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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색자 Aug 23. 2020

1990년, 전세 대란

1990년 4월, 지하 단칸방에 세 들어 살던 30대 가장이 집세를 올려주지 못하면 집을 비워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에 더 이상 이사할 곳을 구할 수 없다면서 가족과 함께 자살을 기도한 사건이 일어났다. 유서에서 집세를 마련하지 못해 쫓겨나는 비애를 자식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그리고 서민들에게 좌절감만을 안겨주는 정책담당자들에게 하느님께서 제발 지혜를 줄 것을 기도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큰 집으로 이사를 가자고 남편을 조르던 그녀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전국의 전셋값은 88 올림픽 전후로 크게 올랐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4년간 86% 폭등했다. 집값(68%)보다 전셋값이 20% 포인트 더 올랐다. 1987년 국제수지 흑자와 88 올림픽 이후 통화량 급증에 따른 물가 오름세 심리 확산에 따른 것이었다. 전셋값을 잡겠다며 노태우 정부는 1989년 주택임대차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는 주택임대차 보호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집주인들은 2년 치 보증금을 한꺼번에 올려버려 지하실, 달동네,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는 세입자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두 딸들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준비를 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두 딸들이라고 전셋값을 못 구해 쫓겨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항간에서는 정부의 고위 관리들이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면,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셋값을 그냥 보고만 있겠냐는 말도 떠돌았다.


그림 1. 1980-90년대 서울 아파트 전세가 상승률

출처: 헤럴드경제(2020년 6월 10일)


그녀는 같은 동 옆 라인에 사는 404호 형님을 찾아갔다. 과천에 이사를 온 뒤, 같은 동에 사는 몇몇과  제법 친하게 되었다. 404호 형님은 그중 나이가 제일 많았다. 말이며 행동이 거침없었던 404호 형님은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모두들 어려워했다. 404호 형님의 남편은 일본계 외국인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집안에는 출장 때마다 사온 특이한 물건들이 많았다. 유독 형님네 커피가 맛있다며, 동네 아주머니들은 404호로 몰려들었다. 게다가 404호 형님의 입담이 얼마나 좋았던지 말로 당할 이가 없었다. 오빠만 둘 있었던 그녀는 친언니처럼 404호 형님을 따랐고, 형님도 다른 이들보다 그녀를 유독 아꼈다. 형님은 집을 넓힐 것이 아니라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하나 더 사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요즘 얘기되는 '갭 투자'를 하라고 했다.


그간 404호 형님이 27평 아파트에 사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물론 두 아들은 모두 독립해서 따로 살고 있었고, 막내딸과 두 내외가 살기에 아파트가 작지 않았다. 그래도 대게는 자식들 시집, 장가를 앞두고 빚을 내서라도 큰 집으로 이사를 하곤 했다. 자식들 기 죽이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404호 형님은 경제적인 여유가 제법 있었지만 돈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남들 눈을 의식하지도 않았다. 겨울에도 홑치마 하나로 버텼다. 자기는 몸에서 열이 펄펄 난다며 내복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했다. 남편을 위해 근사한 양복을 계절마다 해주었지만 막상 본인을 위해서는 그 흔한 양장 하나, 핸드백 하나를 사질 않았다. 어쩌다 시내에서 친구들을 만나 쇼핑이라도 하고 오는 날이면 은근히 404호 형님을 마주칠까 봐 눈치를 봤다. 쇼핑백을 보자마자 그렇게 헤프게 돈을 써서 어떡하냐고 핀잔을 줄 게 뻔했다. 친한 이들은 급전이 필요하면 늘 형님께 도움을 구했다. 형님은 이미 두 아들과 딸 앞으로 아파트 한 채씩을 장만해 두었다며, 우리나라에서 부동산만큼 확실한 투자는 없다고 했다. 집 한 채씩 해주었으니, 부모 할 도리는 다 했노라고, 나머지는 지들 몫이라고 했다. 딸내미 시집가고 나면 이 아파트에서 두 내외가 계속 살 거라고 했다. 과천만큼 좋은 곳이 없다면서 말이다. 역시 형님은 이재에 밝았다.


그날부터 그녀는 부지런히 동네 부동산을 쫓아다녔다. 과천으로 이사 오면서 생긴 여유자금과 큰 평수로 이사를 가려고 지난 몇 년 동안 모아놓은 돈을 다 끌어모아 같은 단지 25평 아파트를 전세 끼고 샀다. 아파트 계약을 다 할 때까지도 집을 뭐하러 또 사냐고 잔소리하는 남편과 계약서를 손에 들고 부동산을 나서는 기분이 좀 새로웠다. 집이 두 채가 생긴 거다. 부동산 사장님이 이제 부자가 될 거라고 그녀를 보며 빙그레 웃으셨다. 정말이었다. 2년마다 오르는 전셋값만 모아도 금세 부자가 될 것 같았다. 대한민국에서 집값이 어디 떨어지는 법이 있던가! 치솟던 전셋값이 안정화된 것은 1990년 말이 돼서였다. 정부의 주택 200만 가구 공급을 위한 신도시 계획이 추진되자 집값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전셋값 상승률도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대한민국의 부동산 상황은 30년이 지난 2020년에도 여전하다. 지난 7월 29일 정부는 계약갱신청구권제(임차인 보호기간을 2+2년으로 연장), 전월세 상한제 (임대료 상승폭 연 5%로 제한), 임대차 신고제(주택 임대차 계약 시 30일 이내로 관청에 신고해야 할 의무) 도입을 골자로 하는 주택임대차 보호법 및 부동산 거래 신고법 개정안, 소위 '임대차 3 법'을 발표했다. 임대차 3 법 발표 이후, 실거주 의무 강화 등 규제 역풍에 수억 원씩 오른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하고 서울을 떠나는 '전세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출처: 서울경제(2020년 8월 6일)

서울의 전셋값은 61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전세대란이 일어났던 2013년 이후 최장 기록을 보이고 있다. KB 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이 5억 1011만 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5억 원을 넘겼다. 경기도 주요 도시의 전셋값이 덩달아 폭등하고 있다. 서울로 출퇴근이 편리한 수용성(수원, 용인, 성남시)이 전셋값 상승을 주도하고 있고, 비교적 저렴한 전세가 많았던 인천도 급등하고 있다. 매매가의 상승폭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안 그래도 뜨겁게 불붙고 있던 대한민국의 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임대차 3 법의 역풍으로 불길이 더욱 거세게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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