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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만든 두 번째 심장

by 법의 풍경
가슴에 손을 얹고 심장박동을 느끼며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내 심장 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두 개의 작은 금속 망이 어떻게 내 생명을 지켜주고 있는 걸까? 그리고 매일 먹는 이 알약들이 내 몸에서 어떤 마법을 부리고 있는 걸까?


궁금증은 견딜 수 없었다.

퇴원 후 일주일, 나는 내 몸속에서 벌어지는 과학적 드라마를 이해하기 위한 탐구를 시작했다.



내 가슴속의 두 명의 수호천사

우선 스텐트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시술 직후 주치의는 내게 스텐트 길이가 애매해서

3cm 정도 스텐트 두 개를 삽입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퇴원 후 시술기록지를 검토하니 내 우관상동맥에는 4cm(직경 4mm) 짜리 하나와 2cm(직경 4.5mm) 짜리 하나의 스텐트가 삽입되어 있었다.


스텐트의 원리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마치 무너져가는 터널에 철근 구조물을 설치하는 것과 같았다. 혈관벽이 다시 막히지 않도록 금속 망으로 지지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해 보이는 이 구조물에는 놀라운 과학기술이 숨어있었다.


첫째, 재료의 과학이다. 스텐트는 주로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코발트 합금으로 만들어진다. 이 금속들은 체내에서 녹슬지 않고, 면역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며, 평생 그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낸다. 마치 인공관절처럼 몸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따라서 공항검색대를 지날 때 괜찮다!).


둘째, 구조의 과학이다. 스텐트는 풍선으로 확장시키기 전에는 지름 1–2mm 정도의 가느다란 관 속에 압축되어 있다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풍선의 압력으로 확장된다. 이는 마치 우산이 접혔다 펼쳐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셋째, 표면의 과학이다. 최신 스텐트들은 표면에 특수한 약물이 코팅되어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약물을 방출한다. 이를 통해 혈관벽의 재협착을 방지한다.


내 가슴을 만지며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작은 금속 망들이 혈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주고 있구나.



매일 아침의 작은 기적들


하지만 스텐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진짜 치료는 매일 먹는 약들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아스피린: 100년 된 기적의 약

첫 번째 약은 아스피린이었다. 100mg짜리 작은 알약. 이 약이 어떻게 내 심장을 지켜주는지 알고 나니 경이로웠다.


아스피린은 혈소판의 끈적끈적한 성질을 억제한다.

혈소판은 평상시에는 혈액 속에서 둥글둥글하게 떠다니지만, 혈관에 상처가 나면 즉시 활성화되어 서로 달라붙으면서 혈전을 만든다.


문제는 스텐트가 들어간 혈관에서도

혈소판이 “이상한 것이 있네?”라고 생각해서 달라붙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스피린은 혈소판에게 “진정해, 별 일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역할을 한다.


구체적으로는 혈소판 내부의 COX-1이라는 효소를 영구적으로 차단한다. 이는 마치 공장의 생산라인을 멈추는 것과 같다. 한 번 차단되면 새로운 혈소판이 만들어질 때까지(약 7–10일) 그 효과가 지속된다.


따라서 수술이나 내시경을 하기 위해서 일주일 약 복용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외상을 입어서 피가 나면 지혈하는데 남들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린다.



클로피도그렐: 이중 보험의 지혜

두 번째 약은 클로피도그렐(플라빅스)이었다. 이 약은 아스피린과 함께 “이중항혈소판요법”을 구성한다.

아스피린이 혈소판의 한 가지 경로를 차단한다면,

클로피도그렐은 완전히 다른 경로를 차단한다.

마치 문에 자물쇠를 두 개 달아놓는 것과 같다.

하나가 고장 나도 다른 하나가 지켜준다.


클로피도그렐은 ADP 수용체를 차단한다.

ADP는 혈소판을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신호물질인데, 이 신호를 받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마치 혈소판의 귀를 막아버리는 것과 같다.


흥미로운 것은 클로피도그렐이 프로드럭(prodrug)이라는 점이다. 약을 먹으면 간에서 활성형으로 바뀌어야 효과를 나타낸다. 마치 변신하는 로봇 같다.


(프로드럭이란 몸속(특히 간)에서 대사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활성형(active form)으로 변신해서 작용하는 약을 뜻합니다.)


스타틴: 콜레스테롤 공장의 문지기

세 번째 약은 아토르바스타틴(리피토)이었다.

