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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Nov 12. 2023

스캔들 브레이커

단편소설 <몫과 나머지>

권위와 유명세는 다르다. 유명세와 영향력도 다르고 영향력과 권위도 다르다. 그 중에서 하나를 꼭 가져야 한다면 나는 영향력을 가질 것이다. 영향력과 권위가 없는 유명세는 과도한 질투와 시기만 일으킬 뿐이다. 그저 알 수 없는 알고리즘과 스캔들의 조합으로 떡상한 유명세라면 하다못해 질투와 시기조차 받지 못한다. 그 시대가 저물고 있다.


예술에 오기가 생기기 전, 어쩌면 내가 정말로 했어야 했던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건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건 모든 것인 동시에 모든 것이 아닌, 어쩌면 그냥 내 신념대로 존재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게 아주 짧은 전성기와 기나긴 터널의 시기가 찾아왔다. 그 터널 속에서 예술에 집착한 결과 업그레이드 된 버전으로 모든 것인 동시에 모든 것이 아닌, 내 마음대로 존재하게 된 존재로 재탄생했는지도 모른다. 그 짧은 전성기에 나는 방치했지만 실체가 없었기 때문에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작은 스캔들을 여러번 경험했고, 전성기를 지나 터널에 파묻혔을 때 문제적 존재가 되기 시작했지만 이미 영향력과 권위를 잃었기 때문에 유명세를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스캔들로 유명해지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래서, 유명해질 뻔한 적이 있어서, 혹은 잠재적으로 유명해질 가능성이 있어서, 유명해지고자 하는 욕망을 버릴 수 없어서, 어렸을 때부터 스캔들을 관리한 걸까. 이 어렸을 때가 정말로 어렸을 때는 아니다. 정말로 어렸을 때는 내가 유명세를 가지거나 문제적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지 않았다. 되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되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평생 그 방법을 연구했다.




영신이 내게 처음으로 경탄했을 때, 내 작품을 넘어 나라는 인간에 호기심을 보였을 때, 그의 유명세와 권위를 알고 있었더라면 기분이 좋았을까? 그의 등장은 여러가지로 부조리(씩이나)했다. 그에게도 아웃사이더 기질은 다분했다.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더 했다. 은둔형(?)임에도 능력을 갖춘(재색겸비한) 셀럽이었고 나는 분명 그에 관한 기사를 본 적도 있다. 자세한 내용을 몰라도 이 바닥에서 그의 이름은 브랜드였다. 애플은 아니어도 아이폰 쯤은 됐다. 그래서 오히려 그를 단박에 알아보거나 그와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몇해 전 김포공항에서 진짜 연예인을 만났을때처럼.


나는 내가 모르는, 나를 모를 것으로 예상되는 낯선 사람의 너무 당당한 칭찬에 당황했고 그 말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그 착오가 우리 모두의 운명을 바꾸었다. 역사까지는 너무 거창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런 걸 좋아하지만) 적어도 나와 연수와 영신의 업적과 장래와 현재 컨디션 등을 바꾸었을지도 모른다. 가정법과 후회를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 바꾸고 싶은 비슷한 조건이 있다면 과거를 시뮬레이션 해본다. 그 시절의 부작위를 반복하지 않아야 같은 후회를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무엇을 후회하고 반성해야 하는가.




나도 그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아서 행복했다는 말, 그보다 충분한 비언어적 표현을 어떤 식으로라도 했어야 했다. 그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그에 대한 마음은 사랑만큼 거창하지 않았지만 사랑을 넘어서는 숭고함이 포함됐다. 그는 나의 자신감 비수기에 등장하여 밑빠진 독처럼 새어나가던 용기의 그릇을 끝없는 자비로움으로 충전해주었다.


나의 별 볼 일 없음에 기죽어 그에게 친구조차 되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연수와 공유했던, 나를 내려놓고 서로의 의중을 읽어낸 시간들, 그런 믿음과 존중의 경험들을 했어야 했다. 나는 내 허세에 취한 나머지 심지어 연수에게도 충분한 애정과 존중을 보이지 않았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옛정을 나누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봐야 짧고 굵은 우정일 뿐인데. 잊혀진 주제에 스캔들로 소환될까봐 지금까지도 벌벌 떨고 있다.


영신에게 정신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여러 번의 기회들을 날려버린 것을 후회한다. 잘 컸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에게 당신 덕분이었다는 눈빛을 돌려주었어야 했었다. '사랑하니까 이용하는 거야.' 라는 대사를 직접인용하는 게 오글거린다면 연상할 수 있는 변주로 표현했어야 했다. 그 드라마를 그와 함께 봤지만 그는 그 대사를 기억할 리가 없다. 내가 다른 잘난 척을 해서 관심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 대사를 평생 써먹게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가 화면 속 여자에게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기를 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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