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영, <반 박자 느려도 좋은 포르투갈>
먼 곳으로 여행을 가서 지상에 발을 딛는 그 순간에 느끼던 비현실적인 현실감을 기억한다. 도착지 부근에서 안내방송이 나오면 비행기의 창문을 통해 정신없이 바라보면서 '내가 왔어, 드디어 왔어!'라고 생각하며 라이브로 창밖을 감상하는 순간을 좀 더 즐기기 위해 서둘러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지만 공항에 도착해서 파워워킹을 하고 마침내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의 그 흔들리는 포근함. 그리고 그때 찍은 사진을 종종 꺼내보면서 다시 그 기분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
혼자 여행을 했던 그 계절에 나는 외롭고 싶었고, 동시에 외롭고 싶지 않았다.
-155p, 리스본 숙소 이야기
살짝 기울어진 경사면의 돌바닥에서 조금 불편하게 의자를 기울이고 앉아서 노란색 푸니쿨라가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을 약 3초의 기회를 얻는 일.
-184p, 리스본에서, 어느 하루의 취향
여행의 기분과 그걸 다시 느낄 수 있는 기억,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또 다시 떠올리게 하는 기록. 인스타에 올리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다기보다 곧 여행자의 삶을 살기로 작정했기에 인스타를 가꾸기 시작했다. 여행과 심화 주제가 융합되기도 했고, 여행만으로 여행과 여행 사이의 단순노동이 해소되는 날들도 있었다.
여행 기록은 일단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 체계적이지 않아도 내 앨범은 즐거웠지만 인스타의 의도에 따라 조금은 남들도 즐겁게 했을 거라 생각한다. 타인과의 행복 비교 문제도 있지만 우리는 팬데믹을 거치면서 대리만족의 순기능을 발견하기도 했다. 서로의 과거 여행을 지켜보면서 우리 모두의 여행을 그리워했고, 여행에 대한 집단지성을 키워나갔고, 앞으로의 꿈과 성장을 응원했다.
여행지에서도 '특별한 외출'은 존재한다. 어쩌면 여행은, 특별한 점들을 이어주는 평범한 일상이라는 직선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200p, 디지털 노마드의 천국:
리스본 LX Factory
추억을 묻고 떠나온 뉴욕에 대한 그리움으로 영어공부를 하다가, 책을 읽고 여행을 추억하는 기록을 좀 더 자주 하게 됐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대체 조지아에 뭐가 있는데요>라는 책을 발견했고, 이 책은 말 그대로 내 삶을 바꿔놓았다.
여행과 기록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꿀팁을 보유한 에린(권호영) 작가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직 영어 선생님인) 에린 님을 통해서 집중적으로 배우게 된, '기록과 콘텐츠'에 대한 크고 작은 지혜를 일일이 열거하진 않겠지만, 작년에 나온 그녀의 두 번째 책 <한 달 만에 블로그 일 방문자수 1000명 만들기> 리뷰에서도 강조한 바와 같이, 에린 님은 '진정성'의 화신이다.
커피는 커피 자체를 마신다는 느낌보다는 여유 있게 아침을 여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할 테니.
-210p, 1유로 포르투갈 커피가 맛있는 이유
에린 님의 선한 영향력 주변에서 여행기록, 글쓰기, 소셜미디어, 독서의 시너지를 연구하면서 어느덧 서평을 대량 생산하는 책덕후가 된 나는(조지아 책을 살 때만 해도 국내서를 이렇게나 많이, 단기간에 읽을 줄은 몰랐지.) 블로그의 자체 콘텐츠가 밀려있긴 하지만 인스타 여행기록과 책을 통한 간접 여행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적립(?)하고 있다.
단순 기록에서 '글쓰기'를 품은 기록으로 진화해가는 매일의 '글쓰기'는 머나먼 과거(아마추어 운동선수 시절)의 '스트레칭 또는 워밍업'과 같은 필수 루틴으로 활약 중이다. 그러면서도 포르투갈 책을 열렬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이라는 건 여유가 필요한 일인데, 열렬하게 기다리는 건 뭐냐고? 그건 내가 책은 느리게 읽으면서 저돌적으로 독서계획을 세우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에린 님께 책을 빨리 내달라고 독촉(?)하고 싶진 않았지만 이 책이 피드에 등장할 무렵엔 내가 이런저런 서평과 기록들을 보유하고 있겠다는 계획을 많이도 세우고 수정했을 것이다.
그렇다. 나의 계획 덕질은 일종의 열렬한 기다림.
그래서 대체 포르투갈에는 뭐가 있냐면, 에린 님의 블로그에서 봤던 사진을 드디어 손에 넣었다는 뿌듯함과 에린 님이 고심해서 고르고 고른 표현들이 있었다. 종종 언급하게 될, 내 오랜 유럽여행 계획에서 없던 포르투갈의 비중이 아주 커질 예정이다.
조지아가 유럽 전역의 매력을 중첩한 곳이라면 (그럼에도 담백하고 천진한 매력의 희귀템이라면) 포르투갈은 아주 유럽적이면서도 아주 유럽적이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 경험이 대서양의 서쪽에 치우쳐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포르투갈 여행기에서 플로리다를 느꼈다. 어쩌면 솔직 담백한 에린 님의 목소리가 나를 내 향수가 가득한 가상의 공간에 데려다 놓았기 때문일지도.
포르투갈은 관광지라기보다 한 번쯤 살아 보고 싶은 국가로 다가왔다. 그래서 자꾸 플로리다가 생각 나는 걸까? 마지막 해외여행 이후 지금까지는 내 노후를 보낼 곳으로 마이애미가 1순위인데, 유럽에 다녀오고 나서는 리스본이 강력한 후보지로 떠오를 것 같다.
그만큼 성큼 다가와 마음을 열게 하는, 유럽으로 향하는 문이 되어줄 책이 <반 박자 느려도 좋은 포르투갈>이다. 왜 느리고 왜 좋은지는 (물론 직접 가보면 당연히 느낄 수 있겠지만) 책을 통해서 에린 님을 홀렸던 포르투갈의 매력에 같이 홀려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