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커린 무삭제판(선정성 높음 주의)
아메리칸 그로테스크
시카고 미술관 미분류 폴더(시카고 현대)에 있던 화가 중 다섯 명을 집중 조사하다가 단독 포스팅을 예고했던 존 커린(1962-)은 생존 화가 중에서도 비교적 젊은 편이다. 활동 중인 아티스트지만 당연히 거장의 반열에 올랐기에 시카고 미술관의 명당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존 커린보다 눈에 띄게 작품이 걸린 20세기 중반 이후의 화가는 데이비드 호크니, 조지아 오키프, 앤디 워홀 정도다. 시카고 미술관에 '방문해야 할 이유'로 손꼽히는 에드워드 호퍼와 조르주 쇠라는 화가도 화가지만 일단 작품이 대표작이고, 크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화가의 이름과 실제로 본 작품을 매치하지 못했다면 단체 리뷰 대표(?) 화가였던 르네 마그리트는 반신반의했고(실물을 감상할 당시에는 몰랐으나 책표지 등으로 알게됨) 존 커린의 경우는 그림이 좋았으나, 다른 100명에게 밀려 이미지 검색을 하지 못하고 무명으로 남아있었다. 이 글에서 재등장할 '마티니 마시는 언니들'을 미분류 폴더에 방치하다 단체 리뷰 조사 과정에서 존 커린을 알게 되고 그의 그림들에 빠져들었다.
뒷조사로 알게 되어 마티니 언니들과 함께 단체 리뷰에 포함시킨 <괴기한 추수감사절>에서 카라바조를 얼핏 보았다. (단체 리뷰 포스팅 참고) 이 그림을 포함한 몇 개의 작품에 바로크의 기운이 남아있는 듯하지만 존 커린의 연관 키워드는 로코코, 보티첼리, 노먼 록웰, 키치 등이다.
시간 순으로는 키치에서 독일의 르네상스 회화로 발전했다고 한다. 나는 르네상스와 팝아트의 융합으로 읽었는데 보티첼리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선 그에게 악명과 명성을 안겨준 에로틱한 작품을 보고 보다 섬세한 작품으로 이동해보자.
존 커린의 누드 혹은 세미누드를 말할 때, 과장된 기괴함 등의 수식이 붙는다. 관능적이고 맨살이 많아서가 아니라 여성의 체형이 독특해서 눈에 띄는 작품이 많다. 그림의 소재로 사과만큼 흔한(?) 여체를 통해 세계를 풍자하는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의 시그니처를 발견할 수 있다. 란제리와 인테리어, 핀업 걸(?) 스타일의 메이크업을 한 모델의 얼굴 등 모던한 소재를 로코코, 르네상스의 화풍으로 담았다. 그가 활동한 시대를 80-90년대부터라고 예상해도 이미 팝아트와 진짜 상업 예술(지면 광고), 컬러 TV 스타, 그리고 애니메이션 화풍이 널리 자리잡은 현대 중에서도 현대. 내가 태어난 이후에 학사를 졸업하셨으니 미술사에서는 실시간이다. 그러나 그는 전통적인 유화를 전통적인 화풍으로 그렸다.
그러니까 팝아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소재, 인물을 로코코 스타일로 묘사했다. 현대 여성 모델의 과장된 몸매, 성모화에서 이상화된 여체의 굴곡, 그런데 그런 몸을 '실제로' 가질 법한 여성이 겪어야 하는 중력의 법칙을 '리얼리스틱'하게 적용했다. 과거의 이상과 현재의 이상과 진짜 '현실'의 조합이다.
존 커린의 진짜 매력은 지금부터다. 로코코풍 팝아트의 등장인물은 만화 속 키 큰 아저씨 또는 할아버지, 그보다는 다양한 분위기의 할머니들. 아니지. 노부부와 노년 여성들의 단체초상화로 보아 이들이 누군가의 조부모라기 보다는 그냥 아름답게 나이든 사람들이다. 관계로 존재하지 않아도 되는 노인들
조금 늘어지고 조금 못생겨져도 행복한 여성 노인들을 그렸다. 앞서 등장한 레즈비언들도 있고 곧 등장할 우정 초상화(우정 사진, 우리도 찍잖아요?)도 있다. 과일이나 생선을 얹은 듯한 모자는 실제 새를 박제했던 모자를 풍자한 것 같다. 대상화가 되고도 미화법을 적용받지 못한 젊은 여성들도 그리 불행하진 않았지만 머리가 하얗게 센 언니들이야말로 인생을 제대로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왠지 이들은 아들 손자 며느리가 없을 것 같지 않나? 명랑한 할머니, 아니 여성 노인이 되는 것이 목표인 지금 우리들에게 딱 필요한 그림이다. 좀 늙으면 어때.
