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지원 <그림의 말들>
뭐든 잘하고 싶었고 실패하기 싫었다. 전력 질주하다 실패하는 벽에 깨지고 부딪히기 싫었다. 차라리 노력을 덜 하면 실패하더라도 덜 억울할 것 같아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는 일이 잦아졌다.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이 무기력에 이른 것이었다.
-44p,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무기력 대처법
알폰스 무하, 장 프랑수아 밀레*,
요하네스 베르메르*, 호아킨 소로야,
테오도르 루소*, 툴루즈 로트레크*,
주세페 아르침볼도, 폴 고갱*,
귀스타브 카유보트, 클로드 모네*,
디에고 리베라*, 칼 라르손, 폴 세잔*,
외젠 들라크루아, 오노레 도미에*,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등
익히 듣고 봤던 화가의 그림들(*표시한 화가는 한국과 미국에서 직관)과 새로 알게된 그림, 스타일을 알고 있었지만 그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했던 트롱프뢰유 기법과 바니타스화까지.
풍부하지만 과하지 않은 담백한 교양을 충전하면서 진정성 그 자체인 저자 태지원(유랑선생)의 우아한 솔직함을 한권으로 만나볼 수 있다.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으로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을 수상한 저자는 출간 후에도 연재를 계속하여, 후속작인 <그림의 말들>로 감동적이면서도 잔잔한 웃음이 감도는 치유의 시간을 선사했다.
연재 브런치북을 통해 저자의 글을 접하고, 매주 그녀의 글을 기다리다가(그녀는 지금도 연재중!) 저서중에 미술에세이가 있어서 구입했는데(읽고 있던 미술책과 쓰고 있던 미술에세이가 슬럼프에 빠져서 시간이 지체됐다.) 특히 종이책으로 만난 그녀의 글에서 그림 감상을 통한 힐링에세이를 오래 연재해온 내공이 느껴졌다.
읽어본 미술책들의 저자가 대체로 문학자였다. 미술 지식에 더해 문장력까지 쌓이는 뿌듯한 시간을 보냈으나 기억이 금방 증발되어 아쉽다. 미술책은 그림과 기본정보만 취향껏 수록되어도 소장가치는 충분하다. 언젠가 소로야와 세잔의 원서 도록을 구입할 것이다. (일단 서재부터 확장이전을 해야 한다.)
사회에 존재하는 규칙은 너무도 세밀하고 촘촘하게 우리의 내면에 스며들어 있어 당연한 것이라 여기기 쉽다. 가령 가족의 역할이나 능력주의, 인간관계와 사회성을 둘러싼 수많은 당위와 규칙들, 우리가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따지고 보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헛것'일 가능성도 크다.
-121p, 마음속 규칙을 파쇄해야 하는 순간
전혀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 씩씩한 척하는 스스로가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해서 괜찮다고 생각해온 건 아니었을까?
-163p,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요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던 예술의 고정관념에 물음표를 던진 것, 뒤샹이 현대미술에 남긴 가장 중요한 업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190p, 취향에 등급이 따로 있나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짐을 등에 짊어진 채 오래달리기를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나 아닌 누군가의 삶'에 대한 부러움이 줄어든다.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며 낭비하는 내 시간도 조금은 줄어든다.
-220p, 사는 게 놀이터인 사람은 없다는 사실
이처럼 인생의 유한함, 생의 부질없음을 전달하는 정물화 장르를 '바니타스화'(Vanitas는 라틴어로 헛되고 덧없는 것을 뜻한다)라 불렀다. 주로 꽃과 함께 해골, 썩은 과일, 연기나 모래시계, 악기 등을 그림에 나타내는데, 이런 사물들은 '죽음'이라는 인간의 숙명을 상징한다.
-255p, 화양연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태지원 작가는 성실하게 글을 쓰면서 자아성찰을 하고 그 과정을 아주 진솔하게 브런치와 지면으로 담아내기에 배경지식이 없어도 글의 호흡을 따라가기 충분하다. 꼭 필요한 지식은 글의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에 채워진다. 매주 방영되는 교양 프로그램처럼 짧지만 알차게 이루어진 각 챕터를 읽다보면 글에 담긴 사유가 본질적이라 쉽게 넘어가지는 않는다. 저자가 어려운 말을 해서 독자를 잡아두는 것이 아니라, 쉬운 말로 깊은 질문을 하기에 독자 스스로 깨닫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가볍지만 사유를 곁들인 정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