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도 화나지가 않아

by 칼과나

나는 요즘 멋있으면 다 언니, 운전 잘하면 다 멋있어, 병에 걸렸다. 좁고 휘어진데다 차들이 한 줄로 길가에 주차되어 있어서 더 좁아진 길 끝에 후진으로 차를 대어 통행을 방해하지 않게 주차해놓은 택배차를 보면 저 기사님은 어떻게 저렇게 운전을 잘하게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택시를 타면 운전 기사님이 어떻게 차선을 바꾸고 어떻게 끼어드는지 유심히 본다. 차선의 어느 쪽을 기준으로 물고가는지도. 어쩌면 저렇게 숨쉬듯 자연스럽게 차와 몸이 하나가 되어서 움직이지? 감탄스럽다.


이 병은 운전면허를 딸 때도 한 번 걸린 적이 있다. 실기 시험에 연달아 떨어지면서 운전면허를 땄다고 하는 모든 사람, 운전하는 모습을 보여준 모든 사람이 멋있었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라도.


그런데 가끔은 운전을 할 줄 알기 때문에 멋있는게 아니라 운전 매너가 멋있는 사람을 발견하기도 한다.

골목길에서 우회전을 해서 큰 도로에 합류해야 하는 길을 가고 있었다. 저녁 퇴근시간 정체구간이었는데 앞차가 나처럼 어리숙한 초보운전자였나보다. 도무지 머리를 집어넣고 눈치껏 끼어들지를 못했다. 합류해야 하는 도로의 보행신호가 3번 초록불로 바뀔 동안말이다.


photo-1610051400050-e03bee86e2ff.jpg © lindsayreynolds, 출처 Unsplash 난 하나도 화나지가 않아.


요즘 나의 주제가는 ‘난 하나도 화나지가 않아’이다. 가수 장기하의 ‘난 하나도 부럽지가 않아’라는 노래를 개사한 곡이다. 앞 차가 어리숙하게 끼어들어도, 끼어들지 못해도, 길을 잘 몰라서 헤매다 마지막에 차선을 바꿔서 합류해도 이리갈까 저리갈까 갈팡질팡해도 하나도 화가 나지 않는다. 그저 동지애가 샘솟는다.


아이고, 님도 나와 같군요.


첫 차가 움직이지를 않으니 우리가 나오던 골목길에 있던 뒤차들도 움직이지 못했다.

남편은 급기야 그 차에 가서 얘기해줬다. 조금씩 들어가셔야 해요. 아무도 양보해 주지 않아요.

그쯤되자 직진 차선의 한 차가 우회전 하려는 앞차를 넣어주었고 이제 내가 그 기로에 설 차례였다. 나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을까? 뒤차 운전자는 ‘나는 하나도 화나지가 않아’ 병에 걸리지 않았을 테니 어서 가라고 빵빵거리겠지? 등줄기에 땀이 맺혔다.


그때였다. 바로 뒤에 있던 차가 내 옆으로 와서 먼저 차선에 끼어들면서 나에게 손짓을 했다. 지금 들어가라고. 그렇게 뒤차가 옆으로 와서 막아준 덕에 무사히 정체구간으로 합류해 들어갈 수 있었다.

반해버렸다.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에 서서 차의 흐름이 멈추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먼저 가라고 차를 세우는 운전자도 멋있다. 앞에 가는 차의 브레이크 등이 꺼졌을 때, 차에서 연기가 날 때 굳이 가서 말해주는 운전자도 멋있다. 내가 차선을 옮겨야 해서 깜빡이를 넣었을 때 속도를 늦춰 들어갈 수 있도록 양보해 주는 운전자도 멋있다. 신호가 바뀌려고 할 때 꼬리물기를 하지 않고 끊어주는 사람도 멋있다.


나도 나중에 운전을 잘 하게 되면 어리버리한 초보운전자에게 빵빵거리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한 배려해주어야지, 위에서 말한 저 멋있는 운전자들 다 내가 해야지. 생각해 본다. 그러니까 나는 운전만 잘하면 된다. 배려해줄 마음, 멋있어질 가능성은 너무 너무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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