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파밀리아 <유럽의 다정한 책장들>
난 엄마의 이 문장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450p, 공부(준모)
사람들이 살면서 꼭 여행자가 되어 추억을 남기는 일을 해보면 좋겠다. -452p, 여행(모건)
서프라이즈도 이런 서프라이즈가 있나. 독서계획이 밀리고 밀린 와중에 탐나는 리스트가 연일 새로 등장해서 살 책도 바꾸고 산 책도 바꾸는 날들이 계속되는데 눈여겨본 작가의 입문작을 구입하면 신간이 나오는 징크스(?)는 점점 잦아졌다. 인스타가 아니었어도 지금쯤이면 알게 되었을 박윤미 작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출간을 예상은 했지만 저자의 구간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신간이 나왔고, 너무도 취향을 저격해서 먼저 읽을 수밖에 없었다. 유럽 그것도 책방투어라면 열일을 제치고 먼저 읽을 기세인데(유럽이라는 가보지 않은 공간을 헤아려야 하기에 '단숨에' 읽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작가와 그녀의 아이들이 쓴 책이라니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그뿐인가. 방대한 계획의 핵심은 유명하고 웅장한 장소가 아니었다.
얼마 전 서촌 독립서점 관련 콘텐츠를 제작했기도 하지만 뉴욕에서도 일부러 외계인이 모르는 책방을 기어이 알아내서 비가 내리고 갈 곳이 없는 날이면 에너지와 함께 호기심을 충족했다. 그런 내게 과감히 '렐루'를 포기한 모모 가족의 여행기는 더할 나위 없이 완전했다. 완벽한 계획을 뛰어넘는 완전한 여행이란 이런 것. 완전한 육아에 대한 끝없는 로망이 있는가 하면 육아라는 것을 시뮬레이션이 아닌 현실에서 해본 적은 없고 당해 보기만 했기에 아이들의 입장에 먼저 공감한다.
내가 국민학생이었던 30여 년 전에는 광화문에 국중이 있었고, 주말마다 한 층 씩 강제 관람했다. 중학생이 되고 자차를 구입한 기념으로 전국일주를 떠났을 때는 너무 많은 절을 강제 관람해서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지금도 부모님과 여행을 가면 유적지에 딸린 미니 박물관에 반강제로 끌려들어 가는데....
어쩌면 그 강제성이 유물에 대한 애착을 반감시켰을지도 모르겠으나, 자발적으로 한옥테라피를 하고 있는 지금의 내게 취향을 선사한 것은 분명하다. 국뽕을 아주 싫어하지만 한반도의 유물을 자주 접했기 때문에 베르사유 궁전과 같은 공간에 대해 '낭비'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막연한 부러움이나 동경이 아닌,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비교할 수 있는 관점이 생겼다. 그것이 책육아와 여행육아(?)의 힘이려니. 학원투어로는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안목이다.
모모 형제의 부모님은 모모를 위해 휴직을 하고 사교육비를 차곡차곡 모아서 한국형 그랜드투어를 강행했다. 유명한 곳이나 TMI가 될 수 있는 사람 많은 미술관보다 책방과 도서관 중심의 여행을 했다. 당사자인 모모는 조금 지겨웠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 여행을 평생 기억할 것이다.
어떤 일을 쉬지 않고 내내 열심히만 한다면 그 끝엔 매너리즘, 슬럼프, 번아웃이란 이름의 권태가 따라붙는다. 성실했을 뿐인데 이런 가혹한 결말이라니 세상 이치가 야속하지만, 모든 일엔 쉬어가는 페이지가 필요하다. 책을 읽을 때도 우리가 격정적으로 활자에 집중하게 해주는 역할은 간지나 삽화처럼 쉬어가는 페이지가 담당한다.
-101p, 자이언츠 코즈웨이(북아일랜드)
책을 포함해 예술을 즐기는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물질'보다 '정신'의 풍요를 갈망한다는 점이다. 물질에 몰두하면 등수•액수•평수에서 매번 싸워 이겨야 하고, 결과에 상관없이 공허가 반복되지만, 정신에 몰두하면 어떤 상황에도 극복하는 힘이 생겨나 행복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261p, 부다페스트(헝가리)
화자와 필자의 말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나의 말을 할 줄 아는 게 언어의 통달인데, 그리하여 언어의 최종 단계에서는 '의견'이 생겨난다. 그런 이유로 모국어를 통달하지 못한 사람이 외국어를 통달할 수는 없다. -334p, 발레타(몰타)
독자 입장에서, 꼭 책방이나 책덕후가 아니더라도 사진으로 미리 보는 옴니버스 유럽여행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술술 읽히는 타고난 스토리텔러인 박윤미 작가의 글은 금상첨화, 피를 못 속이는 두 아들 모모의 주제 글쓰기는 화룡점정.
더 말해 무엇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