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 혹은 서양 고전이 어렵다는 오해
작가와 여주인공의 네임밸류가 비슷하게 세계 최강인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를 나름 연달아 구입했었다. <안나>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열심히 읽은 기억은 나는데 영화를 봤는지 기억나지 않고 책은 영어판으로 바꿔서 가지고만 있다. <보바리>를 비롯한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의 주요 작품을 (교보문고 직원이었던) 동생 찬스로 2011년에 구입했는데, 읽은 책은 <설국> 뿐이고, 몇 권은 분실했고, <호밀밭의 파수꾼>은 구판을 읽지 않고 영어판으로 읽었다.
그리 높지도 않았던 책탑에서 살아남은 책은 <마담 보바리>와 <거미 여인의 키스> 뿐. (나머지는 광활한 우주를 떠돌고 있겠지.) 그로부터 11년이 경과한 지난 해, 민음세문 수집을 재개했고 비로소 이 책들을 읽게 되었다. 보다 정확하게는 11년 동안 묵혀 온 계륵 같은 책, <마담 보바리>를 읽겠다는 의지와 민음사 카탈로그 이벤트가 시너지를 일으켰다. 안나와 엠마 사이, (비영어권) 고전 독서는 부재했다. 그 사이를 채운 건 스릴러였다. (스티그 라르손과 요 네스뵈, 지난 챕터 참고) 하지만 그게 내 독서 경험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한동안 책을 사고도 시간과 의지가 부족해 읽지 못했다. 민음세문 책탑 입고와 같은 해였다. 서른이 되기 직전, 장편소설로 문학상에 도전하려다 (일시적으로) 실패한 뒤 한동안 교재개발자로 생계형 글쓰기(?)를 했다. 뒷표지에만 이름이 네 번 나오고, 저자 검색이 안되는 공저서를 남겼지만 이렇다 할 경력은 만들지 못하고 괜히 책쓰기에 질리기만 했다. 반작용일까. 독서보다는 여행하고 (주로 사진으로) 기록하는 삶에 작정하고 뛰어들었고,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영어 리부트를 한 지 7년이 됐다. 그동안 고전을 포함해 약 30권의 스테디셀러 원서를 읽었다.
장르 갈등(?) 없이 독서테라피를 하려면 그냥 스릴러(혹은 최애 장르)를 읽어야 했다. 그러다보니 스릴러 계열의 레퍼런스만 자꾸 쌓여갔다. 계속 스릴러만 읽은 것은 아니기에 진짜 덕후들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 고전도 마찬가지다. 권수가 많은 민음세문에서도 중복 작품(영어판 또는 다른 출판사 버전으로 읽은) 포함해 40권도 읽지 못했다.
그나마 올해는 열심히 구입하고 있다. 원래 있던 두 권을 포함해 총 8권을 읽었고, <디 에센셜>로 버지니아 울프에 이어 피츠제럴드를 읽고 있고, 선물과 내돈내산으로 입고 후 대기 중인 6권이 서재 인테리어를 담당하고 있다. 머지않아 재독하려고 (일시적으로) 잘 보이는 곳에 보관하고 있는 <데미안>은 무려 민음사의 세문전집이 아닌, 헤세전집 1권이다.
내게 민음세문의 맛을 본의 아니게 알려준 사람은 바로 지난 서평, (지금 쓰고 있는 연재 브런치북이 아닌 별도의) 매거진 <책으로 미리 만난 세계>의 마지막 글에 소개된 신간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의 저자인 신성아 작가였다. (그녀와 나는 전공이 전혀 다르지만 스무 살에 만난 대학 동기다.) 레퍼런스를 늘리고 있던 어느 날, 나는 김 모 후배와 신성아에게 인생책을 물어봤었고, 그때 신성아에게 들은 답은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였다.
이 책으로 민음세문을 시작하여 <폭풍의 언덕>으로 이어갔을 것으로 추정한다. <폭풍의 언덕>은 자꾸 사고 잃어버리는 책인데, 나 뿐 아니라 책덕후들은 그런 징크스가 조금씩 있는 것 같다.
<삶의 한가운데>는 잘 읽고 소중하게 간직하다 과외하던 학생에게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했다. 그 책은 나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삶의 한가운데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당사자가 당사자를 보호하기 위해 당사자로부터 분리된) 메타인지로 관전했던 나는 그럼에도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렸고, 살기 위해 오직 현재의 나와 삶에 집중했다. 지금까지 예상했던 미래는 이미 무너졌기 때문에, 나에게는 오직 현재만 존재했다. 현재를 살면서 부활해야 했다.
