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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Nov 11. 2023

해금의 저주

단편소설 <몫과 나머지>

아직은 나도 시야가 좁았다. 한동안 무지해서 용감했는데 자아가 돌출된만큼 호되게 자아객관화를 강제로 익혀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경제적 인프라와 계급에 민감했던 성장환경과 별개로, 예술계에서 재능과 인품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포멀한 회사의 사내정치보다 훨씬 복합적이었다. 어느 통찰력있던 언니는 나의 스펙이 발목을 잡을거라고 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발이 너무 넓었던 것도 오히려 운신의 폭을 제한했다.


작업실을 접고, 한동안 작품 자체보다는 파격적인 전시나 행사를 기획하는 추진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아티스트보다는 기획자가 적성에 맞을 것 같았다. 그러기에는 창조하려는 욕구가 끝없이 양분을 원했지만 인간관계를 기존 장르의 외부로 확장하고 사람 만나는 재미로 눈속임을 해서 내가 몰입할 곳을 헷갈리게 했다.




커리어가 방황할 때, 누군가가 눈에 들어오면 그 사람의 모든 행동에 크게 휘둘릴 수도 있다. 영신과 협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나의 기반을 지원했던 동료이자 선배들은 멜랑꼴리했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주기도 했다. 예를 들면, 내가 정착할 수 없을 거라는 예언 비슷한 걸 한 사람도 있다.


나는 그것을 '해금의 저주'라 부른다. 해금은 나와 한 작품을 공유한 선배 작가였는데, 지성만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많이 활동했고 모두에게 훨씬 더 친절하고 인정받았다. 해금과 지성은 보기보다 정말 바람기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내 주변의 언니와 동생들의 '혹시'에 따르면 지성은 물론 해금도 나와 데이트를 하거나 공공장소에서 애정표현을 한 적이 있다고 집계(?)되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는 그렇게 느끼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데이트는 감사표시의 식사 대접 후 시간이 흐른 뒤 친해져서 야작 후에도 술잔을 기울였던 정도였다.


이들은 심지어 집에 데려다준 적도 없다. 오히려 친오빠였으면 불가능했던 애정을 보여줬지만, 주위에 보는 눈이 없다고 레벨업이 되는 애정은 아니었다. 시간이 더 많이 흐르고나니, 이런 사람이야말로 정말 오래 갈 수 있는 친구라는 깨달음이 갑자기 찾아온다. 그래, 망치지 않길 잘 했어.




해금의 저주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얼마 후 애매한 거리에 있던 영신을 제끼고 아직 제대로 우정을 형성하지 못한 성주와 짧고 확실한 연애를 했다. 그러나 그 확실함이 내게는 독이었다. 뭐가 되었든 이렇게 확실한 것은 싫었다. 이렇게 확실하게 자신의 한계를 깨닫지 못한 사람의 확실한 배우자가 되는 것으로 내 청춘을 마감할 수 없었다. 그땐 몰랐지만 내 청춘은 아직 반환점을 돌기도 전이었다. 아마도 나는 그 확실함 너머에 있는 불확실함이 나의 길이라는 것을 예감했을 것이다. 그건 그리 어려운 추론이 아니다. 내게 친구 이상을 느끼지 않는 해금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표고를 한 남자가 독점할 수는 없지."


이런 이야기는 우리끼리만 하는 것이지만, 잠깐이라도 누군가를 독점하고 싶어하는 사람의 귀에 들어가면 괜히 이상하게 변질될 수 있는 문장이기도 하다. 해금은 필요 이상의 접근을 하지 않았고, 나도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로맨스가 없었던 건 아닌데, 장미색 로맨스가 아닌 백색 로맨스였다.




성주와 헤어질 결심을 하기 전, 그와 함께하게 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을 느낀 건 우리가 만나고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 알아도 아는 척 할 수 없는 영신을 멀리서 (그래봐야 10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바라보던 순간이었다. 나와 협력하던 사람들의 상당수는 성주와의 발전 과정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지만 말할 수 없는 본능에 의해 그 정보를 영신의 주변까지 닿을 수 없게 조절했다. 그게 가능(?)했다는 것조차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당시의 나는 정보 조절 능력이 탁월(?)했다.


대부분의 경우 내가 모른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그냥 모르는 척 해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떠올랐다. 그런 건 이제 별로 중요하지도 않지만, 당시에는 난처했다. 당시에는 약간의 콩깍지도 있었고 성주의 편안함이 절실했으면서도 내 열등감 때문에 애매한 거리로 밀어버린 영신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날 영신을 보고 그 뒤틀린 운명을 예감한 순간, 나 스스로에게 그 (비겁한) 마음을 들키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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