이 약의 작동 방식을 알고 나니 정말 정교한 과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틴은 간에서 콜레스테롤을 만드는 핵심 효소인 HMG-CoA 환원효소를 억제한다. 이는 콜레스테롤 생산 공장의 제일 중요한 기계를 멈추는 것과 같다.


하지만 여기서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간세포는 “콜레스테롤이 부족하네?”라고 생각해서 혈액에서 콜레스테롤을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 LDL 수용체를 증가시킨다. 마치 부족한 원료를 밖에서 더 많이 가져오려고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혈중 LDL 콜레스테롤이 크게 감소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스타틴이 이미 형성된 동맥경화반을 안정화시킨다는 점이다.

불안정한 플라크가 터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이다.


내 경우 LDL 수치가 152에서 90 이하로 떨어뜨리는 것이 목표였다. 매일 이 작은 알약이 내 간에서 밤낮없이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고마웠다.


스타틴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약 중에 하나라고 한다. 찾아보니 스타틴은 Top 300 Drugs of 2023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65세 이상 미국 성인들은 절반이 먹는다고 한다.



ACE 억제제: 혈압의 조율사

네 번째 약은 ACE 억제제였다.

이 약의 작동 원리는 정말 영화 같았다.


우리 몸에는 레닌-안지오텐신-알도스테론 시스템이라는 복잡한 호르몬 체계가 있다. 이는 혈압을 조절하는 정교한 시스템인데, 마치 자동차의 크루즈 컨트롤과 같다.


ACE 억제제는 이 시스템에서 안지오텐신 전환효소(ACE)를 차단한다. 그러면 안지오텐신 II라는 강력한 혈관수축 호르몬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안지오텐신 II가 없으면 혈관이 이완되고, 혈압이 내려가며, 심장의 부담이 줄어든다. 또한 심근경색 후 심장 리모델링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이는 마치 과로에 시달리는 직장인에게 업무량을 줄여주는 것과 같다. 심장이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P.S. 지금은 아스피린과 스타틴 계열 2개만 복용하고, 용량도 최소한으로 줄었다. 더 줄이고 싶어서 주치의에게 문의했으나 절대 안 된다고 한다. 쩝..)



내 혈액 속의 미시 세계

약물들의 원리를 이해하고 나니,

내 혈액 자체가 궁금해졌다.

피 한 방울 속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혈액: 생명의 강


혈액은 단순한 빨간 액체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수십 종류의 세포들과 단백질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복잡한 생화학적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었다.


혈액은 크게 혈구(45%)와 혈장(55%)으로 나뉜다.

혈구에는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이 있다.

백혈구는 우리 몸의 경비병이고,

적혈구는 산소 배달부이며,

혈소판은 응급 수리팀이다.


혈장은 91%의 물과 7%의 혈장 단백질,

그리고 2%의 염류로 구성된다. 이 혈장 단백질 중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지단백질이었다.



지단백질: 혈관 속의 화물선들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은 기름 성분이어서 물인 혈액에 그대로 녹을 수 없다. 마치 기름과 물이 섞이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다. 따라서 이들을 운반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포장재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지단백질이다.

지단백질들을 화물선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킬로마이크론: 음식에서 흡수된 지방을 운반하는 대형 화물선

VLDL: 간에서 만들어진 중성지방을 실어 나르는 중형 화물선

IDL: VLDL이 LDL로 변하는 중간 단계의 화물선

LDL: 주로 콜레스테롤을 운반하는 소형 화물선

HDL: 남아도는 콜레스테롤을 회수하는 청소선

내 경우 문제가 되었던 것은

중성지방의 급증(56→142)이었다.



내 심장의 현재 상태

퇴원 후 2주째, 심장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화면에 나타난 내 심장을 보니 신기했다.


검사하는 의사가 설명해 주었다.

박출률이 55%네요. 정상 범위입니다.

박출률(Ejection Fraction)은 심장이 한 번 수축할 때 좌심실에 있던 혈액 중 얼마나 많은 양을 내보내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다. 정상인의 경우 55–70% 정도이며, 이 수치가 낮을수록 심장 기능이 떨어졌다는 의미다.

“여기 보시면, 하벽 쪽 움직임이 조금 떨어져 있어요.”


화면에서 심장의 일부분이 다른 부위보다 약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관상동맥이 막혔던 부위에 해당하는 심장근육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양호합니다.
스텐트 시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서 추가적인 손상을 막을 수 있었거든요.”

