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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과나 Nov 23. 2022

"대혼란 예상" 미국 아미의 충고, 현실이 됐다

대규모 행사에 턱없이 부족했던 준비


▲ 방탄소년단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기원 콘서트 < BTS Yet To Come in BUSAN > 현장 ⓒ 빅히트 뮤직


 2030엑스포 부산유치기원 BTS 콘서트가 10월 15일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열렸다.


감사하게도 팬클럽을 대상으로 한 콘서트 티켓 응모에 당첨되어 그라운드에서 콘서트를 볼 수 있었다. 공연날이 다가오자 스탠딩 티켓을 가진 사람은 오후 2시반부터 티켓에 적힌 구역과 번호에 따라 줄을 서기 시작하고 4시부터는 그라운드에 들어간다는 내용의 안내 문자가 날아왔다.


스탠딩 줄을 서야하니 안내 시간에 맞춰 가야겠네, 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 LA Sofi 스타디움에서 열린 Permission to Dance 콘서트를 갔었던 미국 아미친구가 정신이 번쩍 드는 충고를 해주었다. Sofi 스타디움의 첫 공연을 예로 들며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도 방탄소년단의 공연을 치러본 경험이 없어서 대혼란이 예상되니 최대한 빨리 가서 본인인증을 마치는 게 좋을 거라는 얘기였다.


미국 아미의 정신이 번쩍 드는 충고


오후에 느지막히 도착하려던 계획을 접고 본인인증 부스가 열리는 11시에 맞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 도착했다. 이미 본인인증을 위한 팬들의 줄이 주경기장을 한 바퀴 돌아 굽이굽이 이어져 있었다.


무작정 줄부터 서면 안 되겠다 싶어서 일단 사직동 식당가에서 배를 채웠다. 식사 후, 이제 꼼짝없이 저 줄에 서서 버텨야지 각오를 다지며 스타디움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보라색 조끼에 Yet to Come in BUSAN이라는 문구를 새기고 안전요원 명찰을 목에 걸고 있는 사람들이 길에 도열해 있었다.


공연장 밖은 부산시가, 공연장 내부는 소속사가 맡기로 했다더니 이건 전형적인 전시행정이구나 싶었다. 그 길은 경기장에서 벗어나서 인적이 별로 없는 곳인데 1~2미터 간격으로 서서 커피를 나눠 마시는가 하면 끼리끼리 대화를 하고 간식을 먹고들 있었다.


주경기장을 굽이굽이 돌아서 줄을 선 팬들은 안내요원이 없어서 우왕좌왕하며 움직이지 않는 줄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정작 안내할 사항도 안내할 대상도 없는 곳에서 무슨 안전을 어떻게 지키고 계신지 묻고 싶었다.


혼란스런 마음으로 본인인증하는 줄을 찾아 여기저기 팬들에게 물었다.


 "여기가 본인인증 하는 줄 맞나요?"


"그런 것 같아서 서 있는데 모르겠어요."


"여기는 무슨 줄인가요?"


"모르겠어요. 여기 아무도 몰라요."

   

▲ 스탠딩석 입장을 위한 대기줄 ⓒ 최혜선

 

알고보니 아시아드 주경기장 옆에 계단을 이용해서 내려가야 하는 보조 경기장이 있는데, 초대권을 받은 팬들이 티켓으로 바꿔야 하는 곳도, 티켓을 이미 수령한 팬들이 본인인증을 해야하는 곳도, 스탠딩 티켓을 가진 사람들이 대기해야 하는 곳도, 식음료를 먹을 수 있는 곳도 모두 거기에 있었다. 거기로 일단 내려가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평소 잠실 주경기장 공연에 가면 경기장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몇 십 미터 간격으로 촘촘히 안내요원들이 서 있고 자신의 좌석에 따라 색깔이 다른 유도선이 바닥에 그려져 있어 그 선을 따라 걸으며 나타나는 안내요원의 말에 따르기만 하면 물 흐르듯 움직이는 동선으로 공연장의 좌석을 찾아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번에는 보조경기장 안에 들어가면 안내요원이 있지만 지하철 역에서 아시아드 주경기장에 도착해서 팬들이 경기장을 한 바퀴를 돌아 줄을 설 동안 어디로 가야하는지 안내하는 사람이 없었다. 바닥에 안내선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혼란 끝에 오후 3시경이 되어서야 본인인증을 하고 스탠딩을 위한 대기구역에 들어갈 수 있었다.


드디어 자리를 찾았구나 안도한 것도 잠시, 대기구역에서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공연은 6시 시작인데 오후 5시 반이 되도록 우리 구역은 아직 공연장에 들어가지도 못했던 것이다.

  

제대로 된 안내도 통역도 없어


마침내 줄이 움직이고 그라운드에 들어서자 5시 40분이었다.


