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고등학교 3학년, 내 삶은 지독히도 막막했다.
아버지는 일찌감치 다른 여자에게로 떠났고, 어머니는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해 부평시장 좌판에서 갈치포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셨다.
학교에서는 불량한 학생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선은 넘지 않으려 했다.
술은 많이 마셨으나 담배는 피우지 않았고, 이성교제도 하지 않았다.
다만, 학교에 다니는 일 자체가 지겹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결국, 나는 간단히 옷보따리를 싸 들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향한 곳은 서울역.
왜 하필 그곳이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서울역에 가면 전국 어디든 갈 수 있고, 혹은 머무른다 해도 일할 곳이 많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전부였다.
역 근처, 출입문에 ‘숙식 제공’이라 쓰인 큰 찌개집으로 들어갔다.
식당 사모님은 나를 보더니 어려 보여도 체격이 건장하고 건강해 보인다며 마음에 들어 하셨다.
처음엔 식당 방에서 지내야 하지만, 열심히 일하면 방도 얻어주고 월급도 올려주겠다는 말에 감사함으로 고개를 숙였다.
나는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바로 테이블을 치우고 서빙을 시작했다.
점심시간, 직원들이 구석방에서 식사 준비를 했다.
나도 오라고 해 따라가 보니, 큰 그릇 하나에 김치, 멸치, 계란말이, 부추전, 무말랭이, 미역, 동태 등 온갖 반찬이 뒤섞여 있었고, 국물이 펄펄 끓고 있었다.
그때, 한 직원이 내게 약 한 알을 건넸다.
무슨 약이냐 물으니, 간염 예방약이라고 했다.
순간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오래 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섬뜩한 생각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옷보따리도 챙기지 못한 채 식당을 뛰쳐나왔다.
방향도 없이, 그저 고개를 떨군 채 걸었다.
잠시 후 고개를 들어 방향을 잡으려는 순간, 눈앞이 하얘졌다.
어머니였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어떻게 남대문시장까지 오셨지? 부평 시장에서 고생하는 것도 모자라 남대문까지 오시다니…
혹시 내가 집을 나간 걸 아신 건가?’ 혼란스러운 마음에 눈을 몇 번이고 비볐지만, 분명 어머니였다.
나는 눈물을 훔치고 어머니께 다가갔다.
어머니도 나를 보시고 깜짝 놀라셨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냐 물으니, 추석 대목이라 부평시장만으로는 부족해 갈치포를 떼어주는 양기사에게 부탁해 남대문까지 오게 되었다고 하셨다.
이번엔 어머니가 물으셨다.
“너는 여긴 웬일이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둘러댔다.
“친구랑 서울역에서 약속이 있는데, 시간이 남아 잠깐 둘러보는 중이에요.”
그렇게 거짓말을 했지만, 나는 결국 어머니 옆에 서서 갈치포를 함께 팔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식당의 큰 그릇 안에 담배꽁초가 없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의 어머니와의 우연한 만남이 나를 어디로든 떠나게 두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