여담이지만, 미국에 도착한 전날 '이미'라는 단어가 꼭 필요한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 한국인 노부부가 통역을 해주신 적이 있다. 내가 필요했던 단 하나의 단어, 그것은 already였다.
<폭풍의 언덕>도 초독이 좋았다. 그때만 해도 서양 고전이라는 카테고리에 별 의미를 두지 않으려 애썼다. 이공계-디자인 계열인 내게는 별로 쓸모가 없어 보이는데 어렵고, 기껏 읽어도 함께 토론할 사람이 귀했다. 그나마 버지니아 울프가 등장인물로 나오거나 원작을 제공한 영화는 봤다. (책은 작년이 처음)
영상미가 있는 스토리텔링과 삶을 주도하는 여성 캐릭터가 주된 덕질 대상이었다. (살리든 못살리든 패션 융합 전공을 지향했으니 이미지 정치마저 내게는 중요했다.) 약대 순한맛 아미노산 도장깨기 같은 전공 수업에서 받지 못한 A+를 받은 교양 수업이 '영상 예술의 이해'와 '페미니즘의 이해'였다. 그 무렵 나의 최애 취미는 서울 여성영화제 심야상영 티켓을 끊어서 혼영 파자마 파티를 하는 것이었다. 영화 개봉을 전후하여 (다른 출판사 버전으로) 초독한 <오만과 편견>에는 그리 동하지 않았고 (아류작을 너무 많이 봐버린걸까?) 몇 년이 지나 또 한번 영화 핑계로 구입한 대하소설 분량의 <안나 카레리나>에 와서는 독서라는 취미 이상의 취미가 버거웠다.
어쩌면 <안나>가 지루했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때만 해도 책을 덜 신중하게 구입했는데, 그 결과 비문학은 자꾸 쌓였고 스릴러 회전률만 증가했다. 옷장과 마찬가지로 책장도 다양한 실험을 거쳐 취향을 가지게 된다. 스릴러와 스릴러발 세계문학 멘탈여행과 영어독서 트레이닝을 거쳐, 다시 책덕후라는 본캐로 돌아온 지금, 다시 민음세문 굿즈를 핑계로 고전 위주의 세계문학을 수집하고 있다.
특히 비영어권 서양 고전을. (영어는 펭귄)
민음세문 카탈로그와 가이드북을 받으려고 고른 책이 <백 년의 고독> 1권과 <이방인>, <디 에센셜 버지니아 울프>였다. 의외로 안 읽은 사람도 많지만 이 책들 혹은 작가들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적어도 책 관련 업무나 취미를 가진 이 중에는) 없을 것이다. 백번 양보해도 세 작가 중 두 명은 알겠지.
나는 마르케스를 알게 된 지 3년도 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남미 노래로 스페인어를 들어왔지만 스페인어 좀 하는 사람들조차 마르케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정도로 스페인어권 (게다가 남미) 문학은 비주류였다. 최근까지도.
특히 20년 된 <고래>가 역주행을 (여전히) 하고 있는 지금도 마르케스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애서가 중에서도) 꽤 많기 때문에 대놓고 패러디한 이 작품을 두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고래>가 한국문학이라는 (좁은) 틀에서 특이한 만큼 불편한 것도 사실이나, 세계문학 흐름을 꽤 적절하게 현지화했고 그것을 다시 영역한 작품이 보여준 쾌거는 인정한다. (영어판은 아직 읽지 않았다. 해당 작품의 리뷰 참고)
<마담 보바리>와 함께 옛날 책탑 보따리에서 생존한 마누엘 푸익의 <거미 여인의 키스>는 2010년대 이후 출연빈도가 급격하게 높아진 미국 내 히스패닉 배우들의 단골 레퍼런스가 될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작품이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희귀템이다.
