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마저 못 알아 봤던 시카고, 대체 왜?
핀터레스트에서 뉴욕을 뒤쫒다 에드워드 호퍼를 알게 됐고 호퍼를 뒤쫒다 데이비드 호크니를 알게 됐다. 뉴욕에 다녀오기 전에는 호퍼도 호크니도 몰라서 눈 앞에 두고도 못 알아봤을 것이다. 그러니까 호퍼보다 덜(?) 유명한 화가들을 알고 싶어진 시점은 첫 미국여행을 다녀온 2016년 이후였다.
그 전에는 오르셰 미술관 내한전시를 봤어도 교과서 화가들만 챙겼고, 루브르 미술관 내한전시는 티켓과 도록까지 선구매했지만... 가지 않았다.
결국 시카고에서도 호퍼만 알아보고 호크니는 알아보지 못했다. 호퍼의 대표작은 남다른 아우라를 뿜어내는데다, 그 주변 관객들이 묘하게 숨을 참는 상태로 이끌었다. 그렇다. 바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미술관 입구와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한편 시카고 미술관에서 더욱 모던한 구역 대표를 담당하고 있던 이 그림은 호크니가 팝아트를 처음 시도하던 1960년대의 대표작 중 하나다. 데이비드 호크니(1937-)는 영국 화가지만 LA 부촌, 수영장 딸린 모던 빌라와 비벌리힐스의 주부들, 나른한 부르주아를 사탕같은 컬러로 묘사했다.
실물을 보기 전에 호크니를 각인시켰던 그림들은 비교적 최근의 작품들, 특히 2014-2015년에 대량생산했던 초상화였다.
청록색 투톤 배경에 대충 그린 듯 사실적인 표정과 포즈가 인상적인 그의 초상화들은 그림체보다는 배색으로 잔상이 남았다. 호크니라는 이름이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실물을 감상하고, 물감이 흘러내린 근접샷을 찍는 동안 기억의 밑바닥에서 이 색감을 떠올리긴 했던 것 같다.
구글 렌즈로 다름아닌 호크니가 검색되었을때 바로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2010년대에 재등장하는 조금 유치한 색감의 블루와 핑크가 이미 1960년대부터 호크니의 시그니처였던 것이다.
호크니의 색감은 호퍼보다는 오키프와 비슷하다. 그런데 컬러풀한 그림만 그린 것은 아니다. 그는 채도가 낮은 추상화는 물론 사진과 무대연출 등 다양한 작업을 시도했다.
우선은 알고있던 호크니와 경험한 호크니 사이의 연결고리 위주로 재감상을 했지만 이번 기회에 조금 더 알게됐으니, 다음에 호크니를 소환할 일이 생기면 알고있던 호크니 영역을 좀더 확장해야겠다.
이렇게 호크니 포스팅을 하고 나서, 며칠뒤 호크니를 선두로 기획된 내한 전시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얼리버드가 풀리자마자 예매했고, 전시 개막 직후에 오픈런을 하려다... 전시 6일차, 도착하려던 시간에 출발해서 점심도 먹고 살살 방문했다.
(전시 리뷰는 다음편에, 현재 포스팅은 계속된다.)
대표적인 인스타그램 포토존인 모던한 익스테리어의 수영장을 60년 전에 주목한 호크니의 선견지명에 새삼 감탄해본다. 어쩌면 그래서 그가 2010년대에 다시 그 색감을 소환한 게 아닐까.
색상별로 뜯어보면 주기적으로 유행하는 청록색(아쿠아블루)과 진달래색(쿨톤핑크)인데 그가 지어내는 조합은 앙리 마티스를 패러디할때마저 그만의 독특한 색조를 형성했다.
하긴, 나를 호크니로 안내한 에드워드 호퍼는 누구나 그릴 수 있을 법한 풍경과 컬러만으로도 아무나 쉽게 따라할 수 없는 시그니처를 완성했으니. 어쩌면 평범해보이는 작품 안에 철저하게 계산된 무언가를 담아내는 것이야말로 현대예술의 정수일지 모른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