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영 첫 여행에세이
1. 미국 동남부의 주; 주도 Atlanta; 약어 Ga.
2. 그루지야 (공화국); 카프카스 지방의 나라로 CIS 가맹국; 수도 Tbilisi
3. 조지아(여자이름)
여행 고수들의 여행지라는 제멋대로 상상에 따라 산과 음식, 와인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했는데...
춤이라고?
스위스 사람들이 산을 감상하러 오고,
프랑스 사람들이 와인 마시러 오는 곳.
이탈리아 사람들이 음식을 맛보러 오고,
스페인 사람들이 춤을 보러 온다는 곳. -5p
‘관절이 없어질 때까지 춤출게 아니라면 당장 일어나서 쓰던 글을 마저 쓰자!!’하고 결심하게 했던 여행에세이 <대체 조지아에 뭐가 있는데요?>는 권호영 작가와 인연을 시작한 책일 뿐 아니라, 그녀의 데뷔작 겸 내 (한글) 책스타그램 본격 데뷔책이었다. 블로그도(세팅만 하고 세월아 네월아 하다가 블로그 고수인 권 작가-당시 블로그 책 출간 전-를 만나 동기부여를 받았다.) 그 시점에서 부활했다.
춤추다 보니 어느새 십수 년이 순삭되어, 벼락치기하는 느낌으로 (그동안 밀린) 공부를 했는데 이 공부란 것이 ‘점수’로 기록될 거 아니면 ‘블로그’에 콘텐츠로 남아야 내 것이 되던 스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공부 핑계로 춤을 안 추고 있는 것까지 슬슬 자괴감이 드는 시점이었는데, 조지아 책을 본 거다.
아직 가보지 못한 유럽의 다른 나라도 어차피 꿈의 동산이지만 조지아는 ‘종합선물세트’라고 또 한 번 제멋대로 상상하며 랜선여행을 다녀왔다. 미국 조지아는 나도 다녀왔고 유럽 조지아는 미국에서 만난 친구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그래서 서평단 신청을 했다가 당첨되지 않았는데, 권 작가가 댓글로 서평단 또 할 거라고 친히 안내를 해준 덕에 그 마음이 너무 아름다워서 책은 내가 사고 서평도 더 정성 들여 작성했다. (현재 블로그 버전 일부를 각색-4년 전에 쓴 서평을 리모델링하는 중이다.)
조지아 수도인 트빌리시를 거쳐, 사실상 첫 번째 거점인 카즈베기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내 눈과 귀가 되어 멀리서 보는 풍경, 마주친 특별한 이야기와 사람들, 택시비를 포함한 교통편의 세세한 정보까지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게 지면에 담아주었다. 가로버전 사진들은 페이지 당 한 장에서 세 장까지,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등장하고 각 거점에서 원경으로 감상해야 하는 대표 사진 중 베스트 샷은 두 페이지를 활용하여 크게 볼 수 있었다.
트빌리시에서 카즈베기로 가는 3시간 동안 우리가 만나는 풍경은 맨드랍기 그지없다. 카즈베기의 산은 잘 손질된 잔디가 깔린 것 같다. 신이 가진 커다란 손으로 한 번 쓰윽 쓰다듬어 보고 싶은 마음이 쑤욱쑤욱 올라왔다. -39p
다섯 번째 계절을 오롯이 느끼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날씨의 변덕이 얄밉다. 하지만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는 것도 여행이라서, 예상치 못한 일들과 처음 느끼는 감정의 버무림이 바로 여행이라서, 그래도 행복한 여행을 하고 있어서, 어제도, 오늘도 여전히 괜찮았다. -58p
결국 카즈베기를 떠날 때까지 파란 하늘은 보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초록초록한 예쁜 사진과 함께 늘 예상에서 벗어나는 여행의 묘미를 솔직하게 담아낸 여행기를 보고 있으니 맑은 날이 궁금하기보다는 그냥 이대로도 괜찮았다. 게다가 이어지는 <룸스 호텔>의 먹방과 호캉스에서 대리만족! 다음 챕터에서도 음식과 숙소 리뷰는 계속되며 책에는 등장한 장소들의 전화번호, 홈페이지와 현지 주소까지 나와있으니 가이드북으로도 활용 가능! 하지만 가이드북은 아님주의. (가이드북 다음 리뷰에 계속)
풍경과 이야기를 기대했었는데, 여행에서 필요한 상세정보까지 다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여행지에 따라 사족이 될 수도 있지만 조지아처럼 희귀한 나라라면 에세이에도 정보가 담기는 게 좋다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수도인 트빌리시에 돌아온 저자는 도시여행답게 건물 투어와 시내 먹방을 즐기는데 이후에 나올 와이너리 투어, 도시 간 이동에서 필요한 사전 정보라서 이 부분을 먼저 읽어두면 좋다. 이동 순서대로 배치한 여행기이지만, 읽는 사람 마음대로 읽어도 상관없는 대신에, 와인과 차차 이야기를 뒷부분에서 보게 된다면, 이게 뭐지? 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차차? 먹는거임?