<마담 보바리>의 역자 김화영 선생님과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인 <이방인>은 시선강탈하는 <백 년의 고독>에 밀려 멀리멀리 밀려났지만 해를 넘기지 않고 작년 말에 읽었다. 얼마 전에 리뷰한 도리스 레싱의 <런던 스케치>와도 이방인의 관점이라는 느슨한 연결고리를 가지는 <이방인>은 철학적으로 분석하기 귀찮지만 상징이나 심리 묘사가 재미있고 쓸모도 있다. <1984>와 함께 20세기를 빛낸 작품이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는 동안 독일어와 독일 문학이 그나마 만만했던 이과 언니는 11년 묵힌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를 시작으로 샤를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에 이르는 프랑스 작가들을 탐독, 까지는 아니고 늘 그렇듯 찍먹하면서 프랑스어와 프랑스어 여행 못가는 징크스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다. 작정하고 수집하는 건 아니지만 야금야금 흄세 매거진을 쟁여놓고 종종 틈새 독서용으로 활용하는데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리즈를 통해 입문한 작가가 바로, 조르주 상드였다.
자전적 소설인 <그녀와 그>를 리뷰할 때만 해도 열정이 넘쳐 프랑스어로 뮈세와 랩배틀을 하겠다는 다짐을 했는데, 아니 에르노의 <세월>을 프랑스어판으로 구입한 것 외에는 달리 성과가 없다. 과연 봉쥬르 4년차가 에르노의 원서를 읽기까지 어떤 동기부여가 필요할지. 일단 여행은 좀 해야겠다. 그리고 멘탈여행의 징검다리를 제공한 로런 엘킨의 산책에세이 <플라뇌즈>도 여러번 정독하고 있다. 내게 조르주 상드와 버지니아 울프의 정신을 복붙해준 이 책의 한국어판 정식 이름은 <도시를 걷는 여자들>이다. 산책언니라는 필명을 제공한 책.
소장중인 아니 에르노 번역서는 권호영(Erin) 작가의 제안으로 레모의 중쇄 이벤트를 신청해 책을 제공받고 우수 리뷰어 상품으로 아메리카노까지 받았던 <얼어붙은 여자>가 있었다. (리뷰 전문은 네이버 블로그 참고) 본격적으로 갓생을 살기 전, 워밍업 단계(?)의 사건이었다. 심지어 에르노가 노벨상을 받기 전이었고. 최근에는 리뷰 직후에 수상하는 작가가 많아져서 약간 부담(?)도 된다.
노벨상은 못 맞추겠지만, 돗자리 협찬 받아요.
브런치 필명 '새벽녘 연필소리' 작가의 추천작이었던 시몬 드 보부아르의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서문의 분량만 노벨라 정도여서 딱 거기까지 읽고 대기 중이다. 어쩌다 프랑스를 탈출했는지, 기억이 까마득하기도 하지만 애초에 프랑스에 간 적이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조르주 상드의 영국버전(?)인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는 원래 8편의 노벨라가 수록된 벽돌인데 마찬가지로 1편을 읽고 무한 대기 중이다. 고전 덕질을 하면서 반드시 읽겠다고 결심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원서도 구입했지만 읽은 건 번역서, 그것도 앤솔로지 수록작.
영어권 작가도 브론테 집안을 벗어나는 데 10년 이상 걸렸다. 프랑스 작가는 더 일찍 시작해서 (조금 충격받고) 더 오랜 시간이 걸려 리부트 비슷한 걸 했지만 최근에 읽은 작가는 보들레르밖에 없다. 연초에 구입한 로맹 가리 또는 에밀 아자르는 읽겠다고 큰소리 치고 이미 내년으로 밀려난 작가인데...
그럼 난 대체 뭘 읽은거지?
갓생 1년차였던 작년에 프랑스 덕질을 결심하고 올해는 영 우울해져버린 결정적 이유는 이탈리아 작가들에게 시선강탈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제 번역서를 참을 이유가 없으니 소문이 자자한 이탈로 칼비노와 엘레나 페란테를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칼비노가 좀 짜증날 정도로 어려우면서도 승부욕을 자극한다면, 페란테는 와우. 이 언니는 내 머릿속을 스캔했나? 아닌 게 아니라 여러 번 언급하겠지만 엘레나 페란테와 박연준의 시너지로 마침내 나는 봉인된 기억 하나를 뿌리째 뽑아냈다. 완성도가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닐지라도.
