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론> 영어판 4회독 한 언니

자기계발서 읽기싫어증과 영어울렁증 동시 격파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수능과 인스타그램의 공통점



우리가 수능 1등급을 못 받는 이유와 인스타그램에서 최적화된 반응도를 못 받는 이유는 상통(相通)한다.


첫째, 공부(유형 정복) 또는 포스팅을 안 해서

둘째, 매번 같은 공부(유형) 또는 포스팅만 해서

셋째, 출제자 또는 (예비)팔로워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서

넷째, 기출문제 또는 알고리즘 분석을 안 해서


<수학의 정석>과 <성문종합영어>가 모두에게 맞지 않듯이 나와 고득점의 연결고리를 검토할 때 반드시 바이블, 필독추천서가 기준이 될 필요는 없다. 유형을 분석해 내 것으로 소화하려면 예상 문제와 모범 답안, 즉 벤치마킹할 계정이 있어야 한다.


이번 챕터는 영어와 자기계발(서)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다.




자기계발해서 어따 쓸 건데?



수능, 춤추기, 돈벌기. 인생의 큰 획(?)을 그은 중장기 프로젝트 중 어느 것에도 성실하게 임하지 않았다. 대부분 치트키와 운이 해결했다. 물론 대부분의 능력자들은 자신의 성공 요인이 '운'이라고 한다는데 그렇다고 내가 능력자라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냥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만약 내가 유일하게 성실함을 발휘했다면 그것은 삼십 대 중반에 리부트한 영어다. 직장인과 자영업자라는 두 갈래 길 양쪽에서 참패를 당하고 갈 곳이 없어 영어책에 파묻혔다.




모국어로는 거의 소설, 아주 가끔 에세이를 읽었고 시작을 알 수 없는 오랜 문학작가 지망생이었으나 실제로 '쓰고 있다는 자각'이 '안 쓰고 있는 죄책감'을 대신하기 시작한 건 2022년 5월 이후였다.




중고생 때 공부법책을 읽고 실행하여 최소 노력으로 영어, 수학 성적을 달성하고 그렇게 확보한 시간에 대하소설을 읽었다. 이런 치트키가 먹힐 리가 없는 과학고등학교에는 불합격했고 그때부터 기나긴 학교가기싫어증이 시작된다. 하지만 노력대비 성적이 안 나오는 한국사를 수능 전날까지 1순위로 공부한 덕분에 (2순위는 선택과목인 '화학2'였다.) 과목별로는 사회가 유일한 1등급 , 국어/수학/과학은 1점 차이로 2등급, 영어는 1점 차이로 3등급(기나긴 영어 울렁증의 시작)이었고 '총점' 1등급으로 SKY 중 두 곳에 합격했다. (입시제도는 계속 바뀌었다.)


자기계발서의 효용을 알지만 입시 이후의 세상에서 치트키를 쓰고 싶지 않았다. (쓰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묘수'가 절실했던 건 인간관계와 영어였다.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영어판을 (어느 틈에) 샀다. 하버드 4년 과정과 바꾸지 않겠다는 전설의 자기계발서를 원서로 읽겠다는 포부를 현실화하는데 13년 정도의 시간을 투자했다. 처음 10년 동안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서문만 세 번쯤 읽었다.


고작 서너 페이지의 서문에서 be동사 말고는 아는 단어가 없었고, 너무 힘들었다. (이미 텝스도 패스하고 졸업논문도 썼고 해외논문 번역도 했는데 다 쓸모가 없...지는 않았고 문과 영어 리부트를 거쳐 자연과학 분야의 원서는 훨씬 편하게 읽고 있다.)




첫 미국여행 직후 한국 나이 35세를 맞아 영어 리부트를 시작했다. 약 3.5년에 걸쳐 <인간관계론> 영어판을 4회독했다. 진심으로 하버드 박사가 부럽지 않게 됐다. 이 독서로 하버드를 16년 다닌 셈인데 심지어 이 느리고 느린 독서가 13년밖에 안 걸렸다. 무엇보다도 재독(再讀)의 위력을 체감했다.


약 30년에 걸친 긴 여정 끝에 '눈트임'을 했다. 영어는 물론이고 제2, 제3 외국어도 음성언어로는 크게 기죽지 않아서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컴플렉스였던 활자울렁증을 해소했다. '스웨덴어는 30년은 안 걸리겠지'라는 문장으로 눈트임 인증을 했다. 그 사실을 확인해 준 책이 바로 스웨덴어-영어 번역서인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였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스웨덴어판 원서 제목으로 번역된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다. (이전 챕터 참고)


영어 눈트임을 통해 회복하게 된 멘탈자존감은 현실 영어력과 소통력에 뒤따르는 (어쩌면 소소한) 보상이다. 영어로 생각하고 인풋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훨씬 더 선명해지지만, 간혹 그 세상의 먼지처럼 느껴지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그래도 영어를 할 수 있어 다행이야.'라고 위로할 수 있달까. 물론 한국 사람들 특유의 영어울렁증과 영어에 한정된 겸손함은 영어능력자를 계속 방방 뜨게 했지만.




