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찬주의자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놀이공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일단 나는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데 보통 주말에 찾았던 놀이공원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늘 정신이 없고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긴 시간 줄을 서야 하는 것도 고욕이었다. 하지만, 딸아이가 태어난 후 아이랑만 놀이공원을 다녀올 정도가 된 지금 놀이공원은 꽤 자주 찾고 사랑하는 장소가 되었다.
예찬의 대상을 놀이공원이라고 하기보다 '서울랜드'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모든 놀이공원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랜드가 좋은 이유는 일단 집에서 가깝고(차로 30분 이내 도착), 미취학 아동이 탈만한 놀이기구가 상대적으로 많으며 면적이 넓지 않아 아이와 손잡고 걸어 다닐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울랜드의 최대장점은 주말에도 그렇게 붐비지 않아서 용인 에버랜드에 비교하면 마음껏 활보하기 편하다.
결국 내 성향에 적합한 놀이공원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고, 세상 그 누구보다 소중한 내 아이와 함께하기 때문에 예찬하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이제는 평일날 혼자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인데 그 이유는 평일에는 더 한가롭고 미세먼지만 사라져 준다면 산 아래 좋은 공기와 행복한 에너지가 가득한 곳이기 때문이다. 놀이공원에 가서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만 봐도 도파민이 차오른다. 더불어 서울랜드 바로 위쪽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있어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에도 알맞다. 기안84도 귀한 손님을 모실 때 서울랜드에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https://www.youtube.com/watch?v=IN9lhIlOw2g
결국 기승전 '한적함'이 되어버린 것 같지만 놀이공원이 좋은 이유는 함께 하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처럼 어린아이와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사귄 지 얼마 안 된 커플들은 손잡고 걸으며 하하호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이다. 중고등학생들에겐 소풍장소로 평생 기억될 공간이고, 어쩌면 내가 했던 생각처럼 혼자 방문해 에너지를 받을 수도 있는 장소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이런 놀이공원의 행복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고령자들에게 놀이공원은 좋은 놀이터가 될 수 있다(우리 동네 경제학 글 참고 : https://brunch.co.kr/@swoopapa/43).
개인적으로 서울랜드가 내게는 최적화된 놀이공원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방문하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른다. 전반적으로 노후화된 시설과 요즘 MZ들이 좋아할 만한 포토존이 크게 안 보인다. 그리고 오금이 저릴만한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도 몇 개 없다. 그러다 보니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단위 고객들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놀이공원을 자주 가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사악한 가격에 걸맞지 않은 식당의 음식 퀄리티에 놀랄 것이다. 서울랜드의 장점 중 하나가 여러 종류의 식당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인데 한식(순두부, 갈비탕, 장터국밥, 파전, 보쌈 등), 햄버거, 쌀국수, 카레, 치킨과 피자 등 다양하다. 가격대 역시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게 책정되어 있어 합리적인 선택이 가능하다. 단, 음료와 같은 것들은 일반 편의점이나 슈퍼보다 조금 비싼 측면이 있기 때문에 방문하기 전 구매하여 오는 편이 낫다.
롯데월드나 에버랜드를 방문해 본 사람들이라면 엄청나게 화려하고 장대한 퍼레이드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에 보고서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고 큰 규모 압도적 사운드에 지배당한 기억이 있다. 그에 비해 서울랜드의 퍼레이드 공연은 아기자기하고 귀엽다. 느낌 상 기존에 거론한 두 곳의 3분의 1 정도 수준이랄까. 그런데 뭔가 서울랜드에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에 맞춰 서울랜드 세계의 광장 앞에서 하는 공연을 보고 퍼레이드를 따라 걷다 보면 어린 시절 소독차를 쫓아 뛰어다녔던 기분을 느낄 수 있다(이게 맞나?). 그 외에 크고 작은 공연들이 다양한 공연장에서 펼쳐지는데 '애니멀 킹덤'이라는 공연은 어른이 봐도 입이 떡 벌어질만한 공연이었다.
마지막으로 지난 주말 놀이공원에 다녀와 든 생각을 적어 본다. 아이와 아내가 놀이기구를 타러 간 사이 벤치에 앉아 앞을 지나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대부분 행복한 표정과 들뜬 발걸음으로 거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마지못해 끌려 온 아빠 그리고 그런 아빠에게 화가 난 엄마들이 보였다. 시간을 내어 놀이공원까지 와서 잔뜩 찌푸린 얼굴로 아이들과 하루를 보낼 바엔 안 오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물론 몸은 힘들고 짜증은 날 테지만 적어도 하루만이라도 마음의 빗장을 열고 서로 활짝 웃어보는 게 어떨까?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하루 종일 끊이지 않을 최고의 하루를 만들기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