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 숟가락 구경하는 재미

에세이, 잘 쓰려면 잘 읽자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팬데믹 독서치료는 역시

여행에세이



인스타그램에서 여행에세이 <대체 조지아에 뭐가 있는데요?>를 발견함으로써 아주 오랫만에 국내서 수집을 재개했다. 그렇기에 인스타와 여행과 책은 여전히 한묶음이다. 애정하는 소설 속 인물 리스베트 살란데르와 해리 홀레도 여행덕후였지만 여행과 여행에세이를 거쳐 수집하게 된 책은 배경이 특이할수록 좋고, 인물이 여행을 한다면 더 좋다.


여행 사진을 잔뜩 쌓아두고 유럽 여행을 준비할까? 했는데 팬데믹과 함께 미드로 대리만족을 하다가 점차 내 여행사진 다시보기를 거쳐 다른 사람들의 여행이야기를 읽고 있었다. 여행이 코 앞에 닥쳤을때도 가장 도움이 되는 건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로 발견한 포토존과 한국어로 자세하게 조목조목 알려주는 블로그 속 상황별 대처방법이다. 여행이 무한연기가 되어 (이러다 끝나겠다는 예감) 이미 다른 사람이 다녀온 여행을 정주행하는 방법이 최선이었을 때는 완결된 여행에세이가 좋다.


가이드북에 있는 모든 곳을 다 가볼 필요는 없다. 그 여행지에 관심이 있다면 가이드북이나 모든 리스트를 참고할 수 있지만, 당장 떠날 수 없다면 TMI로 자리(데이터)만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팬데믹 이후에 가이드북 개정판을 출간하신 작가님들은 존경받을만하다.) 나라, 도시, 테마로 묶은 여행에세이는 한 명의 작가가 직접 다녀온 곳 위주로 멘탈여행을 떠날 수 있다.




책소개 맛집 찾다 발견한

독서에세이



책 이야기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다보면 책소개 맛집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리뷰를 간결하고 재미있게 적당한 주기로 업로드하는 리뷰어도 있고, 열정적으로 다독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책소개를 하는 리뷰어도 있다. 특히 독서 좀 하는 것으로 소문난 작가들의 독서에세이를 읽어보면 눈여겨볼 책들이 대량 입고되는 (적어도 위시리스트에) 경험을 하게 된다. 지난 2년을 뒤흔든 에피소드가 있다.


처음으로 서평단에 당첨된 오스트레일리아 작가의 책에 추천사를 썼기 때문에 더욱 각인이 된 작가라고 기억한다. 나 역시 초보 씨네필이었던 2000년대 초중반에 즐겨읽던 <씨네 21> 기자인 이다혜 작가가 (아마도 거의 처음으로) 2016년에 출간한 독서에세이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는 작년 설날 우연히 방문한 알라딘 건대점에서 '나를 부른' 책이었다. 그날 나를 부른 책이 많았지만 다른 책들을 계속 들었다 놨다 하면서도 이 작은 책은 포기를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들러붙었던 책들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일부는 연관이 있다. 그러니까 2022년 초에 구입해서 2022년 가을에 완독한 독서에세이 <어른이 되어...>에 등장하는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는 2022년 연말 '올해의 책' 포스팅에도 등장하지만 리뷰만 5부작으로 작성한 책이다. 뿐만 아니라 올리비아 랭의 '자유와 연대 3부작'을 번역 출판한 어크로스 덕분에 2023년 서울국제작가축제 에서 (온라인으로 참여한) 올리비아 랭의 강연에 함께할 수 있었다. 같은 무대에 라이브로 참여한 박상영 작가, 그를 수출한 안톤 허 작가의 에세이를 또 한번 어크로스에서 출판하고 거대한 연결고리는 무한히 순환하는 역동적 싸이클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외로운 도시>리뷰는 브런치 버전으로 통합했을 때 유일하게 15분으로 예상되는 글이 됐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그 무드를 소환해보는 작업이 작년 가을을 통과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치료제였다. 그때만 해도 <어른이 되어...>의 꽃이 랭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랭의 리뷰가 마무리될 쯤 급하게 이사를 결정하고 새로 둥지를 틀게 된 알라딘 우리동네점에서 드디어 엘레나 페란테를 만났다.