공연장 안에 들어서서 놀란 것은 3층 좌석이 한 블록씩 통째로 비어있었다는 사실이다. 공연장 밖에는 티켓이 없는 팬이 공연장 너머 들려오는 소리라도 듣겠다며 멀리서부터 와서 각 게이트 앞에서 진을 치고 있고, 혹시라도 취소 티켓을 잡을 수 있을까 싶어 티켓 예매 앱을 계속 새로고침 하다가 부정접속이라며 앱 사용을 정지 당할 정도로 티켓을 갈구하는 팬들이 있는데 BTS 공연에 빈 자리라니. 필시 일반 예매를 할 수 없도록 막혀있던 후원기업 초대권으로 배정된 블록이었을 것이다.

   

▲ BTS 콘서트에 빈 블록이라니 ⓒ 최혜선

 

현장의 진행이 미흡해서 그라운드석 팬들이 다 들어오지 못했는데도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공연이다보니 정시에 공연이 시작되었다. 나중에 트위터에서, 공연 시작을 알리는 폭죽이 터지자 팬들이 당황해하며 뛰어서 이동하는 영상을 보았다.


입장을 바꿔 스탠딩 대기석에서 2시간을 넘게 기다리고도 진행 미숙 때문에 공연에 들어가지 못 하고 첫 두 곡의 공연을 놓쳐버렸다면 나는 어땠을까. 두 곡 중 한 곡인 '달려라 방탄'은 이번에 처음 안무를 선보이기로 해 기대를 한몸에 받는 퍼포먼스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탠딩석을 배정받은 팬들이 다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각 스탠딩 구역의 펜스를 닫아버려 스탠딩 구역 바깥에 서 있는 팬들이 있었다. 원래는 멤버들이 그라운드로 내려와 차를 타고 팬들 곁으로 한 바퀴 돌아서 들어오려던 계획이 모두 즉석에서 취소되었다. 진행 미숙이 일으킨 나비효과다.

   

▲ 방탄소년단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기원 콘서트 < BTS Yet To Come in BUSAN > 현장 ⓒ 빅히트 뮤직

 

팬들은 공연이 치러지기 전부터도 알고 있었다. 이 공연에서 제대로 할 건 방탄과 아미밖에 없을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 예상이 빗나가기를 바랐다. 공연장 부지 선정이나 숙소의 예약취소 횡포 같은 잡음은 있었어도 막상 공연장을 찾아보니 '부산이 대규모 국제행사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구나' 느끼고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랐다. 


부산시가 공연을 찾은 팬들의 편의를 위해 역부터 경기장까지 제대로 교육된 인원을 촘촘히 배치해서, 공연장 내부 운영을 책임지는 소속사와 매끄러운 팀워크를 이루어 행사를 진행했다면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된 이 기회에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마음을 호의적으로 돌려놓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기 짝이 없다.


체감상으로 외국인 팬들이 40%에 이르렀는데 안내요원들은 한국어로만 안내했다. 인도, 필리핀, 일본, 스페인 등 내가 만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아미들을 위해 최소한 영어로라도 제대로 안내를 하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다. 


이 공연을 통해서 부산시가 얻어야 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것인가 의문스러웠다. 해외 팬들에게 부산시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2030엑스포 부산 유치를 위한 응원군이 되게 만들어야겠다는 목표가 있었다면 해외팬들을 위한 통역도우미를 현장에 배치하는 정도의 성의는 보였어야 했다. 70억에 달한다는 공연비용은 대지 못한다 하더라도 부산시에 있는 인재를 지원하는 정도의 성의와 꼼꼼함을 기대한 건 부산이 고향인 나의 과한 기대였을까.


이번 경험을 통해 소속사가 기억해야 할 건 이것이다.


취지를 불문하고 무료 공연은 하면 안 된다. 세상에 무료는 없다. 어떤 형태로든 대가를 지불하게 되어 있다. 내가 볼 공연에 돈을 내고 싶다. 껌에, 햄버거에, 도넛에, 숙박앱에 공연티켓보다 더 큰 돈을 쓰고도 티켓도 얻지 못하고, 티켓을 얻고도 무료라는 이유로 공연 제반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모습을 보는 일은 두 번 다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대가 누구든 방탄소년단의 스타디움 콘서트 규모에 수만 명이 운집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공연 부지 선정이나 운영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길 바란다. 인파를 겪은 경험치로 보면 아미가 세계 최고 전문가다. 모르겠으면 아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압사사고라도 날까 걱정했던 무좌석 스탠딩에서 서로를 배려하며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도 열정적으로 응원했던 동료 아미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전한다. 시끄러운 논란의 가운데서도 팬들만 보고 뼈와 연골을 갈아넣어 퍼포먼스를 해준 BTS 멤버들에게도. 이렇게 멋진 퍼포먼스를 일회성으로 끝내면 안 된다는 오지랖도 감히 부려본다.


오마이뉴스에 게재되었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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