트빌리시라는 예쁜 이름은 따뜻한 곳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트빌리시에서는 그래서인지 걷고, 숨 쉬며 이런 아무것도 아닌 것을 하는 동안에도 따뜻함이 스민다. 해가 진 후에도 낮에 모아둔 빛을 천천히 내뿜고 있는 것만 같다. -104p
이루지 못한 그의 사랑을 담아낸 도시, 시그나기. ‘백만 송이 장미’라는 노래를 만든 러시아, 그리고 우리나라 역시 그 노래를 리메이크했으니... “우리들이 이렇게 만난 건 운명인 거야.” -137p
트빌리시와 시그나기에서는 화창한 날씨와 여행지에서 만나게 될 다양하고도 있을 법한 이야기가 계속된다. 조지아라는 나라가 교통이 아주 편한 곳은 아니라 살짝 겁도 나지만, 언제 갈지 모르니 관전 모드로 편안하게 읽었다. 이게 대리여행, 그러니까 독서의 장점이다. 스릴은 즐기되 진짜 위험은 없는.
권호영 작가의 실시간 조지아 여행 당시 (서로를 몰랐지만) 난 미국 동부에 있었다. 어수룩한 첫 여행을 다녀오고 삼 년 동안 두 번째 동부 여행을 준비하면서, 운전은 됐고(면허없음주의) 밤버스를 타보고 싶어서 치밀하게 준비했다. 뉴욕부터 휴스턴까지 4번의 밤차를 타고 2박 7일의 로드트립을 계획대로, 단 한 대의 버스도 놓치지 않고, 무사히(?) 마치고 시카고행 국내선 비행기에 탑승했던 그 뿌듯함.
앞으로는 여행의 마지막을 위해 체력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카고에서 시체놀이함주의)
갑자기 왜 미국얘기냐고? 물론 저 로드트립 안에 미국 조지아가 있다. 미국 지리를 아는 분이라면 눈치채셨을 듯. 그런데 그게 아니라 <대체 조지아에 뭐가 있는데요?>에도 여행 일정 변경과 체력 안배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여행할지는 내 마음이지만 장기여행일수록 체력을 아껴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특히 이미 가 본 지역을 다시 가게 될 때, 예전의 체력이 지금도 통한다고 생각하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아는 맛 뉴욕과 워싱턴을 무박으로 떠나, 3일 만에 등을 대고 누울 수 있었던 애틀랜타에서 당연히 호캉스가 꿀맛이었고, 버스를 놓치면 비행기로 환승해야 하는 휴스턴에 못 가는 스스로 만든 악의 소굴에 갇혀있는 상황이긴 했었는데….
점점 시내 이동을 최소한으로 자제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휴스턴은 너무 더워서 수영장과 시카고는 너무 추워서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두 번째 미국여행은 ‘최대한 오래, 많은 곳을’ 방문할 생각으로 무모한 계획을 세우고 어쩔 수 없이 다 지켰지만 앞으로는 여행 기간도 좀 줄이고, 이동보다는 숙박 위주로 계획할 것이다. (과연?)
하지만 조지아와 사랑에 빠진 선구자격 여행자들은 조지아를 ‘리틀 스위스’라 부르는 것을 거부하기도 한다. 조지아는 조지아만의 매력으로 충분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곳은 다 비슷할 것 같지만 조금씩 다 다른 게 사실이다.
조지아는 조지아이다. -191p
다시 책으로 돌아오자. 사건사고가 좀 있었지만 날씨도 적당히 화창했던 메스티아에서, <대체 조지아에 뭐가 있는데요?>의 표지를 장식한 사진도 탄생했고 본격 트래킹과 먹방이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수도인 트빌리시에 돌아와 귀국 직전까지 마켓과 서점, 카페 투어를 하면서 여행기는 끝난다.
메스티아부터는 한 편의 소설처럼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가 이어져서 집중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읽을 당시, 소설도 거의 영어로 읽었고 여행에세이를 정독해 본 적이 없었기에 서평도 산만하다. 다시 한번 강조(?)를 하자면 이 글은 블로그 서평을 거의 바닥까지 뜯어고친 버전이다. 한편 권호영 작가의 신간 <낯선 위로, 아이슬란드>는 도서전에서 구입한 다음 주에 약 이틀에 걸쳐 읽고 리뷰까지 했다.
서유럽과 동유럽, 아시아의 매력이 만나는 점도 무시할 수 없지만 조지아는 그냥 조지아이다. 처음 책을 읽을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유럽에 대한 호기심이 막연하지 않다. 파리와 트빌리시와 스톡홀름에 대한 호기심의 우열이 크지 않다. 지난 2년 동안 부르짖은 나폴리마저, 이 날씨에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그보다는 이제 더 많은 나라를 간접적으로 가보고 싶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