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구슬>
나는 묻지 않았다. 무슨 연유로 그렇게 화가 났느냐 묻지 않았다. 도영은 감정적인 아이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도영에 대한 기억은 산발적이다. 유리조각처럼 뾰족하지 않지만, 스토리나 형상을 가지고 모여있는 기억이 아니었다.
구슬 같은 기억이었다.
도영을 만나기 전까지, 내 삶의 깊은 영역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핏줄이라는 티켓과 무제한의 사랑을 지참하고 있었다. 딸바보 두 명과 손녀바보 한 명, 조카바보 여러 명과 누나바보가 그들이었다. 당연히 나보다 더 귀여운 존재가 될, 사촌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가족들의 사랑을 나누어 가질 필요가 없었다. 세부사항은 이 시점에서 간과해도 좋을 만큼. 나는 여러 사람을 의식했으나, 나 자신이 여러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의식은 없었다.
내가 차지한 자리를 도영에게 뺏겼을 때도 처음에는 충격조차 받지 않았다. 지금은 유명해진 슬픔의 5단계 중 첫 번째, '부정'의 단계였다. 아마도 누군가에게는 찡찡거렸겠지만, 그런 감정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기엔 나 스스로가 나를 너무 과대평가했었다. 그래봐야 어린아이였는데, 대놓고 화내기엔 너무도 창피한 일이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천동설을 부수고 나왔어야 했던 그 해,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학예회가 있었다.
세평은 정말 세평다운 솔로 공연을 준비했고, 나와 도영은 우리 반의 대표작인 연극을 준비했다. 세 명의 사람과 다섯 마리의 물고기였나? 세평을 제외한 나머지 급우들 중에서,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할 정도로) 당연하게 '사람 1호'로 캐스팅되었던 나는 의외로 무대장악력이 부족하여 도영이 맡기로 한 '물고기 1호'와 역할이 바뀌었다. 세상에서 가장 치사한 것이 줬다 뺐는 거라던데. 처음부터 물고기였다면 가질 필요가 없었던 수치심과 자괴감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겨우, 라고 하기에는 아직도 그 은빛 물고기 공연복의 꺼슬꺼슬한 비늘이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강렬했던 인생 최초의 좌절.
도영은 재능이 있었다. 게다가 나는 그녀의 생활력을 익히 알고 있었다. 내가 쉽게 가진 것을 그녀가 채갔다고 화를 내면 안 되는 것도 알았다. 그럼에도 화가 났었다. 그게 슬픔의 5단계 중 두 번째, '분노'의 단계였다. 아마도 나는 내 분노를 다독이기 위해 함께 도영을 험담해 주는 사람을 핑계로 상황의 치사함을 도영의 치사함으로 위장해서 기억했을 것이다. 도영에 대한 내 마음이 변한 것이 아니라, 다들 나와 도영의 우정을 반대하고 있다는 식으로 우리가 멀어진 것에 대한 핑계를 세웠을 것이다. 슬픔의 5단계 중 세 번째, '타협'의 단계였다.
계속 이런 식으로 할 거냐고? 아니다.
무상은 처음으로 내게 관심다운 관심을 보였던 타자였다. 그러니까, 가족이 아닌데도 가족처럼 느껴지는 온기가 가득한 관심을 보였다.
나도 어린애였지만 어린애들의 유치한 장난은 싫었고 특히 '좋아해서 괴롭히는' 행위는 최악이었다. 나에게 걸리면 두배로 응징했다. 집 밖에서 알게 된 어른들은 좀 속물이었다. 과거로 갈수록 더욱 용감했던 나는 그 어린 나이에도 재물과 권력을 '밝히는' 어른들과 그 새끼들을 '저격'했다.
무상은 이제 막 하나의 존재로 깨어나는 어린 책덕후 또는 시인인 나를 발견했다. 서로의 호기심이나 자질, 순수함을 떠나서 그렇게 발견되는 순간이 있다. 내가 발견했던 꼬마 천재들은 또 얼마나 귀여웠었나. 그에 비해 나는 차라리 독기 품은 꼬마 전사였지만, 그의 눈에는 귀여웠을 것이다.
그 관심에 취해서 도영의 눈이 옆으로 길게 찢어지는 것을 못 보고 있었다. 무상이 편지를 넣어달라며 건네주던 책을 시작으로 매번 편지와 함께 주고받았던 책들, 다른 아이들보다 숙제를 먼저 끝내고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열어본 편지들, 그 편지를 읽고 있는 내 모습과 그걸 바라보는 그의 모습을 내내 도영이 지켜보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도영을 별 이유 없이 미워하면서 그녀의 존재를 억지로 지우고 살았기에 누릴 수 있었던 행복이었다.
도영은 몰랐을 것이다. 내가 그녀를 얼마나 하찮은 이유로 밀어냈는지, 그러고도 친구인 척하면서 속으로 귀찮아했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함께 책방에 가자고 얘기했을 것이다.
내가 거절할 것도 모르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