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인 글쓰기의 시작(詩作)
인스타그램 사용시간 제한을 걸어두고, 이틀에 한 번 꼴로 (마치 벌 받고 싶어 안달난 사람처럼)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에 입각한(?) '나중에 다시 시도하세요' 경고를 받고 그 상태를 어떻게든 되돌려보려고 한 시간에 한 번 꼴로 재로그인을 해도 소용없다.
결국 '아, 오늘도 망했네'라며 별 성과없이 퇴근하거나, 오늘의 포스팅을 성공하여 합법적으로(?) 소통이 가능해지는 시점 이후로는 시간 제한도 풀어버리고 맹렬히 폰 중독자의 탐욕스러운 스크롤에 몸과 마음을 맡긴다.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언제 제정신이었던 때가 있긴 했나?
서평을 포함한 냅킨에세이 발표 주기(작년 상반기 기준 주4회가 목표였으나, 최근에는 다시 주6회가 목표)를 짧게 설정하거나 외부 약속을 잡거나 충동적으로 산책을 나가는 횟수가 늘면서 팬데믹 무기력증 패키지 중 가장 악성이었던 씻기 싫어증에서 어느 정도 회복됐다. 씻기 싫어서 외출을 못해서 점점 더 무기력해지는 악순환을 더 이상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었던 지난 11월의 어느 날 충동적으로 요가센터에 등록했고, 기대 이상으로 만족했기에 등록 기간을 내년 상반기까지 연장해 둔 상태다.
느슨한 루틴에 운동을 포함시키자 샤워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다른 약속이 없다면 저녁에 씻고 야간 독서를 하고, 모닝루틴은 샤워없이 세안과 커피 독서로 체온만 올린다. (겨울이니까.) 시간 맞춰 이동 후 오전 11시 전후에 운동을 하고, 브런치를 먹으면서 그날의 분량을 집필하고 싶은데......운동 전 금식(?)하기 때문에 운동 끝나기 10분 전부터 폭식할 준비가 되어있다. 식사 후 단골 카페에서 커피 독서 또는 집필을 하고 다음 날도 운동을 할 거라면 집에 와 씻고 저녁을 먹거나, 저녁을 먹고 씻는다.
가끔 저녁 샤워를 놓치면, 다음날 아침에 좀더 정신줄을 조여서 독서 대신 샤워를 하고 운동을 이어간다. 다만 운동에 대한 의지가 넘치는 주간이 그래봐야 한 달에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그럼에도 외출 계획과 운동 루틴에 따라 이 계절(!)에 일 2회 샤워도 해봤다. (아참, 머리를 좀 잘라야 하는데.)
샤워할 때 네게 일어나는 그런 것 말이야, 아가. 그걸 생각이라고 불러. 구글이 생기기 전에 사람들이 했던 일이야. 생각이란 마치......너 자신의 머리로 구글 검색을 하는 것 같은 거지. -글래넌 도일, <언테임드> 중에서
운동시간에 휴대폰을 떼어놓고 폰 없는 상태에 충분히 익숙해지면 독서 몰입시간도 늘어나는 것 같다. 서평 마감일, 감기 등 변수가 다양했지만 결과적으로 연말연시 독서량도 꽤 늘었고(밀린 서평을 마감일에 벼락치기하는 쾌감이여!) 이게 가능했던 이유 중에는 (감기 때문에) 체온 조절을 위한 1일 1샤워도 있었다. 씻을 시간이 지났는데 안 씻으면 다른 모든 의욕이 감퇴한다. 반대로, 24시간을 넘기지 않고 샤워를 하면 그 시점에서 가능한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 몸을 부드럽게 하고 깨끗해지는 동안 폰 없는 사유의 시간까지 확보할 수 있다.
마네킹보다 갈비뼈의 둘레가 짧은 내 체형의 말 못할 고충이 있다. 밥만 먹어도 두 사이즈가 늘어나는 것이다. 너무 딱 맞는 옷을 입으면 호흡곤란이 온다. 그러니까, 코르셋? 그런 것은 꿈도 못 꾼다. 식사 전에 조이면 아예 못 먹을테고, 식사 후에 조이면 언젠가는 헐렁해질 것이다. 십 년 전에 조금 살이 붙었던 이후, 주로 자급자족을 해왔기 때문에 적정체중 혹은 미달체중이었다. 하지만 레깅스와 편물드레스 외의 조이는 옷은 멀리한 지 오래. 수많은 아이템 중에서 허리치마를 집중 공략한 이유도 사이즈 변경을 수시로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고무줄 치마가 아님에도 작거나 크지 않게, 허리를 내 몸에 맞출 수 있다니! 코르셋처럼 조이는 개념이 아니기에, 허리치마의 '고정되지 않은' 허리 사이즈는 너무도 큰 매력이었다. 단점은 골반에 걸쳐지지 않고 허리띠와 배의 장력(?)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장시간 착용시 은근 피로감이 있다는 것.