만약 시술이 늦어졌다면 더 많은 심장근육이 괴사 되어 박출률이 크게 떨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골든타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회복의 과학: stunned myocardium

주치의가 흥미로운 설명을 해주었다.

“한동안 피를 공급받지 못한 심장근육은 즉시 회복되지 않습니다.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부분과 이미 죽어서 살아날 수 없는 부분으로 나뉩니다.”


이를 의학 용어로는 ‘stunned myocardium’, ’hibernating myocardium’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마치 동상에 걸린 조직이 일부는 회복되고 일부는 괴사 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었다.


심장근육세포는 한 번 죽으면 재생되지 않는다.

하지만 완전히 죽지 않고 기절 상태에 있는 세포들은 적절한 치료와 재활을 통해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

“살아날 수 있는 부분은 약을 잘 복용하고 1년 정도 재활을 성실히 하면 회복될 수 있어요.”


희망적인 소식이었다. 내 심장의 일부가 아직 회복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약물의 부작용과 나의 협상

하지만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매일 네 가지 약을 먹다 보니 부작용도 경험하게 되었다.


가장 힘든 것은 두통이었다. 혈관확장제 때문에 뇌혈관도 함께 넓어져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했다. 심장을 치료하기 위한 약이 머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소화불량도 있었다. 아스피린이 위벽을 자극하기 때문이었다. 위산 억제제를 함께 복용하라고 했지만,

약이 또 늘어나는 것도 부담이었다.


가끔 어지러움도 느꼈다. ACE 억제제 때문에 혈압이 조금 떨어진 것 같았다. 갑자기 일어설 때 특히 심했다. 그리고 스타틴으로 인한 엉덩이 근육통도 있었다.

“이런 부작용들이 계속되나요?”
“처음 몇 주간은 몸이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점차 나아질 거예요.”


몸과 약물 사이의 협상이 진행 중이었다.

내 몸은 이 새로운 화학물질들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약물들은 내 몸을 치료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과학에 대한 새로운 감사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나니,

과학에 대한 새로운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100년 전에 태어났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스텐트도 없었고, 이런 정교한 약물들도 없었으니까. 심전도로 진단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심장 스텐트 시술이 일반화된 것이 2000년대 이후이니, 그전에는 가슴을 열고 자신의 다른 혈관을 떼내어 심장의 관상동맥을 우회하는 연결로를 만드는, 정말 고위험의 대수술이 필요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스텐트 시술이라는 간단한 시술로 살 수 있다. 허벅지 안쪽 또는 손목을 통한 스텐트 시술, 수십 년간 축적된 의학 지식과 기술이 나를 살려주었다. 수많은 과학자들과 의사들의 연구 결과가 내 몸속에서 실현되고 있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치료가 내 몸의 자연스러운 치유 과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스텐트는 혈관을 지지해 주고,

약물들은 몸의 회복을 도와주고,

내 몸은 스스로 치유되고 있었다.



내 몸의 새로운 파트너들

이제 나는 스텐트 두 개와 네 가지 약물이라는 새로운 파트너들과 함께 살아가야 했다. 처음에는 이질적으로 느껴졌지만, 이제는 내 몸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아침 약을 먹을 때마다 생각했다.

이 작은 알약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내 혈관에서,

내 심장에서, 내 간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그리고 내 가슴에 손을 얹고 심장박동을 느낄 때마다 생각했다. 이 작은 금속 망들이 내 생명의 강물이 막히지 않도록 지켜주고 있다고.


과학이 만든 두 번째 심장.

그것은 기계가 아니라 지혜였고,
냉정함이 아니라 따뜻함이었다.
과학이 내 몸을 고쳤다면,
이제는 내가 내 인생을 고쳐야 할 때였다.


독자 이해도 체크: 심근경색 후 치료는 스텐트 시술과 약물요법이 핵심입니다. 스텐트는 혈관을 물리적으로 지지하고, 항혈소판제는 혈전 형성을 방지하며, 스타틴은 콜레스테롤을 관리하고, ACE억제제는 심장 부담을 줄입니다. 이들이 상호작용하여 재발을 방지하고 심장 기능 회복을 도와줍니다. 부작용은 있지만 생명을 지키는 필수적 치료이므로 의료진과 상의하여 적절히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재발하는 환자들은 마음대로 약 복용을 끊고 예전 같은 식습관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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