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찬주의자
요즘 난관에 봉착했다. 지난 1년 안식년을 보내기 전으로 돌아가면 2020년대 들어서는 주로 피드백을 하는 위치에서 회사생활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달부터 시작된 컨설팅 용역 업무를 수행하며 나를 고용한 컨설팅사(수탁사)와 일감을 준 발주사의 많은 피드백을 받고 있다. 모름지기 피드백이란 하는 입장에서는 쉬우나(?) 받는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내가 작성한 글 중 예찬주의자 06화. 탐색, 분석, 솔루션 그리고 턴키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나는 턴키를 좋아한다. 턴키로 하는 업무에서는 의사결정권자에게 내가 주로 질문을 던지며 원하는 것을 캐치하고, 피드백받는 횟수를 확 줄여 일의 속도를 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 더 일에 몰입할 수 있으며 자기 효능감을 극대화시켜 더 나은 결과물을 도출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 용역은 조금 다른 상황이다. 일단 나를 고용한 컨설팅사(수탁사)의 업무 프로세스가 그동안 내가 일해온 곳들과는 매우 다르며 주요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의 간극이 꽤 크다. 업무의 연장선일수도 있지만 외적으로도 프리랜서의 업무복장까지 컨트롤하는 곳이라고 설명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로마를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내게 룰을 바꿀 힘은 없다.
일단 나는 지금 맡은 이 일을 끝까지 잘 마무리해내고 싶고, 지난 1개월 동안의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으며 한 노력이 물거품 되는 것 역시 원치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피드백을 더 잘 받을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 일환으로 피드백을 예찬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누군가에게 피드백을 받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이번 경험은 곧 나이 50을 바라보는 내게 마지막 성장의 기회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렇게 피드백을 예찬하는 것이 내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또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다시 일어선다. 피드백이란 그 중간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 같다. 날카로운 듯하지만 결국은 성장의 방향을 비추는 거울이다. 문제는 그 거울을 바라보는 나의 자세라고 생각된다.
누군가 나의 부족함을 말할 때, 내 안의 방어기제는 본능처럼 반응한다. "난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그 사람은 나를 잘 몰라서 그래." 그러나 진짜 성장은 그 익숙한 자기변호를 잠시 내려놓을 때 시작되는 것 같다. 피드백을 ‘비난’이 아닌 ‘조명’으로 받아들이는 연습. 그 조명이 비출 때마다 나는 내가 미처 몰랐던 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
피드백을 잘 받아들이기 위한 첫걸음은 감정과 사실을 분리하는 일이다. 말의 톤이나 전달 방식에 흔들리지 않고, 그 안의 의미에 귀 기울이는 것(솔직히 이게 가장 힘든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는 피드백을 메모하고 숙성시키는 습관이다. 그 자리에서 반응하지 않고 적어두었다가 시간이 지난 후 천천히 돌아보는 방식은 방어심을 줄이고 통찰을 키운다. 마지막으로 피드백을 더 자세히 듣기 위해 질문하는 것이다. 질문을 통해 피드백의 진짜 의도를 파악할 수 있으며 답변을 통해 그 말의 진정성에 대한 판단기준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피드백을 나를 ‘고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넓히기 위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완벽한 사람이 되기보다 조금씩 유연해지는 사람이 되는 것이 지금 내게 필요한 스킬인 것 같다. 단단함은 금이 가면 쉽게 부서지지만 유연함은 충격을 흘려보낸다. 피드백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자, 더 나은 나로 건너가는 다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되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