특별히 광고나 애니메이션을 떠올리지 않아도 어쩐지 삽화 같거나 만화 같거나 패러디 같은 그림들이 많다. 스타일은 보티첼리인데 사람 얼굴은 노먼 록웰인 그림들. 배경색과 캔버스의 형태는 거들 뿐. 묘하게 19세기 혹은 그 이전의 느낌도 나지만 그렇다고 진짜 고전은 아니라고 말하는 그림들. 그래, 아직은 고전이 아니지.
적어도 화가가 작고해야 더 인정을 받겠지만 이미 훌륭하다. 그에게서 로코코를 봤다고 미술사 사전에 실렸고, 시카고 미술관에 걸리지 않았나. 이 정도면 살아있는 고전이다. 아이패드 드로잉을 인쇄한 화집이 중고차 가격을 훌쩍 뛰어넘는 데이비드 호크니를 능가할지도 모른다. (더 젊으니까)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는 이 시대에 그는 로코코 유화를 카라바조나 보티첼리처럼 그릴 수 있는 사람이지 않나. 존 커린의 대표작 중 2018년에 경매에 나온 그림(파란 비키니 언니와 빨간 셔츠 아저씨)의 가격는 약 20억이라고 한다. (조오오기 링크 참고)
그를 만난 그때로 돌아가보자. <스탬퍼드 에프터 브런치>는 코네티컷 스탬퍼드에 있는 존 커린의 집에서 식후 낮술로 마티니를 마시는 갤러리스트 새디 콜스, 안드레아 로젠, 숀 레건을 그린 작품이다. 밝고 화사한 의상과 소파에 사로잡혀 이 언니들이 시가를 들고 있다는 건 미처 보지 못했다. 음, 사실 난 작품을 감상한 게 아니라 촬영만 열심히 한 듯 하다.
존 커린과는 다르면서도 묘하게 통하는 미국 대표 그림인 그랜트 우드의 <아메리칸 고딕>도 바로 이 곳, 시카고 미술관에서 봤는데 그림을 차분히 응시했다기 보다는 근접샷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잠시 소파에 앉아 이 그림을 보고 있는 다른 관객을 관찰했다. (매거진 '가벼운 예술여행'의 첫번째 포스팅 참고) 그러나 마티니 언니들(+워홀)을 배경으로 내가 찍힌 사진도 있기에 이 그림은 다른 의미로 나와 뗄 수 없는 작품이었다. (르네 마그리트 이전 포스팅 커버사진 참고)
우정은 아름답다. 행복한 노인들의 우정은 더욱 아름답다. 행복한 노인이 되려면 아들 손자 며느리가 없어도 친구는 있어야겠다. 나의 애정과 관심에 기뻐할 수 있고 나에게 애정과 관심을 표현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고 더욱 오랫동안 지켜볼 작정을 해야겠다. 발튀스와 마찬가지로 존 커린 역시 인간의 심리와 삼라만상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화폭에 담았는데, 스테레오 타입을 비틀고 융합해서 낯익으면서도 눈에 거슬린다. 그러나 고독하고 적극적 권태의 몸부림, 동상이몽(?)을 묘사했던 발튀스와 다르게 명랑한 팝아트(만화)를 도입한 존 커린은 나이들고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약간의 희망을 준다. 지금 마티니를 함께하는 친구와 먼 훗날까지 함께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
존 커린과 레이첼 파인스타인 부부의
작품 소개 및 경매 기록(링크 참고)
https://m.blog.naver.com/bbigsso/221633801320
생존작가 존 커린의 그림은 저작권 표기를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저작권 보호를 받으며 마찬가지로 필자의 모든 글은 필자에게 저작권이 있다.
*커버 사진: 제니퍼 로렌스(by 존 커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