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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버지 Jul 16. 2024

아빠는 협박범

나도 내가 그렇게 화가 많은 줄 몰랐어 #2


  본 연재글 중 2번째 [나도 내가 그렇게 화가 많은 줄 몰랐어]가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에게 읽혔고, 따뜻하게도 댓글로 왜 그러한지에 대한 의견 또는 공감의 말을 전해 주셨다. 이후 아이에게 화를 덜 내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레 육아 관련 유튜브, 인스타 피드가 내게 떠올랐다. 그렇게 고려대 조벽 석좌교수님의 영상을 보게 되었고 순간 다시 한번 크게 반성하게 되었다.

출처 : 유튜브 채널 지식인사이드

"자꾸 아빠 말 이렇게 안 들으면 경찰 아저씨가 오셔서 잡아간다!"


"이렇게 말썽 피우면 다리 밑에 두고 올 거야!"


  혹시 어릴 적 이런 이야기 들어본 사람 계시는지. 나는 분명 들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어린 내 심정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을 것이라 추정된다. 요즘 아이와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되기 시작하면서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훈육이라는 포장을 씌워 이런 말을 종종 하던 나였다. 조벽 교수님의 영상 속에서 아이와 신뢰를 깨는 매우 잘못된 소통의 예로 들고 있는 것이다. 꼭 저 내용뿐만이 아니라 영상 속 다른 내용들이 나에게 회초리를 들고 '이 못난 아빠야'라고 하는 듯했다. 얼굴이 화끈거렸고 미안함에 눈물이 찔끔 났으며 육아초보 아빠는 갈 길이 멀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그날 밤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무심코 했던 내 말 한마디에 아이가 느꼈을 부정적인 감정을 생각해 보니 눈앞이 캄캄했다. 자기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대상인 아빠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공포와 배신이었을 것이다. 결국 말 안 듣는 아이에게 이런 말로 겁을 줘 행동을 제어하는 방법 자체는 한두 번의 효과는 얻을지 몰라도 부모 자식 간의 신뢰를 깨뜨리는 바보 같은 행동이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을 아직 세상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다섯 살 아이, 가장 소중한 존재에게 농담 섞인 훈육이라고 합리화하며 한 것이다. 문득 처음 경찰이 잡아간다는 말을 했을 때 당황하던 아이 표정이 떠 올랐다. 아이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고 울먹이며 '아니야, 안 잡아'가 라고 말하며 원망 섞인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이런 등신 같은 협박범 아빠를 용서해 주길. 진심으로 미안, 우리 딸.


  이쯤 되니 점점 더 궁금해지는 것은 '왜 나는 그런 말과 행동을 하게 된 것인가'이다. 그 이유를 알게 되면 나 자신을 더 이해하고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대부분 육아와 관련된 영상들은 현상과 문제를 이야기해 주고 해결 가능한 스킬을 알려주긴 하지만 문제가 될 만한 부모의 행동과 그 원인은 잘 다루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개개인마다 다른 원인과 이유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관련하여 이전 글 '나도 내가 그렇게 화가 많은 줄 몰랐어'에 댓글로 한 작가님은 이런 의견을 주셨다.


"나도 내가 그렇게 화가 많은 줄 몰랐지요. 무력감 때문일 거예요. 아기만큼은 내 뜻대로 안 되니까"


  많이 공감했다. 아이 앞에서 한 없이 무력한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우리는 크면서 노력하면 어느 정도 보상이 따라옴을 경험했다. 내 소중한 아이에게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사랑을 주고 잘 대해주려 한다. 하지만 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범주 안에서 움직여주지 않고 생각하지도 못한 행동을 반복한다. 그 행동은 사회화된 나의 눈과 관념에는 한 없이 부족하거나 문제가 있어 보인다. 결국 그런 일들이 반복되며 '해도 해도 안되는구나'라는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집을 여기저기 어지럽히며 이리저리 과자 부스러기를 떨어뜨리며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며 나와 아내는 얼굴을 마주 보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했다.


  아이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무력감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에서 무력감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무력감이 불러오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일반적인 결과는 분노다. 특징적인 무기력이 나타나는 분노다. 이런 분노의 목적은 다른 종류의 분노처럼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적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이 분노는 훨씬 더 모호하고 불분명하지만 훨씬 더 파괴적으로 외부 세계와 자신의 자아를 공격한다."

  글의 내용처럼 나 역시 아이 또는 스스로에게 분노하고 슬퍼하며 자책하는 자아를 마주다. 지난 글에서 그런 나를 제어하기 위해 하기로 한 생각과 행동이 있었는데 실천하기엔 조금 복잡하였다고 생각한다. 결국 심플하게 보자면 화가 났는데 무슨 생각이 나고 행동이 차분해지겠냐는 생각이 든다. 화가 났을 때 혹은 스트레스에 더 강한 멘탈을 갖기 위해 하버드대학교에서 제안하고 있는 방법은 놀랍게도 너무나도 평범한 심호흡이다. 평균적으로 자극과 반응 사이 감정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6초라고 한다. 그 6초 동안 심호흡을 하면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 알아차리고 심호흡을 한다고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감정이 올라올 것 같은 순간부터 먼저 심호흡을 해보라고 추천한다. 그리고 더 좋은 것은 평상시에 심호흡을 자주 하며 자신의 신체를 컨트롤하는 것 화를 줄이고 멘탈을 강하게 만들 수 있는 아주 쉽고 중요한 방법이라고 조벽 교수님의 영상에서는 설명하고 있다(실제 신체 내장기관 중 유일하게 의식을 통해 컨트롤 가능한 부위가 폐장이라고 하며 심호흡은 폐장을 컨트롤하여 신체를 진정시키는 일이다).


  누군가 내게 '유아기 시절 아빠가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자체가 엄청난 행운 아니냐'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맞다, 엄청난 행운이자 행복임을 경험하는 중이다. 회사생활로 한창 바쁘고 경제적으로 많이 부족했던 30대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40대가 되어 아이가 태어난 것도, 사랑하는 아내가 힘들겠지만 여전히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것도, 육아와 가사가 나의 적성에 맞는 것도, 여유가 생겨 글을 통해 나 자신을 정리해 보고 싶어 하던 것도, 하려던 일이 불가피하게 멈춰진 것까지 모두 어쩌면 나에게 찾아온 행운을 위한 요소들이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아이와 크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만약 아이가 아니었다면 전업주부가 되어보겠단 결정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행운의 중심에 있는 아이를 내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사용하여선 안된다. 만약 그런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면 돈도 안 들고 간편한 심호흡을 지금 당장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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