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남편도 운전을 많이 시키려고 하고 나도 못 이기는 척 운전을 열심히 배우고 있지만 한 때는 곧 자율주행의 시대가 오니 조금만 더 기다리지 뭐, 라고 체념할 때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뭐 하러 해, 그냥 순리대로 살어.’가 모토였다면 지금은 ‘해보자, 인생에서 무의미한 경험은 없더라’라고 생각하는, 아니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운전을 열심히 배워도 10년 안에 자율주행 차가 나오면 내 수고는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그럴 거면 뭐 하러 해’,라는 생각을, 1년이라도 내가 운전을 하게 되면 그 1년간 남편과 장거리 여행을 할 때 운전을 나눠서 할 수도 있고 대중교통으로 가긴 애매한 곳에 친구와 여행을 갈 수도 있고 남편이 나를 태워줄 수 없을 때 내가 나를 차로 데려다줄 수 있으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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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팔순 할머니가 한글을 배운다거나, 환갑의 나이에 대학에 들어간다거나, 마흔이 다 되어서 치아교정을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 나이에 뭘 굳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숫자에 불과한 나이에 얽매여서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뚜렷해졌다.
배우느라 2년이 걸렸어도 한글을 쓸 수 있게 되면 그게 한 달이든 1년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냐는 결과의 효용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배우는 과정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한글을 배우겠다고 결심하고 학원이든 학교든 가서 등록을 하러 가는 용기, 사계절의 날씨를 느끼면서 배우러 수업에 나가는 모든 발걸음,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면서, 머리가 굳어서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만족감에 절로 지어지는 미소가 한글을 쓸 수 있게 되는 능력치를 얻기 전에 이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 깨달음 끝에 상용화만 되지 않았다뿐이지 나보다 더 운전을 잘하는 주행 AI가 딥러닝을 계속 하는 와중에 내가 운전을 할 수 있게 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은 이제 내려놓게 되었다.
나도 운전을 완전히 능숙하게 하기 전까지는 미생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전을 배우기로 결심한 나, 조금씩, 아주 조금씩 운전에 익숙해지고 있는 나의 모든 과정을 인정하고 칭찬해 주면 어떨까?라는 쪽으로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언젠가 혼자 운전을 하고 가고 싶은 곳 어디든 떠날 수 있는 나를 상상하는 것도 즐겁지만 아직 남편을 옆에 앉혀놓고 물어물어 가면서 말다툼도 해가면서 아웅다웅하며 운전을 배우는 지금도 한껏 누려보기로 한다.
음, 20년째 초보운전인 나를 너무 멋지게 포장하는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든다면 그 생각이 맞다.
이제 와서 하면 뭐해,라고 접어두고 있는 뭔가가 있다면 곱게 펼쳐 보시길 권한다.
그걸 해서 얻는 효용을 계산하기 이전에,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 쪽으로 눈을 돌려 보실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