<어른이 되어...>가 그랬던 것처럼 페란테의 나폴리 1권은 나를 부른 후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책인데 이 책에 대한 썰을 누군가가 엄청 찰지게 풀었었는데...라는 생각도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썰이 <어른이 되어....>에 수록된 에세이였고, 그 누군가가 이다혜 작가였다. 작년 말에 1권을 구입하여 올 봄 내내 페란테 타령을 하게 된 나폴리 4부작은 다음주에 예정된 2023년 '올해의 책'에 등장할 예정이다.


이로써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는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도 2년 연속 내 서재와 리뷰 세계(?)를 지배했다. 원래 이다혜 작가의 책 중에서 가장 읽고 싶었던 <범죄영화 프로파일>도 알라딘 우리동네점에서 구입했는데 영화 못보는 병에 걸려서 이 책도 자동으로 무한 휴독중이다. 이다혜 작가의 <코넌 도일 X 이다혜>와 앤솔로지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는 비슷한 시기에 각각 리뷰했는데 같은 카테고리에 모아두지는 않았다.




에세이의 달인들



책소개책에 관한 포스팅은 여러번 했었다. 120권의 고전을 만화(?)로 요약한 <세상에서 가장 빠른 고전읽기>와 온라인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앤드류 타일러의 <Books That Changed the World>에 나오는 세계 고전 목록은 네이버 블로그에 있다. 김영란, 타니아 슐리, 그리고 우리의 버지니아 울프는 브런치북 <폴리매스 고전산책 1>의 첫 번째 파트에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산책덕후 한국언니'라는 필명의 단초가 되는 산책덕후 영국언니라서 특별하지만 그녀 자신의 이정표적 존재를 떠나(?) 동시대 에세이 퀸이라고 할 수 있는 (나는 역사학자라고 간주하는) 리베카 솔닛의 빈출 작가이기도 하다.

<걷기의 인문학>은 번역서의 제목이 성에 안 차고 원서는 너무 어려워서 추천하기 까다로운 책인데 리베카 솔닛의 다른 3부작에 포함된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가 앞서 언급한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와 마찬가지로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알라딘 우리동네점에서 인기 절정의 한국작가를 결국 포기하고 솔닛의 번역서를 데려온 덕분에 드디어 내 부족한 영어가 아닌 김명남 선생님의 번역을 곁들인 솔닛 언니의 핵심에 가까이 접근해볼 수 있었다.


리베카 솔닛으로 브랜딩(?)이 된 윈덤캠벨문학상(은 물론 덕후들만 알겠지만)의 논픽션 부문 수상 작가인 비비언 고닉, 앞서 언급한 올리비아 랭, 그리고 한국계 미국 시인 캐시 박 홍의 에세이를 읽고 나면 에세이에 대한 선입견이 재정비된다. 위로에세이라는 컨셉으로 좋은 말, 예쁜 말만 가득한 순한 맛 에세이는 도리도리하게 되지만 (심리학자, 힐러, 정신과 의사의 진짜 치유라면 편의상 전문서적이라고 분류하자.) 윈덤캠벨 위너의 논픽션은 어지간한 문학평론서보다 매운맛이다.


대중적으로 좀더 알려진 캐럴라인 냅과 <도시를 걷는 여자들>을 통해 리베카 솔닛, 버지니아 울프와 조르주 상드 등의 전설들과 우리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된 로런 엘킨도 훌륭하다.




경험이라는 연료



전설적인 에세이스트와 올리비아 랭, 비비언 고닉처럼 이제 막 인정받는 작가들을 비롯해 이다혜 작가와 같은 국내 오피니언 리더를 포괄하는 글쓰기 방식은 고닉의 책 <상황과 이야기>를 통해 집중 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평론과 회고록의 불안한 공존이다. <상황과 이야기>는 영문학 석사 과정 수업 교재를 정리한 책이라 쉽지 않지만 고닉의 글쓰기 방식에 허를 찔려본 사람이라면 그녀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진짜 쓸모는 부록으로 실린 글쓰기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직후에 논픽션 글쓰기 하드 트레이닝을 해보고 싶었으나 (책을 읽는 동안에는 의욕이 넘쳤다.) 그로부터 얼마 후 박상영 작가의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고 픽션 썰욕구가 터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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