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위한(?) 창작 부스터 맛집 소개
브런치북 공모전을 앞두고 2022년 추석 브런치에 입성했다. 팬데믹으로 실패한 유럽여행 대신 인스타그램에 지난 미국 여행 사진을 정리하다 3년차인 작년 봄부터 분량을 꽉 채운 2천자 냅킨에세이를 연재물로 쓰고 있었다. 충동적으로 미국: 로드트립 파트를 8부작으로 작성한 뒤 출발점인 시카고로 돌아가기 전 필력 강화를 위해 짐바브웨 여행에세이도 8부작으로 작성했다. (브런치 작품리스트 참고)
공모전까지 남은 기간 동안 시카고 뒷부분과 마이애미, 뉴욕만 쓰면 되니까 이틀에 한 번 꼴로 여행에세이를 한 챕터씩 쓰기로 했다. 갓생 1년차의 마지막 분기는 그렇게 '브런치북 공모전' 첫 도전으로 완성됐다. 공모전 출품도 의미있는 성과였지만 무엇보다도 브런치북이라는 형식의 완결된 책으로 여행기를 완성했기 때문에 출판 과정을 거치지 않았음에도 자존감이 업그레이드됐다. 한동안 '출간작가'들과 괜히 비교하는 쓸데없는(?) 자기 학대를 하기도 했지만 덕분에 열등감을 해부하고 보다 내면을 치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분투의 과정이 논픽션에서 픽션으로 그라데이션하는 브런치 작품 목록과 (특히 최근 6개월 간의) 서평이다.
실제로 출간작가들은 괜한 부러움의 대상이기보다 서평가로 성장하는 원동력을 제공한 협업자들이었다. 책스타그램이라는 세계에서 나의 오리 엄마 역할을 맡게 되어버린 권호영(에린) 작가는 이름만 들어본 조지아, 포르투갈의 안내자이기도 했다. <대체 조지아에 뭐가 있는데요?>는 여전히 대체불가능한 조지아 여행에세이고, <반 박자 느려도 좋은 포르투갈>은 일단 표지가 너무 예쁘고(에린 여행 시리즈 수집 필수!) 내용도 실해서 선물용으로 딱이다.
에린 작가의 블로그, 브런치, 클럽하우스 계정을 투어하는 동안, 암투병 여행기 <낙타의 관절은 두 번 꺾인다>로 다양한 지역의 현장감을 보여준 에피 작가도 알게 되었다. 에피 작가의 책 초판의 디자인이 조금 아쉬웠는데, 마침 개정판이 등장하여 직접 서평단을 모집하는 영광도 누릴 수 있었다.
스페인 여행 실패담으로 연결된 레나 작가는 저자 중에서 처음으로 협찬 리뷰를 선제안해준데다 지금은 죽고 못 사는 툴러 플래그에 입문시켜주었다. 레나의 <한 달은 짧고 일 년은 길어서>에 등장하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아프리카 사자 인형을 보고 소름돋는 이야기는 리뷰에 썼던가? 올 가을 레나 작가가 있는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계획했는데 갑자기 2002년처럼 바빠져서 장기 워케이션은 내년(?)으로 미룬 상태다.
이 달에 리뷰한 신연우 작가의 신간 <어느 날, 이탈리아 소도시>와 이해솔 작가의 <나는 왜 산티아고로 도망갔을까?>는 내가 미쳐있는 소설 속 배경으로 순간이동을 시켜주었다. 이들은 생생한 논픽션과 그림보다 더 그림같은 사진들로 관절 소모 없는 간접 경험을 세상과 공유한 선한 영향력의 화신이다.
그래서 나는 어디로 떠날 거냐면....
매주 예고하고 있고, 이번 주 서평 숙제가 무사히 마감 전에 등장한다면 이어서 연말 결산으로 포스팅할 예정인!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에 단단히 매료된 2023년이 저물고 있다. 지난 2009년과 2020년에 계획을 철수한 문제의 '유럽여행'에서 주요 방문지가 될 예정었던 파리와 바르셀로나를 제치진 못했지만 나폴리와 런던이 당당히 4대 도시에 이름을 올린 상태다. 한 번의 유럽여행에 너무 많은 계획을 세우다 계속 미뤄질 것 같으니, 여권의 만료기간 전에 매년 찍먹 세계일주를 가보려고 한다. 일단 2024년에는 제주-런던-파리-나폴리-바르셀로나-LA-샌프란시스코 정도만 방문해볼까?