촉각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예민하다. 심지어 무언가가 피부에 닿지 않고 그냥 가까이만 있어도 온몸의 솜털이 바짝 일어나는 편. 그 무언가가 사람일 때, 그러니까 타인일 때, 호불호를 떠나서 그 존재감을 격하게, 깊숙하게 느낀다. 그래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대체 왜들 그렇게 타인의 퍼스널 스페이스를 침범하세요? 특히 공공장소에서.
시각은 예민해서, 어린 날 빠릿하지 못했던 손발을 보조했다. 뭐랄까, 계산하기 싫어증과 같은 증세들을 그나마 덜 눈에 띄게 해준 것이 시각적 추론 능력이다. 지금은 오탈자 발견도 느리지만 한참때는 무엇을 보든 눈으로만, 스포이드처럼 거의 정확한 색을 뽑아냈다. 다시 생각해보면 예민한 시각을 게으른 손발이 따라가지 못하니 그림은 그리기보다 감상해야할 운명이었다. 안 그리겠다는 건 아니고.
후각과 미각은 더하다. 예민보스 동호회에서 보스를 하고도 남으실 분들도 '귀신'이라 하고 간다. 다만 티를 안 낼 뿐. 참,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같이 밥 먹고 있는 사람이 (밥을 누가 사던 간에) 티 안내고 적당히 반인분 이상 먹고 있는데 계속 맛없다고 하는 사람들......중에 특히 얄미운 부류가 있다.
예민하지 않은 척 한다고 해서 덜 예민한 것은 아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그렇게 예민 뿜뿜하는 사람들의 어글리한 표정이나, 새된 목소리 또는 체취 같은 것들이야말로 도저히 참을 수 없다. 그러니까, 본인이 타인의 예민함을 침범하는 건 생각지도 않고 세상 불만집합소인 사람들은 예민보스여서 삶의 스트레스지수가 높은 사람들과 다르다.
참을만큼 참았는데도 예민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것이 억울한 사람은 인정, 그러나 예민하다는 말을 듣지 않을 정도로 티를 안내고 사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 참을 의무는 없지만, '더' 참기를 선택한 사람을 둔한 사람인 양 매도하지 않았으면.) 장기적으로 티를 최대한 내지 않아야 삶이 살만해진다. 그리고 티 내지 않는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이거야말로 평생 이것만 집중수련을 했을 정도라니까. 예를 들면 어떻게든 러시아워에 전철을 타는 직종을 피한다! 비수기에 전철을 탔음에도 온갖 자극에 반응하지 않기 위해 정신줄을 30배쯤 강하게 쥐고 최대한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다! 그렇게 살아왔는데 나 예민하다고 티 내는 사람들과 기싸움(?)을 하게 되면 내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게 된다. 삶이 참 고단하다. (feat. 내 말 안 들어주는 나르시시스트 혈육이자 '그런 사람' 당사자) 그러고보면 예민함은 예민함대로 타고난데다, 항상 지가 더 예민하다고 징징대는 사람을 달고 사느라 아주 정신줄이 피폐해진 것 같다. 그런데, 보통 이하로 둔한 사람은 돌이랑 대화하는 것 같다지?
혼자 있기에 티를 내도 소용없지만, 혼자 사는 집에서 가장 스트레스 받는 외부 자극은 바로, 건물 밖이나 건물 자체에서 나는 소리다. 다른 감각은 내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에서 유일하게 예상할 수 없는 변수다. 층간 소음이나 복도 소음은 말할 것도 없고, 건물의 컨디션의 따라 특유의 소음이 발생하는 집은 한번씩 멘탈을 죽사발로 만든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여닫이 문이 닫히면서 건물 전체에 진동과 소음을 남기는 현상도......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돌아버리겠다. 다만 상습범(?)이 없다는 점에 감사할 뿐이다. 그럼에도 유독, 샤워할 때 건물이 울리는 날이 있다. 환기구와 타일의 예민한 통로를 타고 정말 무슨 일이 있나 싶을 정도의 과격한 소음이 전달될때면-어쩌나! 난 샤워 중인데-또 한 번, 돌아버리겠다.
그렇다. 다시 샤워로 돌아왔다. 예민함을 티내지 않으려고, 예민함을 티내서 타인을 더 불편하게 하는 존재가 되지 않으려고, 세상과의 적절한 거리를 두고 자기만의 세계에 두터운 보호막을 씌워 둔 1인 가구를 유지하고 있어도, 외부 소음까지는 차단할 수가 없다. 심지어 가장 안전하고 싶은 샤워 시간에 특히 잘 들리는 소음 때문에 놀라는 일이 많다.
한동안 불면증과 건물주의 청소하는 소리가 콤비를 이루어 한층 예민해진 상태에서 샤워 중 소음을 자주 들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단 하나의 절대 진리는 아니길 바라지만, 잠이 부족하면 청각이 더 예민해지고 청각이 예민하면 불면증을 더 심하게 겪는다. 이 상태를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은 햇빛 산책과 아침 운동이었고 이번주에는 감기때문에 의무적으로 낮잠을 잤기 때문에 간혹 불면의 밤이 찾아왔지만 역설적으로 감기때문에 오감이 둔해진 상태라 외부 자극에는 덤덤하다.
