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채권관리사입니다

채권관리사

by 남지만 작가


채권관리사라는 직업은 세상에서 늘 숨어 있는 그림자 같은 자리다.
은행이나 카드사, 신용정보사로부터 위임을 받아 빚을 대신 받아주는 일을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은 그 존재조차 모른다.
빚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사정이기에, 그 일을 맡은 사람들 또한 ‘음지’라 불리는 곳에서 살아간다.

사실 우리의 인생은 크고 작은 채무로 가득 차 있다.
대학을 다니며 얻은 학자금 대출, 신혼집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한 대출, 내 집을 갖기 위해지는 주택 담보, 그리고 생활 곳곳에서 쓰이는 카드 할부까지.
이름만 다를 뿐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빚과 함께 살아간다.
빚이 전혀 없는 인생은 드물다.
그래서 채권관리사의 일은 결국 우리 모두의 삶과 얽혀 있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빚에 대해 말하기를 꺼린다.
빚은 곧 실패의 낙인처럼 여겨지고, 채무자는 어쩔 수 없이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난다.
그래서 채권관리사를 만나는 순간, 채무자는 마치 삶 전체가 평가받는 듯한 굴욕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 앞에서 채권관리사가 어떤 태도로 다가가느냐는, 단순히 ‘돈을 받아내는 기술’ 이상을 의미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절망 속에서 작은 숨구멍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무심한 태도 하나가 사람을 끝없는 낭떠러지로 밀어 넣을 수도 있다.

채권관리사라는 직업은 안정적이지 않다.
계약은 6개월마다 갱신되고, 수수료는 제각각이다.
오늘은 웃을 수 있어도 내일은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을 수 있다.
회사는 늘 그들을 ‘독립사업자’라고 주장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정규직 못지않은 지시와 감독이 따른다.
그래서 종종 퇴직금을 둘러싼 소송이 벌어지고, 판결은 상황에 따라 채권관리사의 손을 들어주기도, 외면하기도 한다.

이렇듯 제도적 모호함과 현실의 각박함 속에서 채권관리사들은 서로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회사는 우리에게 애사심을 요구하지만, 그럴 자리를 내준 적은 없다.'
이 말에는 씁쓸한 진실이 담겨 있다.
그러니 무엇보다 중요한 건 동료끼리 서로 시기하지 않고, 서로를 도우며 버티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직업은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능력만큼 자유롭게 일하고, 실적만큼 보수를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은 오히려 매력이다.
정규직처럼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그 대신 더 많은 선택지를 품고 있다.
사실 이 일을 시작하는 이들 대부분은 특별한 자격증 대신, 지인의 손에 이끌려 현장에서 몸으로 배우며 시작한다.
그렇게 얻는 경험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삶의 자산이 되기도 한다.

나는 빚과 함께 살아온 세월을 기억한다.
신용이 바닥나던 순간, 세상이 등을 돌린 듯한 절망감을 느꼈다.
다시 신용을 회복했을 때의 기쁨은 컸지만, 카드 결제일 앞에서 초조하게 마음을 졸이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번 달은 어떻게든 버텼다, 하지만 다음 달은 어떡하지.'
그 마음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채권관리사의 역할은 단순히 돈을 받아내는 데 있지 않다고.
그것은 빚 때문에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이들에게 다시 삶을 회복할 기회를 주는 일이다.
무너진 사람에게 '당신의 인생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안내자의 자리, 그것이 우리가 지녀야 할 자부심이다.

채권관리사는 음지에서 일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해야 하는 직업이다.
돈보다 무거운 것이 사람의 마음임을 아는 사람, 빚이라는 어두움 속에서도 다시 길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
그것이 진정한 채권관리사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4화죽음과 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