엘레나 페란테 덕후라면 참기 힘든 알랙산드라 앤드루스의 장편소설 <익명작가>와 비비언 고닉의 에세이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에는 뉴욕 주(업스테이트)의 캐스킬(캣츠킬?)이라는 관광지가 등장한다. 이 곳을 실제로 방문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이나 제시카 브루더의 <노마드랜드>를 읽을 때처럼 심장이 쿵쾅거렸다. 게다가 여행 스릴러를 겸한 <익명작가>에는 레나와 에피의 (충동적인?) 여행지인 모로코가 주요 배경이다! 짐바브웨 인근의 5개국을 스치듯 다녀온 나에게도 북아프리카는 (유럽과 마찬가지로) 미지의 세계인데 이렇게 자주 방문하다보니 벌써 단골인 느낌이다.
원서 버닝 시즌에 읽어둔 <배움의 발견>, <앵무새 죽이기>,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통해 내가 다녀온 플로리다와 텍사스 보다 더 외진 곳까지 간접적으로 다녀왔다. 미국 중서부 (도시가 아닌) 사막의 황량함을 미드로 보기 전부터 생생하게 상상했던 원인은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전집을 여러 번 읽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파리를 계속 못가는 저주에 걸린 나의 궁여지책은 마침 에드워드 호퍼 기획 앤솔로지 <빛 혹은 그림자>를 계기로 막을 연 장편소설 <레베카 스톤>의 주요 배경을 파리로 설정하는 것이었다. 전체 기획은 판타지 스릴러로 준비했지만 오프닝은 사춘기 로맨스로 시작해 첫 번째 사건을 암시(?)하며 중단한 곳부터 장기 휴재중이다. 그 무렵 포스트 팬데믹 모드로 공연, 전시, 축제를 비롯해 그냥 산책까지 제대로 리부트가 되어서 장편을 진행할 정도의 칩거와 과몰입이 조금 힘들었다. 대신 서울국제작가축제에서 박상영 작가가 참여한 세션을 계기로 오랜 목표였던 <대도시의 사랑법>을 드디어 읽고 픽션 욕구가 제대로 터져서 리뷰를 쓴 다음날부터 2023년의 두 번째 단편소설 <구슬>을 쓰기 시작했다.
시간적 전후관계는 그러하나 <구슬>은 오히려 엘레나 페란테와 박연준 작가의 지분이 크다. 그러니까, 캐럴라인 냅이 논픽션 부스터였듯이 엘레나 페란테(는 물론 읽다 지쳐서 리뷰도 겨우 썼지만), 박연준은 픽션 부스터였다. 그리하여 2023년 첫 번째 단편소설이자 생에 두 번째로 완결한 소설은 브런치에만 있는 (조금 많이 날것의) 세미픽션이다.
<구슬>을 완결하고 (시작은 단편이었던) 표고 연작을 준비하는 동안, 팬데믹과 비정규직을 주제로 기획한 <24시 카페 라이언>을 썼다. 실제 미국여행의 일부를 포함시킨 이 작품은 이미 장편 여행기를 쓰고 여러 번 수정했던 경험 덕분에 어느 정도 교신하는 것처럼 쓸 수 있었다.
여헹지에 책이 빠지면 서운하지! 라는 생각보다는 여행지에서 일부러라도 찾아다니게 될 특별한 장소를 배경으로 책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아기(?)를 데리고 여행하듯 책을 데리고 여행한다. 실제로는 혼여행도 친구 만나러 가는거라 책은 거의 읽지 못하고, 심지어 촬영은 틈새시간에만 가능하다. 그럼에도 서평부심(?)때문에, 여행 중에도 모닝루틴(!)과 이동시간을 활용해 책 리뷰를 하고 있다.
문제의 픽션 부스터인 박연준의 <여름과 루비> 서평은 (세 번 중 첫 번째) 대전여행 마지막 날 아침에 두 번 날리고, 오후에 세 번째 버전을 겨우 살려서 업로드했다. 그 후로는 초고의 소실 예방책을 보다 확실하게 시행하고 있지만 덕분에 2천자를 완성하는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졌고 매일 5천자 이상을 쓰는 것도 가능해졌다. 아직 글먹을 못하고 전업 작가가 아니기에 그렇게 쓸 시간이 없을 뿐이다.
지난 주에 리뷰한 <맡겨진 소녀>는 두 번째 전주여행 둘째날 아침에 인용문을 필사하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나머지 부분을 완성했다. 전주로 내려가는 기차에서, 지금 쓰고 있는 <독서테라피>의 지난주 연재분을 썼다. 글자수를 계산하지 않았지만 약 5천자 정도 될 것으로 예상한다. 서울-전주 구간이 고속열차(KTX)로 2시간인데, 최근에 내가 2천자 냅킨에세이를 쓰는데 걸리는 시간이 40분 정도이니 그의 약 3배를 썼거나 그보다 조금 덜 썼을 것이다.