샤워 중의 소음에 놀라 귀를 적신 적이 있다. 그때 어쩐 일인지 영어로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렇게 나는 규칙따위는 모른 채 영시를 썼다.
I heard things
I heard drums rolls
I turned off and on the shower
I got water in my ear
My eardrum got soaked
Can't hear my dream
샤워 이야기를 이렇게 오래 하려던 건 아니다. 처음 이 꼭지를 기획할 때만 해도 창작에 포커싱을 했는데, 그동안 씻기 싫어증을 치유(?)했다는 뿌듯함과 참아왔던 감각의 하소연이 만나서 아무 말 대잔치.
작년 9월 중순, 첫 영시를 쓰고 다음 날 또 한편을 썼다. 그 후에는 각종 산문을 읽고 쓰느라 바빴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시를 읽거나 필사해도 몰입이 어려웠다. <독서테라피> 시리즈의 도입부에서도 거듭 표현했지만, 내가 시문학에서 좋아하는 세부 장르가 있다면 그것은 사설시조나 산문시. 하지만 짧고 강렬한 문장을 왜 싫어하겠는가. 당연히 좋다.
그런 문장은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교신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어쨌든 교신에 성공했고 뜻밖의 사건(?)으로 무려 영시를 쓰고 있(?)다.
새해 첫 꼭지라고 강조하자니 여전히 조금은 엉망이고 두서없지만, 바로 이 영시 덕분에 영어도 재주행하고 시문학에도 발을 뻗겠다고 결심했다. 영어도 인풋만 하려고 그렇게나 열심히 족친 것은 아니었으니 당연히 (꼭 영어소설이 아니더라도) 작문이 동반되어야 하는 언어다. 시문학은, 시인이라는 페르소나는 참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비유적으로) 좌우에서 영감을 주는 시인들이 있으니 적어도 향유는 해보겠다. 아니, 어차피 글 쓰겠다고 덤비는 중인데 향유라는 말은 지나치게 사치스럽고, 진지하게 배움을 추구하기로 해본다.
작심삼일로 끝날 수 없는(!) 새해 계획의 중추에 인생작가들이 포진한 1월이 있다. 어제는 클레어 키건으로 새해 서평을 개시했고, 이어서 내 마음 속 국가대표인 박경리와 권여선이 등장할 예정이다. 일종의 단기 최종목적지는 서문만 읽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모든 인간은 죽는다>를 완독하는 것. 전경린이 쓴 전기 소설 <황진이>도 재독할 예정이다. 집 나간 미술관 뽐뿌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작년의 인생작가인 엘레나 페란테의 다른 책과 조지 기싱(혹은 에밀 졸라)도 소환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아무리 갓생을 계획해도 계획의 기준은 현재 능력치의 120% 이상이고 실제 목표는 계획의 80% 이상 달성하는 것이므로 오차범위 안에 있는(!) 1월의 마지막 책은, 시인이지만 픽션 부스터였던 박연준의 산문이다. 그 책까지 가는 동안 여럿의 벽돌을 깨야 하고, 그러는 동안 다른 벽돌이 또 쌓이겠지만 1월은 시와 산문, 그리고 시인의 전기까지 읽어보는 감각적 시간으로 채우고 싶다.
한국어로 각 잡고 시를 쓰는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영어는 필력이 딸려서라도 장문보다 단문에 접근할 수 밖에 없다. 문장이 길어질수록 쓰기보다는 번역에 가까운 행위를 할테니. 모국어로 쓰는, 그러니까 생각을 타이핑하는 작업은 가끔 교신이고 대체로 받아쓰기에 가깝다. 영어로는 그게 잠깐 되다 말아서 한다고 하기도 뭐하고 그 어려운(?) 걸 했는데 안 했다고 하기도 뭐하다.
영어 읽기가 흐지부지 되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으니(일단, 브런치북만 14권째 쓰고 있다?!) 연말연시 갓생리필을 핑계로 조지 오웰부터 다시 읽고 있는데, 이 루틴은 탄탄했어도 어차피 감기로 깨질 운명이었다. 내일부터 다시 3일마다 작심해야지.
대신 오늘은 시작(詩作)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라도 시적 부스터가 필요하여, 에드거 앨런 포의 시를 필사했다. 영어 눈트임 다음 해인 2021년 정초에 한영 연속 독서를 시작으로 나름 4년째 포와 신년을 함께하는 중이다. 어쩐지 겨울과 잘 맞기도 하고, 어쩐지 연말보다 스산한 연초에 더 끌리기도 하고.
소장중인 거의 유일한(?) 시집인 진은영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도 조금 읽었다. 시집은 목표한 기간까지 분량을 쪼개서 읽는게 가능한 장르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장담은 할 수 없지만 운이 좋으면 이 책도 이 달에 리뷰해보려고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