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과 연률을 갖춘 선배로의 트랜스포메이션
주말에 딸래미가 친구 생일 선물을 사러 가는데 같이 가달라고 했다. 바느질을 하는 중이어서 중단하고 나서는 게 내키진 않았지만 같이 갔다.
아이는 문화의 거리에 있는 액세서리 가게에서 단숨에 친구 선물을 골랐다. 그러고는 백화점 구경을 하고 싶다고 했다. 백신패스가 적용되고 있어 백화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QR인증+백신정보 업데이트까지 해야했다. 아이는 여태 한 번도 QR코드로 본인을 인증한 적이 없었던데다 그날따라 데이터도 없고 배터리도 거의 바닥이라 등산 가있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데이터를 받(으려고 시도하다가 내 핫 스팟으로 연결하)고 전화기를 껐다 켜고 카카오톡으로 QR 인증을 불러와보고 네이버에서도 불러와보고 하느라 거의 10분을 문 앞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이번에 해보고 안 되면 다음에 오자,하는 상황까지 갔을 때 겨우 성공해서 백화점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예전의 나 같았으면 아이에게 이 기회에 뭔가를 가르친답시고 니가 나오자고 한 거 아니냐. 밖에 나올 때 핸드폰 배터리 충전은 신경을 써야지, 그것도 아니면 보조 배터리라도 들고 나왔어야지, 같은 소리를 늘어놓았을텐데 잘 참았다. 장하다.
12월 초 LA에 있을 때 백화점 구경을 하긴 했지만 백화점은 딱히 나의 생활권이 아니다. 백화점에서 물건 구경을 하는 것이 나에게 주는 즐거움이 별로 없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신촌에서 대학과 대학원 시절을 보냈으니 그 시절엔 신촌역 현대백화점이 나의 나와바리였고 공부하다 머리를 식힌다고 이대앞 옷가게들을 훑는 일은 큰 즐거움이기도 했으며 백화점에서 옷을 사 입는 것이 동경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눈으로 봐서 예쁜 옷이 아니라 내가 입어서 편한 옷이 나에게는 정답임을 알게되었고 나의 생김새, 차림새에 대한 남의 시선에 별로 연연하는 성격도 아니라는 것도 덤으로 깨달았다.
40대인 내가 그렇다고 십대인 딸래미도 그런 욕구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 나도 한때 잡지에서 하얀 목폴라를 입고 부러질 것 같은 허리에 하이웨이스트 정장 바지를 입고 그랜드 피아노에 한껏 상체를 틀어 기대고 있는 모델의 사진을 잘라서 코팅해 놓고 나도 저런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다고 동경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이왕 나온 김에 딸에게 가장 가까운 성인 여자 사람이 누구에게 배우지 못하고 성인이 된 후 좌충우돌 끝에 알게 된 것들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이런 바느질이 되어 있는 옷들을 핸드메이드라고 부르는데 왜냐하면 한 장의 원단이 반으로 갈라지는 이중지를 가지고 손바느질로 공그르기를 해서 마무리하기 때문이야. 이런 옷들은 가볍고 얇아서 겨울 옷 특유의 무겁고 둔탁한 느낌이 없는 게 장점이지.
이런 옷들은 예뻐보이지만 드라이를 하기도 힘들고 옷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옷들이라 실용적이지 않아. 니가 나중에 돈이 넘쳐서 이런 옷을 한 철 입고 버려도 되는 상황이 된다면 몰라도 선택하지 않는 게 좋아. 돈이 많다고 옷을 한 계절 입고 버려대는 것이 좋은 일도 아니고.
이런 옷은 니가 신축 아파트에서 바깥 날씨와 상관없이 엘리베이터를 통해 지하 주차장에 내려가서 자동차를 타고 나가서 마찬가지로 지하 주차장을 통해 어딘가로 들어가서 하루종일 실내에서만 활동하는 라이프스타일일 때 비로소 시도해볼 수 있는 옷이야. 비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칼바람에 노출되는 지하철 뚜벅이족이 멋부린다고 이런 옷을 입으면 안쓰러워 보인단다.
그러니까 옷을 살 때 니가 그 옷을 살 수 있는 돈이 있는가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 옷이 니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리는 옷인지 생각을 해보는 게 중요해.
옷을 고를 때는 먼저 옷장에 들어 있는 너의 옷을 머리에 넣고 있어야 해. 그래서 새 옷을 살 때 니가 가진 옷과 적어도 세 가지 이상과 맞춰입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 그 옷이 너에게 활용도 있는 옷이란다.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시도해 보고 싶을 때는 니 눈에 멋있어 보이는 그 아이템 하나만 사는게 아니라 그 새로운 스타일의 옷에 맞는 한 벌을 통째로 사야 비로소 입을 수 있단다.
아이는 열심히 맞장구를 치며 때로는 감탄을 하며 들었다.
엄마 옷을 잘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돼요?
(나한테 묻는 거늬?)
샤넬과 에르메스는 왜 그렇게 비싸요?
(그건 말야, 블라블라블라)
사춘기 아이들의 엄마로 트랜스포메이션 중이다.
아이들이 막 걸음마를 시작하고 비틀비틀 발걸음을 뗄 때 걱정스레 내밀고 있던 손.
언제라도 넘어지는 아이를 잡기 위해 떼지 못하던 시선.
그런 자세로 아이를 대할 때가 지났다.
이제 나는 아이가 만날 수 있는, 이 사회에서 경험과 연륜을 가진 어른 여자 사람 선배의 모습도 보여주면서 우리 회사 인턴을 가르친다는 마음으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을 전해주려는 시도를 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