수능 '국어' 공략법은 시중의 모든 독해문제집 풀기와 모닝 루틴으로 매일 50분씩 투자했던 국어 국정교과서 읽기, 단 두 가지였다. 두 가지를 약 7개월 동안 일요일 빼고 매일. 교과서 읽기는 3회독 이상이었다는 것만 기억난다. 이후로는 세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 국사 국정교과서는 간신히 3회독을 채우고 재미없어서 그만둔 것 같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교과서만 읽었어요.'의 맥락이긴 하지만 그게 정공법이다. 모두가 알지만, 실제로 했다는 사람이 별로 없는 그것.


(대체 왜 실천을 안 하는 걸까?)




친구와 영향력, 난 그거면 돼!

아, 그리고 영어.



데일 카네기의 대표 저서인 <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 원서를 읽고 소화한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친구는 모르겠고 영향력은 생긴다. 영향력이 생겼던 분야는


첫째, 실제로 고객을 대면하는 업무

둘째, 온라인으로 사교활동을 하는 영역

셋째. 영어실력을 입증함으로 인정받는 모든 업무

넷째, 문학과 비문학의 오묘한 경계에서 독서론을 펼칠 때?


인생의 치트키 중에서 '자본'과 관련된 것들은 소비를 덜 하고, 뒤통수를 맞지 않음으로써 나의 작고 하찮은 노동가치를 지켜내는 것 이상은 굳이 하고 싶지 않다. 글을 쓰는 삶을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선택했기에 인세 계산을 안 했다고는 못하겠지만 이전까지 내가 발행한 모든 저작물과 온라인 게시물의 원고료는 '매절'했고,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뒤통수를 맞지 않을 '계약' 뿐이다. (브런치스토리를 통한 후원은 특히 본인이 마케팅할만한 수익구조가 아니며 다른 물질적 지원과 마찬가지로 어디까지나 독자의 마음이다.)


여타의 자본, 특히 불로소득을 논하는 자기계발서와 경제서는 1도 관심이 없다. 친구들의 독서를 견디는 것이 최선이다. 자기계발 그 자체를 장려할 수도 없다. 일류 대학에 가거나 사업에 성공하겠다는 목표도 없이 그냥 매일 운동하고 영어공부를 해서, 그래서 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삶의 루틴 강화, 무기력증 해소를 위한 느리고 꾸준한 운동이나 원서 읽기는 좋다. 다만 '인증 그 자체'로 만족하고 있다면 다시 한번 마스터플랜을 검토하기 바란다. 다가오는 2024년, 무엇을 할 것인지.




데일 카네기의 함정도 여기에 있다. 그는 친구, 즉 인맥과 영향력을 가져서 사업을 확장하거나 더 많은 돈을 벌거나, 사업을 확장하고 더 많은 돈을 벌어서 가정의 평화를 추구하라고 하는데....


다 필요 없고, 나는 친구만 있으면 된다. 보다 정확하게는 친구라는 미명(美名)으로 뒤통수치는 사람이 아닌, 서로의 영향력으로 상부상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된다. 고립된 독서가이자 창작자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요령인데, 붙임성을 타고난 사람도 마냥 쉽지는 않다. 게다가 난 없는 붙임성을 20대 초반에 마이너스의 마이너스까지 소진했기 때문에 한동안, 어쩌면 지금까지도 부대끼는 순간들이 있다.


영어를 좀 해보려고 이미 소장하고 있던 책을 읽다 보니 인간관계, 아니 영향력이 생겼다. 책을 읽는 동안 생긴 것이 아니다. 그건 포텐이고. 이 책 이후 영어독서를 이어가는 동안 어떤 스탠스를 취하고 어떤 관계 맺음을 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사례 실험을 했다. 물론 운도 좋았다.




비문학 단 한 권의 올킬템



비문학은 특히 영어책을 추천한다. 해외저자의 원서 중에서 그나마 접근성이 높다. 만약 한 권만 읽으라면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100년 된 고전인 만큼 고어도 많지만, 100년 동안 베스트셀러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입증됐다. 카네기 이후에 읽었던 책들이 더 좋았지만 카네기가 깔아주었던 포텐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카네기의 문장력에 감탄할 정도의 안목을 갖추지 않았지만, 카네기를 반복해서 읽은 후에 만나게 된 작가들은 상대적으로 금방 친해졌다. 어쩌면 약간 매운맛 효과?


