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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버지 Jul 23. 2024

조금 느려도 괜찮아

저마다의 속도는 다르다


  결혼 후 6년 만에 태어난 아이는 두 돌 발달검사에서 심한 언어지연 판정을 받았다. 실제 점수화된 결과지를 보면 발화 수준은 11개월 수준으로 돌 아기보다 더 낮은 결과였다. 이미 검사 이전부터 아내와 나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놀이터에서 만나는 보통 또래의 아이들보다 쓸 수 있는 단어가 현저히 떨어졌으며 문장으로 의사표현은 언감생심 엄두도 못 내었으니까. 태어나면서 중환자실 신세를 진 터라 그저 건강하기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또 다른 걱정이 쌓여만 갔다. 검색창과 유튜브에 유아 언어지연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나와 같은 걱정을 가진 부모들의 눈물겨운 이야기가 곧 내 이야기가 될 것 같아 마음이 어수선했다.


  아내보다 더 걱정이 심했던 나는 언어지연의 원인 중 자폐 스팩트럼에 대한 증상들도 찾아보기 시작했고 관련 영상을 아내에게 전달하며 우리 딸 증세랑 비슷한 부분도 있지 않아라고 물으며 스스로 걱정을 쌓아갔다. 이후 대학병원의 소아청소년과를 찾아 상담 후 언어치료를 시작했고, 설소대(혀와 구강아래를 이어주는 부분, 짧을 경우 발음이 어눌할 가능성이 높음)가 짧다는 소견으로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아 고작 두 돌이 조금 지난 아이를 전신마취를 하여 수술을 하였다. 코로나 시절이라 보호자 1인만 대기가 가능했는데 아내는 아이 수술 후 마취에서 깰 때 응급상황이 발생하여 응급의가 뛰어오는 인생에서 절대 경험하고 싶지 않은 순간까지 경험하였다.


  아쉽게도 대학병원의 언어치료가 너무 정적이고 아이에게 흥미를 유발하는 부분이 매우 부족했다. 그래서 동네의 사설 언어치료센터로 옮겨 매주 2회씩 주중과 주말에 1시간씩 오가며 치료를 받았다. 출퇴근이 자유롭지 못한 아내를 대신해 주중에 직접 아이를 데려가고 끝나면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출근하는 생활을 2개월 동안 반복했다. 그럼에도 아이는 개선되는 부분이 잘 보이지 않았고, 놀이를 기반으로 한 언어치료에 조금 흥미를 느끼다 점점 교육이 강화되다 보니 금세 흥미를 잃고 가기 싫어했다. 결국 3개월 차에 언어치료를 중단했고 그 이후로는 언어치료를 받지는 않고 있다.


  불과 다섯 살이 된 올해 1월까지만 해도 아이의 언어는 크게 개선되기보단 어눌한 시도가 조금 늘었고, 여전히 발음이 안되고 문장구사는 힘든 상황이었다. 이미 세 돌을 넘겼음에도 정확히 '물'이라는 단어를 발음하거나 '무엇 주세요'라는 문장을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올해부터 새롭게 다니게 된 어린이집에 입학지원서를 쓰면서 특이사항에 언어지연을 기재할 수밖에 없었고 아내 역시 첫 상담에 특이사항으로 담임선생님께 신경 써주십사 말씀을 드렸다. 그렇게 6개월이 흐른 지금 딸아이는 놀랍게도 어린이집에서 배운 노래를 부르고, 나와 대화를 나누며 자기 의견을 어느 정도 전달할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마치 언제 내가 말을 못 했냐고 시위라도 하듯이 쉬지 않고 입을 재잘거리는 중이다.


  올해부터 전업주부가 된 아빠가 오랜 시간 돌봐준 탓일까? 아니면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아이들과의 만남, 아니면 그냥 시간이 흐르며 성장하였기 때문일까? 다양한 가설을 세워보지만 잘 모르겠다. 요즘엔 어린이집에서 배운 영어단어(happy, book, sister, brother 등)를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면 너무 신기한 기분이다. 한 편 말이 느린 아이로 인해 보낸 걱정의 시간과 다른 또래 아이를 보며 느낀 부러웠던 그리고 위축되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가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저마다 성장의 속도는 다르다'는 말은 책에서 보거나 누군가에게 가끔 들었던 말이다. 그렇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애가 탔던 것일까? 아이가 몇 세에는 어느 정도의 발달을 해야 한다는 기준의 발달검사 결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말이 느린 아이를 보며 걱정하듯 던지는 주변 사람들의 말 때문이었을까? 아니었다. 결국 그런 것들이 기준이 되어버린 나 자신이 문제였던 것 같다.


  세상이 정해 놓은 수많은 기준이 있다. 그리고 세상은 그 기준을 조금만 벗어나도 이상한, 틀에서 벗어난, 돌연변이 또는 좀 나쁘게 말하면 루저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또 남과 비교해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안된다는 생각이 더 다급해지게 만든다. 결국 그렇게 자라나 성인이 된 사람이 자신의 기준대로 소신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왜 저래~', '이상한 사람이야'라며 뒤에서 수군거리곤 한다. 반대로 보면 자기 기준이나 생각도 제대로 이야기 못하는 사람들이 불쌍하게 보이는데 말이다.  


  아이가 두 돌까지 다닌 어린이집의 원장님께서 입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뜸 아이의 언어치료를 권유한 기억이 있다. 아이를 직접 돌보는데 관여하는 담임선생님도 아니었고, 아이를 얼마나 관찰했으며 대화를 시도했을지도 의문인 원장님께서 말이다. 이후 졸업을 앞둔 시점에 자기가 알고 있는 어린이집 장애통합반에 추천해 드리겠다는 호의(?)까지 부렸으니 어쩌면 찐걱정(?)을 해주신 것 같기도 하다. 당시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불쾌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웃으며 거절하였지만 돌봄 기관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만한 분께서 강권하는 행위가 부모의 마음을 더 위축되게 하고 심란하게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다.


  오늘도 아이는 기분 좋게 어린이집 등원을 하였다. 등원 길에 쉴 새 없이 뭐라고 쫑알대는 아이를 보며 행복감을 느낀다. 오늘도 자기 속도에 따라 조금씩 성장하고 있겠지. 나 역시 노화가 시작된 몸은 아니지만 정신은 조금씩 성장하는 중이다.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것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세상에 존재하는 육아의 기준, 방향 등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물론 그중엔 도움이 될만한 것도 많다. 하지만 내 기준과 방향성이 없다면 늘 불안에 떨며 육아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이는 충분히 스스로 성장하고 나아가는 힘을 가진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개인적으로 육아는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며 오늘도 하루를 잘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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