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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Nov 10. 2023

내안의 그대

단편소설 <몫과 나머지>

​새로운 한 주를 위해 자연의 에너지를 충전하려고 산과 물이 보이는 산책로를 걸었다. 여러 번 시도를 해 본 결과 일요일과 공휴일, 해 질 무렵에는 사람이 많았다. 그 외의 시간, 특히 하늘이 맑고 푸른 날 오후가 이 곳을 만끽하기 좋은 최적의 조건이다. 일요일의 경우 다른 곳을 탐험하고 싶기도 하지만 등산로와 등산로에서 이어지는 전철 안은 최악이고, 점찍어둔 동네서점과 공방은 휴무일이다. 대안이 없어서 물가로 달려가는 날도 있었다. 오늘처럼.


매번 이 길을 지나갈 때, 산책을 하거나 새로 알아보는 중인 작업실에 가거나 자주는 아니지만 로또명당에 갈 때 스쳐가는 입간판이 있었다. 무척 낯익은 단어임에도 한동안 의식하지 못했는데 그 간판에 적힌 글자는 나의 예명이었다. 나의 예명과 같은 이름을 가진 절의 이름이었다. 표고사라는 절이었다.


그 절의 원래 이름은 영신사였다.




영신은 나를 표고라고 부르지 않았다. 표고라는 단어가 웃겨서 그런 건 아니었을거라고 생각한다. 타인들, 그러니까 영신과 나를 끝내 이해하지 못할 인간들이 어떻게 해석할지는 내가 알 바가 아니다. 물론 신경이 쓰인다. 그도 그럴것이, 진지하게 성과를 내고 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웃고 떠들 때는 그런 부분만 각인되는 사람들이 있다. 꼭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다.


대학 선배들 중에서 나와 친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들이 의외로 그냥 놀이친구에 가까운 관계였다는 것은 딱히 비밀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랑스럽지도 않다. 그럼 나는 누구와 친했던 걸까? 예상 외의 사람들이다. 다시 추적을 하고 싶은 마음과 흘려보내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 그 예상 외의 사람들에게 실어두었던 마음과 오래 전에 공유했던 청춘의 열정이 구천을 떠돌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놓아야 할지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영신이야말로 사업적 관계, 사적 관계가 있음에도 놀이친구로만 행세하던 정반대의 사례였다. 하지만 내가 그와 함께한 시공간에서 그의 정력이 아닌 마음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가 나를 대함에 약간의 경외감이 깃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학 시절 놀이친구들이 그러했듯, 대부분의 친구들은 내 별명이나 예명을 불렀다. 내 본명에 마음을 담아서 불러주는 사람은 더 오래된 또는 가까운 동성 친구들이었다. 예상 외의 사람들, 그러니까 공식적인 측근이었지만 마음을 나누지 않았던 사람들과 대비되는 찐친들도 대부분 동성인 친구와 선후배였다. 이성 친구, 그야말로 남자사람친구들도 본명을 부르긴 했지만 각자 자기만의 맥락 안에서 자연스럽게 불렀기 때문에 특별히 신경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영신이 갑자기, 무맥락적으로 내 본명을 불렀을 때는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옆방에서 속닥거려도 다 들리는 집 안에서, 둘만 있을 때는 굳이 부를 필요도 없었다. 밖에서, 그것도 그의 입을 통해서 내 본명을 듣게 될 거라는 예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런 것까지 예상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나는 기분좋은 놀람과 그걸 티내지 않으려는 자제력이 한바탕 씨름을 하는 동안 멈춰있었다. 어쩌면 이런 순간이 오글거리는 고백타임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 아닐까.




​영신을 처음 초대했을 때 나는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놀다가 더 놀고 싶어서 집에 있는 영화나 보자고 얘기해 본 것이었다. 거대한 계획이나 목적은 없었다. 영신이 스무살이었다면 <봄날은 간다>처럼 흘러갔을지도 모르겠다. 아가, 누나는 상처가 많은 사람이야. 그럴 정신이 없어. 조르주 상드도 그랬던가.


당시 나는 이별 후의 시간이 충분히 흐르지 않았다. 내게 흘러온 가십을 종합해보면 영신도 연애가 막 끝났거나 심지어 아직 끝나지도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를 알아 온 짧은 시간들과 그 날의 심야 데이트를 종합했을 때 그런 기색은 없었다. 몰랐다고 발뺌하는 건 아니다. 그가 의도적으로 준비된 척을 한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의도적으로 속아준 것일 수도 있다. 진지하지 않아서 팩트체크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뒤, 더욱 괴상한 가십들이 흘러왔다.


(비공식적으로) 영신은 가벼운 사랑의 아이콘이 되었다. 가벼운 사랑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나는 영신을 포함해 그 이후에 만났던 모든 사람과 공식적인 연애를 하지 않았다. 아무도 내 통계를 알지 못한다. 나도 내가 몇 명을 만났는지 (이제는) 모른다. 나만 이상한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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