영어판과 한국어판을 고루 읽어본 결과 최애작가로 완전히 자리 잡은 리베카 솔닛과 마거릿 애트우드는 그냥 '매운맛'이기에 교재로 추천하지 않는다. 영어 눈트임 직후 밀레니엄 3부작 번역서와 함께 읽었던 유발 하라리는 영어 자체보다도 삶에 대한 태도나 배경지식이 중요했던 것 같다. <사피엔스>의 경우 영어로 읽으려고 일부러 번역서를 읽지 않고 기다렸다. <인간관계론>에 이어 두 번째로, 초독을 영어판으로 한 책이었다. 밀레니엄 3부작은 이미 한국어판을 4회 이상 읽었기 때문에 초독이라고 할 수 없었다. 한국어판을 읽고 연달아서 읽은 에드거 앨런 포 단편집도 비슷한 맥락이다.


문학의 경우 영한대역도 괜찮고, 이미 내용을 아는 책을 영어로 재독해서 영어와 친해지는 방식을 취한 덕분에 다음에 읽은 고전 <엉클 톰스 캐빈>이나 노르웨이어-영어 번역서인 <리디머>의 경우 내용을 거의 몰라도 그럭저럭 따라갔다. 그러나 문학까지 읽어내려면 비문학이 선행되는 것이 좋다. 성인이 외국어를 학습하는 과정이므로 좋은 문장을 읽되 명확하게 떨어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매끄럽다. <사피엔스>가 좀 심오하게 느껴진다면 말콤 글레드웰의 아무 책도 괜찮고, <팩트풀니스>도 괜찮다.


읽은 순서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은 <사피엔스>고, 가장 추천하는 책은 여전히 <인간관계론>이다. 원서가 아직 익숙하지 않을 때 읽어야 덜 시시하다고 해야 하나.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번역서는 오글거릴까 봐 못 보겠다.)




사피엔스 3부작과

밀레니엄 3부작



인스타그램 리부트 1년 차, 그러니까 팬데믹 1년 차였다. 밀레니엄, 사피엔스 시리즈를 영어로 읽는 8개월 동안 한국어 책은 두 권 읽었다. 손원평의 <아몬드>와 새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 책 리뷰를 하겠다는 생각도 못했다. 영어블로그 개시를 앞두고 영어책 인증샷을 올리다가 점점 표지를 찍게 됐는데 인스타그래머적인 본능이 깨어나(원래는 패션스타그래머였다.) 다른 사람들의 책사진을 관찰했다.


두 저자의 시리즈를 느리게 읽어나가는 동안 다른 영어책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권호영 작가의 서평단을 계기로 (지난 챕터 참고) 2021년부터 국내서를 인증하거나 리뷰했다. 국내서의 경우 마감일이 있는 책을 제외하면 별다른 계획 없이 읽었고 원서는 두세권을 병행독서했다. 그렇게 리뷰를 모아봤더니 첫 해에는 약 18권 정도의 국내서 리뷰가 쌓였다. 일부는 블로그에 쓰고 요약했는데 그러다 서평 못쓰는 병에 걸려서 인증만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원서는 단권 리뷰를 하기보다 <데일 카네기> 전체 요약을 6개의 포스팅에 걸쳐서 블로그에 했고, 다른 책은 부분 리뷰 또는 대략적인 소개로 이어졌다.


협찬서를 벗어나 본격적인 번역서 수집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민음사의 (카탈로그와 가이드북 증정) 프로모션이었다. 마침 오래 묵힌 <마담 보바리>도 있었다. 이때 인생책 <백 년의 고독>을 만났고, 원서로 <순수의 시대>를 읽었다. 인스타그램의 2천자 캡션을 최대한 활용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2천자만 썼다. 특히 서평을 격일로 대량생산하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호밀밭의 파수꾼> 이후 영어 리딩이 빨라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2022년 3월 15일에 코로나에 걸렸기 때문이다.





영어패치 완성!

영문학 원서 투어 가볼까?



비문학은 유발 하라리 3부작에 이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드디어 영어로 읽었고 말콤 글레드웰의 <타인의 해석>과 <블링크>,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 등을 읽었다.


스티그 라르손 원작의 스웨덴어-영어 번역서와 요 네스뵈 원작의 노르웨이어-영어 번역서를 읽기도 했지만 영어공부의 최종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 이제 코넌 도일, 해리엇 비처 스토, 에드거 앨런 포를 읽을 차례인 것이다. 역시 무용담이지만, 특히 80년대식 활자로 인쇄한 펭귄판 <엉클 톰스 캐빈> 덕분에 영문학 매운맛이 가능해진 것 같다.


미국의 국민작가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 보다 동시대 작가인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 샐리 루니의 <노멀 피플>등은 리뷰를 너무 길게 하거나 길게 하려다 못한 경우였다.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시티 오브 걸스>를 읽고 '역시 뉴욕이야!'를 외치며 <호밀밭과 파수꾼>, <순수의 시대>를 통해 다시 고전으로 돌아갔다. <폭풍의 언덕>과 <오만과 편견>도 영어로 다시 읽었다. 어느 시점에 영어책도 그럭저럭 2천자 리뷰를 쓰게 됐고 (인용문은 영어, 소개는 한글) 그러다 인생책인 <시녀이야기> 시리즈를 만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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