인스타그램에서 한 번 더 재주행 타이밍을 노리는 책이 바로,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이다. 어차피 브런치와 중복 인구가 많지 않으니 약간의 스포일러를 하자면 올해의 책 후보 중 막강한 1위를 달리고 있다. 가을에 읽은 걸작들이 순위를 흔들고 있긴 하지만 분량에서 많이 밀린다. 예를 들어 토니 모리슨은 너무너무너무 훌륭한데 밤을 새워 읽지는 않았고, 신성아는 친구추천 금지 규칙에 따라 제외했다. (재작년에는 권호영 작가도 포함시켰지만 그땐 읽은 책이 별로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엘레나 페란테는 사생활이 극비에 부쳐진 익명 작가이기 때문에 마음놓고 덕질하기 딱 좋은데 덕질의 한계가 작품 내부로만 한정되어 아쉽다. 그런데 조르주 상드와 같이 인생이 더 예술인 작가들은 실제로 작품을 읽었다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아쉽다. 콜레트, 보부아르까지 시도하는 그나마 알려진 출판사들도 모두가 알지만 대부분이 읽지 않는 상드까지는 위험부담이 크겠지?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현대 사회의 관점에서, 페란테가 의문의 1승을 했다.
민음세문의 출발점이기도 한 독일 작가 중 특히 헤르만 헤세는 이유도 모른 채 중학교 시절부터 덕질한 최애 작가다. 지난 세기에 <지와 사랑> 버전으로 읽은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이번 추석 집중 독서의 메인이었다. 앞서 언급한 헤세 전집 초판본 <데미안>은 재독하려고 대기중인 동시에 계속 뒤로 밀리는 중이지만 오히려 내게는 더 강렬했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다른 버전이 있는데도 민음세문으로 재구매했다.
리뷰에서도 언급했겠지만 대학 '강의식' 부적응자였던 내게 강의와 교수진에 대한 호감도(그리고 학점까지)를 선사하신 임홍배 교수님의 역서가 바로 민음세문에 수록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였고, 초독 당시에도 이 책에 대한 괴랄한 취향을 공유했던 추억이 잔뜩 묻어있는 책이다. 고전과 세계문학과 작가론에 대해 벼락치기에 가까운 업데이트를 거쳐 이 시점에서 눈독들이는 작품은 <유리알 유희>지만 실제로 이번 크리스마스 셀프 선물로 대기중인 책은 <전쟁과 평화>다. (지난 챕터 참고)
엘레나 페란테와 서울국제도서전과 서울국제작가축제 등 외부 요인에 의해 방향이 크게 바뀌었으나 연초의 위시리스트는 부커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여성 작가들을 중심으로 계획했었다. 계획과 충동구매와 생일선물이 맞아떨어졌던 작가들이 팻 바커, 토니 모리슨, 도리스 레싱이었다.
대기중인 민음세문의 남은 책들 중에서도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은 1순위인데 분량이 적지 않아 해를 넘길 것 같다. 다수의 책친구가 추천했던 밀란 쿤데라의 <농담>은 잃어버린 쿤데라의 대표작을 대리만족하기를. 세계문학 책소개책에서 꽤 비중있게 등장하는 치누아 아체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그 중 가장 얇으니 한 달 안에 읽는 것이 목표인데, 연말연시라 장담은 못한다.
민음세문 달력을 받으려고 구입한 마거릿 애트우드의 <도둑 신부>는 막 도착해 존재감을 뽐내고 있지만 같은 작가의 에세이 밑에 말 그대로 '깔려 있다'. 읽는 속도와 별개로 책수집 속도를 높이기로 했던 그 <농담> 시즌에 <그리스인 조르바>도 구입했다. 알라딘 강남대로점에서 역자의 에세이를 읽다가 마침내 나도 이 책을 읽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그러니까, 책은 계속 책을 부른다. 복리같은 것.
내년에 읽어야 할 벽돌책 1순위는 올해 펀딩했던 책들이고, 작년에 읽다가 던져 둔 책들이지만 그렇게 읽어야만 하는 당위에 집착하면 질릴 수도 있다.
원래 궤도에서 아직 구입하지 못한 책들도 검토해본다. 이미 산 책 말고, 내년에 구입해서 새 책 냄새를 맡을 책들. 올해 내내 눈으로 표지만 스캔했던 줌파 라히리, 조이스 캐롤 오츠와 조금 애매하게 자꾸 밀려나는 D, H, 로렌스, 테네시 윌리엄스는 아무래도 번역서를 사야할 것 같다.
원서 고민이 없는 비영어권 작가들은 역자 또는 출판사에 대한 선호도에서 갈릴 수 있는데, 여태 민음사를 무료광고했지만 최근에 현대 한국문학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지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문학동네도 덕질하고 있었다. 특히 권여선과 구병모의 어텐션북을 나란히 놓고 보니 맞네, 맞아.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가 외롭지 않도록 톨스토이의 시리즈물(?)을 함께 놓아줄 예정이다. 그런데 이 책은 또 어디에 숨겼지? 이래서 책은 시리즈가 좋다. 떼로 모여있으면 숨겨도 찾기가 쉽거든.
