테롤이 혈관 내막에 쌓이면서 내막에 손상을 가한다. 정상적인 혈관 내막은 매끄러운 내피세포로 덮여 있는데, 높은 콜레스테롤 농도는 이 내피세포들을 손상시킨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내막에 쌓인 콜레스테롤이 혈액으로 다시 나가지 못하고 주위의 활성산소와 결합하여 산화가 시작된다. 이는 마치 철이 공기 중에서 녹스는 것과 같은 과정이다. 산화된 콜레스테롤은 정상 콜레스테롤보다 훨씬 독성이 강해진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초기 산화물질인 MM-LDL이 강력한 염증을 야기하여 혈관벽 세포들을 자극한다.
네 번째 단계에서는 이로 인해 내막의 투과성이 증가하고, 백혈구와 혈소판이 내막에 쉽게 달라붙게 된다.
다섯 번째 단계에서는 혈관 내 염증반응이 지속된다.
여섯 번째 단계에서는 염증세포인 단핵백혈구와 T세포가 혈관 내막 안으로 이동하면서 대식세포로 형질이 변화된다.
일곱 번째 단계가 핵심이다. 대식세포는 산화된 콜레스테롤을 세포 내로 섭취하여 거품세포로 전환된다. 이 거품세포들이 층을 이루며 퍼져나가면서 죽상경화반을 형성합니다.
여덟 번째 단계에서는 혈관 내에 축적되어 있던 콜레스테롤이 혈액 내로 방출되면서 죽상경화가 완성됩니다.
내가 경험한 급성 심근경색은 비교적 경한 협착이 있다가 죽상반이 갑자기 파열되는 경우다. 이는 두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발생한다.
첫째는 콜레스테롤 덩어리로 이루어진 무세포성 지방핵 주위에 대식세포와 T세포의 침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들 염증세포에 의해서 섬유질 덮개에 있는 근육세포의 이동과 증식이 억제되어 섬유질 덮개가 얇아지는 것이다.
결국 두께가 가장 얇은 부위에서 파열이 발생한다. 이는 마치 풍선에서 가장 얇은 부분이 먼저 터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문제는 이 파열이 언제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혈관 촬영으로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죽상반도 갑자기 터져서 혈관을 완전히 막아버릴 수 있다.
내 혈액검사 결과를 자세히 분석해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2019년 10월 건강검진과 2020년 3월 응급실 데이터를 비교해 보면,
총콜레스테롤은 229에서 238로 약간 증가했다.
HDL 콜레스테롤은 58에서 57로 거의 변화가 없다.
LDL 콜레스테롤은 오히려 160에서 152로 감소했다.
하지만 중성지방은 56에서 142로 무려 2.5배 이상 증가했다.
이 수치들만 보면 LDL이 감소했으니 오히려 좋아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총콜레스테롤에서 HDL 콜레스테롤을 뺀 non-HDL 콜레스테롤 수치를 계산해 보면 171에서 181로 10이나 증가했다.
이는 LDL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상경화를 유발하는 다른 지단백질들이 증가했다는 의미다. 특히 중성지방의 급격한 증가는 여러 가지 위험 신호를 함께 가져온다.
단순히 수치만 보면 중성지방 142는 정상 범위인 150 미만에 속한다. 하지만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56에서 142로 급격히 증가한 것은 매우 위험한 신호다. 두 번째 수치 자체는 정상범위이지만, 변화의 폭이 비정상적이다.
중성지방이 증가하면
여러 가지 연쇄반응이 일어난다.
첫째, HDL 콜레스테롤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다행히 내 경우에는 HDL이 크게 감소하지 않았지만, 이는 시간문제일 수 있었다.
둘째, LDL 입자의 성질이 변한다. 중성지방이 많아지면 작고 조밀한 small dense LDL이 많이 만들어진다. 이 small dense LDL은 콜레스테롤 함량은 낮지만 혈관벽 침투력이 훨씬 강해서 죽상경화의 주된 원인이 됩니다.
small dense LDL을 이해하기 위해 군사 작전에 비유해 보면,
일반적인 large buoyant LDL은 무거운 탱크와 같다. 화력은 강하지만 기동성이 떨어져서 혈관벽을 뚫고 들어가기 어렵다. 반면 small dense LDL은 가벼운 특수부대와 같다. 화력은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기동성이 뛰어나서 혈관벽의 작은 틈도 쉽게 통과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중성지방이 150–200mg/dl 이상 높아지면 갑자기 small dense LDL이 많아지는 것이 확인되었다. 내 경우 응급실 측정 기준으로 중성지방이 142였는데, 이는 위험 구간의 바로 아래였다. 하지만 5개월 전에는 56이었으므로, 이 추세가 계속되었다면 곧 150을 넘었을 것이다.
small dense LDL의 또 다른 특징은 콜레스테롤 함량이 낮다는 점이다.