대전, 춘천은 고속열차로 1시간 거리여서 이동중 타이핑이나 독서가 쉽지 않다. 카페에서도 체류 시간이 1시간 이하일때는 급한 일 아니면 키보드를 세팅하지 않는다. 이것도 충분히 긴 시간이지만 집이 아닌 곳에서는 주로 폰 댓글과 폰 메모를 하는 편. 책이나 키보드를 세팅하고 약 15분 정도 부스팅을 해야 분노의 독서나 타이핑이 가능한데, 하차 준비를 하려면 실제로 작업하는 시간은 30분 내외라 집중하기보다 그냥 여행을 즐겼다. 그런 시간도 때로는 필요하니까. 환승을 자주 해야하는 지하철에서도 몰입이 필요한 작업을 잘 안 하는 편.
여행 에세이, 여행의 비중이 큰 소설 아니어도 책을 통해 직간접 경험이 연결된다. 여행에세이는 말할 것도 없고 나의 최애 소설은 주로 스릴러나 방랑물이거나 둘 다이기 때문에 주인공이 계속 돌아다니고 나 역시 계속 돌아다니며 읽는다. 심지어 본격 방랑물도 아닌 권여선의 단편소설 '사슴벌레식 문답'도 여행물이니 취향의 일관성(?)에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뉴욕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24시 카페 라이언>을 쓰는 동안 백수린의 단편소설 '빛이 다가올 때'를 읽으면서 물아일체(?)를 경험한 것 역시 올해의 베스트 교신 타임이다.
리뷰는 점점 사실주의 초미니소설이 되어가는데, 독자님들도 나도 리뷰와 픽션의 경계를 더이상 찾기 힘들어 스스로 장르파괴범을 자처하고 있다. <대도시의 사랑법>에 수록된 <이른 우기의 바캉스>를 패러디한 <늦은 우기의 산책>은 본디 산책에세이로 출발한 장편에세이였으나, 픽션이 리뷰까지 침범한 마당에 에세이 백화점(?)을 유지할 여력이 없어 현재 에세이는 <독서테라피>에 몰아쓰는 중.
말 그대로 1년 전 이맘때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를 읽으며 논픽션 썰욕구가 터진 것이 엊그제같은데, 그 사이 장편소설을 2만 5천자 정도 쓰다가 단편소설로 넘어와 5편을 쓰고 있고 (일부 중복이 있지만) 브런치북은 12권을 엮었고 연재브런치북의 3분의 1 지점을 완성하는 중이다.
책이 책을 부르고 책이 서로를 소개한다. 이 글에 포함된 레퍼런스만 봐도 블랙홀처럼 책덕후를 빨아들이는 것은 다름아닌 책과 책 사이의 연결고리다. 가끔 인스타 광고를 보면 '내 뇌를 스캔했나?'하는 음모론적 의심이 들 때가 있다. 책은 그보다 더하다. 그냥 표지나 제목에 끌려서 읽었거나 그냥 원래 아는 작가인데 너무 많은 배경이나 모티브가 겹치면 전생에 가까운 친척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분명 한국어인데 1도 이해가 안 가는 말만 잔뜩 써 놓은 책도 수없이 많다. 내게는 그런 책들이 주로 주류(!) 경제, 경제가 접목된(!) 자기계발서, 특히 문학적 소양이 0에 수렴하는 무늬만 작가인 사람들이 쓴 '비문모음집'에 가까운 책들이다. 자기계발서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작가가 주요 키워드인 문학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마추어나 사기꾼이 쓴 책도 제목이 그럴듯하면 팔린다는 점에서 의욕이 이미 좌절되는 시장이다.
그럼에도 인스타그램 공략집으로 출발한 <셀럽의 조건> 후속작을 또 기획하고 있다. 그러니까 비록 언젠가는 과거가 될지라도, 알고리즘보다 민심(?)을 공략한 나의 토탈케어가 현재 제2의 전성기를 맞아 떡상을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에 한번 더 자랑질을 해야겠다. '내가 뭐랬니?'라고.
일단 그 전에 새해를 맞아 인생목표였던 '영어로 소설쓰기'를 재점검할 예정이다. 목표수립 10년차, 영어로 소설을 쓰지는 못했지만 영어로 시를 쓰고 한국어로 소설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10년 뒤에 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