영어 리리부트는 너무 부담갖지 않으려고 하지만 새해니까 3일마다 작심은 해보려 한다. 아직 새해가 아니라고? 나의 새해는 12월 11일에 시작한다. 이런 마인드는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정신과 정반대에 있으므로, 모든 계획을 당겨서 실행하고 모든 목표를 당겨서 이룰 수 있다. 답이 없으면 빠르게 방향을 바꾸되 그만두지 않기. 프랑스어도 그만두지 않기.
지난 봄에 읽은 에드워드 호퍼 테마 앤솔로지 <빛 혹은 그림자>의 표지인 '남은 그림'에서 출발한 장편 판타지 소설 <레베카 스톤>은 5화까지 연재하고 무한 휴재에 들어갔다. 잊을만하면 한번씩 등장하겠지만 내가 17년 전 레알 일필휘지로 첫 소설을 쓴 뒤 내내 완성작이 없다가 비록 프롤로그지만 완성해 본 (아주 짧은) 두 번째 단편 소설이었다. 정규 연재분은 그냥 계속 이어지는데 아직 발단의 발단 부분만 공개된 상태다. 그런데....
<레베카 스톤> 시리즈는 프롤로그의 배경인 미국에서 출발해 파리와 유럽 곳곳에서 여름방학을 보내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왜 파리인가?
좌절된 여행의 목적지 다발에 빠짐없이 포함되는 곳이 파리이기 때문이다. 유럽 여행은 그야말로 유럽을 아우르는 여행이지만, 그 중에서 특히 가고 싶은 곳이 십대에는 독일과 스위스, 이십대에는 스페인, 삼십대에는 스웨덴, 최근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였다. 앞서 프랑스 문학과 프랑스 여행의 시너지를 기대했다가 이탈리아 작가들에게 반해서 프랑스가 뒷전이 된 이야기를 했지만 그렇다고 프랑스를 버린 것이 아니다.
여전히 내 서재를 차지한 라울 뒤피와 앙리 마티스 옆에는 '파리 전도'가 붙어있다. 딱히 책스타그램을 노린 것은 아니었으나 2020년 새해 다짐을 표현한 사진이 바로 연간계획표를 배경으로 촬영한 <파리 가이드북>이었다. 그 사진을 올리고 얼마 후 팬데믹이 시작됐지만 그동안 이 책은 <레베가 스톤> 시리즈를 집필하는 첫 번째 레퍼런스가 되었다.
책스타그램의 서막에 <파리 가이드북>을 진열했기 때문일까? 팬데믹 기간에 여행 사진을 전시하고 인친들의 여행 사진으로 대리만족을 해야만 하는 현실에 적응하다 영어 리부트를 하고 처음으로 서평단을 신청한 책이 권호영 작가의 <대체 조지아에 뭐가 있는데요?>라고 했었다.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굳이 서평단을, 그러니까 독서 기록을 할 생각도 못했겠지만 하더라도 여행에세이를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행에세이도 책 나름이다.
여행에세이로 에세이 분야에 입문해 경수필과 자기계발서도 협찬받아 보고 평소에 눈길을 주지 않던 분야의 책까지 다양하게 읽어보는 훈련을 했다. 특히 영어로 리베카 솔닛을 읽다가 진짜 혼절하는 줄 알았는데, 너무 지쳐서 자랑할 마음도 안 들었지만 덕분에 번역서가 많이 편해졌다. 엘레나 페란테를 소개한 이다혜 작가의 독서에세이를 통해 올리비아 랭(그리고 조세핀 호퍼와 게이 예술가들)을 알게 됐고, 로런 엘킨의 <플라뇌즈>와 번역가 서제인을 따라다니다 비비언 고닉도 알게 됐다.
솔닛부터 캐시 박 홍까지, 윈덤캠벨문학상 논픽션 부문의 수상자들의 결이 있다. (브런치북 <인생작가 수집하기>의 관련 파트 참고) 이들을 읽은 덕분에 캐시 박 홍과 같은 앳 시리즈로 등장한 신성아의 신간이 세계에 일으킬 파문을 직감할 수 있었다.
갑자기 현타. 나는 그동안 (물론 우회적으로) 저평가한 작가들을 제대로 읽긴 한 걸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