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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여도 괜찮아

행복한 나날

by 남지만 작가


직장은 내 삶의 대부분을 소모하는, 거대한 유리 상자였다.
한때 함께 지냈던 동료들 스무 명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열 명이 북적이던 이 공간은, 시간과 사정이라는 필터에 걸러져 서서히 텅 비어갔다.
동료들은 빠져나갔고, 그 자리에는 익명의 새 직원들이 채워졌다.
결국, 내 옆에 남은 건 덕호 형, 단 한 명이었다.

덕호 형은 나보다 연배가 높고, 팀 내에서 첨예하게 평가받는 인물이었다.
'물려받은 재산', '자식 용돈', '아내 생활비' 같은 수식어 덕분에 그의 월급은 순수한 '개인 자금'이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여유가 있었지만, 그는 그만큼 철저하고 합리적인 구두쇠였다.
스냅백처럼 굳게 닫힌 그의 지갑은 내가 열 번을 살 때 겨우 한 번, 마지못해 열릴 뿐이었다.

그 불편한 침묵의 관계는 타 팀에서 근무하는 후배 동현이의 송별회 날 폭발했다.
동현이는 인기가 많아 여러 팀에서 서른 명 가까이 모인 북적이는 자리였다.
1차 갈빗집을 지나 2차 맥줏집, 소주와 튀김 냄새가 섞인 공간에서 동현의 절친 상호가 술잔을 내려놓았다.

"오늘 송별회 비용은, 덕호 형님이 시원하게 쏘셨으면 좋겠습니다."

30개의 눈이 일제히 덕호 형에게 꽂혔다.
맥줏집 소란마저 삼킨 차가운 침묵.
덕호 형은 얼굴 근육을 굳히고 침을 삼켰다.
곧이어 또 다른 친구 재원이가 확신을 실었다.

"맞습니다, 형님! 오늘은 형님이 꼭 한턱 쏘셔야죠."

그리고 부장님, 팀장님, 참석자 전원이 단결 투쟁처럼 외치기 시작했다.

"꼭! 그렇게! 하셔야 됩니다!"

그동안 1차, 2차까지 누가 한 사람이 계산하고 예외 없이 나누는 방식이었는데 대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평상시 부장님과 팀장님이 가끔 술자리에 참석하면 하는 말이 있다.

"형님! 나이를 먹을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술값을 내라는 압박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쌓인 앙금, 그의 인색함에 대한 집단적인 심판이었다.
실적이 좋을 때 서로 가까운 동료들에게 한 턱 쏘는 게 관례다.
덕호 형은 그럴 때마다 절대 빠지지 않았지만, 본인이 사게 될 때는 이 핑계 저 핑계되고 넘어가기 일쑤고, 어쩔 수 없었을 때는 누가 봐도 싼 집을 찾아다녔다.
궁색하기 짝이 없다.
서로 나눠서 계산할 때 다른 사람이 계산하면 달라고 할 때까지 안 주고 잔돈은 빼고 준다.
자기가 계산할 때는 그 자리에서 바로 받았고 잔돈까지 악착같이 받았다.

그날은 모든 것이 폭발한, 광기의 연대였다.
나 역시 그들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입을 다물었다.
어떤 예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함께 외치면 안 될 거 같았다.

다음 날 아침, 텅 빈 유리 상자가 차가운 실체를 드러냈다.

다음 날 로비에서 덕호 형을 마주쳤다.
예의를 갖춰 어제 잘 들어갔냐고 인사했지만, 덕호 형은 고개만 살짝 움직이고 내 눈을 피한 채 사무실로 직행했다.
어제 그 많은 사람 앞에서 당한 망신과 치욕이, 나라는 마지막 동료와의 연결고리마저 끊어버린 것이다.

둘이 먹던 점심시간이 되어 덕호 형의 자리에 갔는데 비어 있었다.
그는 나를 완벽하게 배제했다.
나는 팀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외톨이가 되었다.

홀로 식당을 찾았다.
점심시간 식당은 둘 이상의 손님을 기대하는 시선으로 가득했고, 나는 네 명의 자리를 혼자 차지했다.
어색함과 죄책감,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고독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제 팀에서 가끔 스트레스받을 때 둘이 한잔 하던 일도 없어질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덕호 형에게 "난 아무 잘못도 없어요"라고 말하고 화해를 할까 생각도 해 봤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었다.
왠지 그냥 이렇게 된 이상 혼자 지내는 게 더 나을 거 같았다.

혼자여서 느끼는 외로움은 잠시였다.
지금 이 고독은, 더 이상 누군가의 계산 방식이나 감정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특별한 자유를 선사했다.
익명의 식탁 앞에서, 나는 분해된 내 삶의 조각들을 바라봤다.
이 고독의 시간 끝에는, 억지로 섞이지 않아도 되는 진정으로 좋은 동료가 나타날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홀로 숟가락을 들고, 창밖 햇살을 맞으며 아주 조금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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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