따라서 small dense LDL이 많더라도 전체 LDL 콜레스테롤 농도는 오히려 낮게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이 내 LDL 수치가 160에서 152로 감소한 이유일 수 있다.
실제로는 더 위험한 종류의 LDL이 많아졌지만, 수치상으로는 개선된 것처럼 보인 것이다.
이제까지의 분석을 통해 발견한 중요한 사실이 있다.
여러 임상연구 결과에 따르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어도 심혈관질환 발생을 30퍼센트까지만 예방할 수 있고, 나머지 70퍼센트는 콜레스테롤 저하 치료에도 불구하고 질병이 나타난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가장 심혈관 환자가 많은 구간이 의외로 LDL 콜레스테롤 농도 120–160mg/dl 구간이라는 점이다.
바로 내가 속한 구간입니다.
이러한 분포도는 정상인의 LDL 콜레스테롤 분포도와 유사하다.
즉, LDL이 극도로 높지 않은 일반적인 사람들에게서도 심근경색이 많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53개국 3만 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실험 분석 결과, 이상지혈증이 전체 심장병 발병 인자의 49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상지혈증은 단순히 LDL이 높은 것이 아니라 고중성지방혈증, 저 HDL혈증, 정상 또는 약간 증가된 LDL 농도의 조합을 의미한다.
이 연구 결과는 기존의 콜레스테롤 관리 패러다임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LDL 콜레스테롤이 높은 것이 심혈관질환의 주요 원인인 것은 맞지만, 중성지방이 증가해도 심혈관계 사망률이 높아진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중성지방은 포도당과 더불어 중요한 체내 에너지원이다.
공복 시 포도당은 거의 독점적으로 뇌를 먹여 살리고, 중성지방은 다른 장기의 주요 에너지원이 된다. 간은 식사 사이 시간에 중성지방을 합성해서 각 장기에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이 시스템에 불균형이 생겼을 때다.
중성지방 자체는 물에 녹지 않으므로 물에 녹는 운반체인 지단백질 중 VLDL 등에 많이 존재한다.
VLDL은 혈액 속에서 IDL을 거쳐 LDL로 변화하는데,
이 과정에서 중성지방이 많을수록 small dense LDL이 많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LDL 콜레스테롤이 높지 않더라도 이상지혈증,
즉 LDL 콜레스테롤이 120–160mg/dl 구간에 있으면서
중성지방이 150mg/dl 이상이면
죽상경화증에 따른 급성 심근경색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것이 바로 내가 경험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복잡한 생화학적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나니, 역설적으로 매우 단순한 진실에 도달하게 되었다.
결국 모든 문제의 근원은 생활습관이었다.
과도한 칼로리 섭취,
포화지방과 정제된 탄수화물의 과다 섭취,
그리고 운동 부족이 이 모든 생화학적 불균형을 만들어낸 것이다.
혈액 속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전쟁을 이해하게 되니,
건강검진 수치들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우리 몸이 보내는 정교한 신호임을 깨달았다.
특히 절대 수치보다는 변화의 패턴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앞으로는 LDL 콜레스테롤만 보는 것이 아니라 중성지방, HDL 콜레스테롤, ApoB지단백 그리고 이들 간의 균형을 종합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런 지식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P.S. small LDL의 위험성에 대한 주장은 조홍근 교수의 글을 주로 참고하였습니다. 다만, 조홍근 교수는 최근 자신의 기존 small LDL주장에 오류가 있다고 유튜브 방송에서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 중성지방의 중요성에 관한 글(링크)
- 위 글을 쉽게 풀어쓴 블로그(링크)
- ApoB지단백의 문제성에 관한 글(링크)
주: 이 수기는 실제 급성심근경색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개인의 건강 상태는 사람마다 다르므로 구체적인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