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맛을 알려준 영어권 작가

영문학 거장들과 동시대 최고의 작가들

이디스 워튼, 제인 오스틴

코넌 도일, 에밀리 브론테



영문학의 전설인 작가들은 늘 곁에 있으면서도 멀었다. 영어로 초독을 했던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는 미국 드라마 <가십걸>을 통해 알게 된 작품이었는데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과 같은 문고판을 입수했다. 번역서로 접한 <디 에센셜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해 한참 명작의 맛을 알아가던 시기에 원서까지 여러권 해치웠다. 그 중에서 특히 영어 독서를 통한 성취감과 독서 자체의 치유 효과를 느꼈던 작품이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였다. 비슷한 시기에 읽었고 이른 2000년대에 번역서로 초독했던 <폭풍의 언덕>은 조금 어려웠다.


영문학 원서에 아직 적응하기 전 1챕터를 읽고 방치했던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역시 2000년대 키이라 나이틀리의 영화 개봉을 앞두고(?) 급히 읽었던 기억은 남아있다. 하지만 책을 읽었다는 기억 외에는 특이사항도 없었고, 영화가 있다는 것만 기억했지 봤다는 기억조차 없었다. 다만 싸이월드 복구 이벤트(?) 덕분에 2000년대 중반의 영화감상 기록을 볼 수 있어서, 이 영화를 관람했다는 물증이 확인됐다. 원서로 두 번째 시도 끝에 드디어 제인 오스틴이 왜 전설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원작 제목의 라임부터 깨지는 번역의 아쉬움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오만과 편견>을 통해 읽어냈어야 할 코드가 처음에는 흥미롭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이야기들은 사춘기에 접하지 못했다면 삶을 어느 정도 관통한 후에 읽어야 제 맛을 알게 된다. 평생 끼고 살았던 코넌 도일도 틈틈이 읽어왔는데 번역서를 반복해서 읽었던 2000년대 이후로 더 재미있고 현란한 작품을 다양하게 경험했고, 하여 이 독서가 마침내 원서를 읽고 있다는 기본적인 쾌감에서 더 나아가지는 못한 것 같았다. 이미 읽어보고 싶은 작가들이 너무 많기도 했다.





에드거 앨런 포

해리엇 비처 스토



코넌 도일이 사랑했던 작가이자 유럽으로 영문학을 역수출한 전설의 에드거 앨런 포는 번역서로 초독을 하고 중복 작품을 원서에서 골라 읽었다. 아마도 원서를 먼저 읽었다면 많이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번역서에 없는 나머지 작품을 읽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어렵지만 매료되는 작품이 있고 운문은 아직 적응 중이다.


다소 무모한 시도였지만 원서로 영문학 초창기에 해리엇 비처 스토의 <엉클 톰스 캐빈>도 읽었다. 이 작품은 해설이 더 중요하지만 워낙 초창기라 리뷰를 써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어찌어찌 리뷰 비슷한 것이 나오기는 했다. 아직은 재독할 자신 또한 없는 작품이지만 방언과 고어가 포함된 이 작품을 20세기의 활자로 읽어낸 덕분에 문고판이나 작은 글자 원서들을 그럭저럭 읽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빌 브라이슨, 말콤 글래드웰



영어 독서 초중급 시기에 문해력을 도와주었던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은 논픽션에서도 가능한 다양한 언어유희와 산책덕후를 자극하는 묘사들로 충만했다. 직접 가보지는 않았어도, 내가 스쳐 지나갔던 지리적 장소들 근처로 멘탈여행을 떠날 수 있어서 특히 즐거웠다. 이 책의 리뷰는 꼭 하고 싶었는데 분량에 대한 기준이 없었기에 '너무 길게' 쓰느라 서평 못쓰는 병에 걸렸다.


말콤 글래드웰의 <타인의 해석>은 도입부에서 헤매다 약간 오기로 마무리했다. 어째서 글래드웰을 자꾸 수집하는지 모르겠지만 비슷한 이유로 원서를 두 권씩 보유한 친구의 서재의 글래드웰 파트를 맡아 총 네 권의 책을 입수했고, 그 중에서 두 번째로 친구가 빌려준 <블링크>를 읽었다. 이어서 <티핑 포인트>를 읽으려고 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마음이 떠나서 점점 비문학에 흥미를 잃게 됐다.




마거릿 애트우드

버나딘 에바리스토



일찍 구입하고도 읽지 못한 작가가 있는가하면, 어쩌다 읽기 시작한 <시녀이야기>는 아리송함을 동력으로 끝을 보긴 했는데 이 책이 역주행을 하게 된 계기였던 미국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을 보고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다. 이미 <증언들>을 구비했기 때문에 종영하지 않은 드라마 대신 책으로 마무리를 했고 드라마틱한 이 시리즈의 진행 과정처럼 드라마틱하게 마거릿 애트우드를 신봉하게 됐다. 부커상을 괜히 두 번이나 받은 게 아니라며.


<증언들>과 같은 해에 수상한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은 비슷한 스케일이지만 전혀 다른 결을 가진 작품이다. <시녀이야기>에서 출발한 이 시리즈의 세계관이 전체주의적 계급사회를 전제로 하는 디스토피아인 반면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은 논픽션에 근접한 사실주의 대서사시인데 결국 두 작품이 관통하는 세계는 우리의 21세기다.


번역서로만 접했지만 비슷한 이유로 최애 작가가 된 올리비아 랭이 지난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온라인으로)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스케줄을 확인해보니 버나딘 에바리스토 작가는 직접 오신다고 했다. 두 분이 등장하는 두 개의 세션을 모두 예약하고 이틀 간격으로 노들섬을 방문했다. 덕분에 올리비아 랭과 같은 세션에 출연한 박상영 작가는 책보다 북토크를 먼저 접하게 됐다. 버나딘 에바리스토와 같은 세션의 진은영 작가도 마찬가지인데, 책을 좀 늦게 구입해서 아직 읽는 중이다. (박상영 작가와 관련한 이야기는 지난 챕터 참고)





리베카 솔닛

엘리자베스 길버트



에세이스트라기엔 중후하고, 역사학자라기엔 위트가 넘치는 영어권 최애 작가는 리베카 솔닛이다. 다만 내가 읽은 솔닛의 첫 책이 어쩔 수 없이(?) 산책덕후를 깨워낸 <걷기의 인문학> 원서였다. 이 책을 통해 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 버지니아 울프를 정주행하겠다는 결심을 했고, 시작은 괜찮았다. 그러나 솔닛 자체의 매력을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아니었다. 어렵게 원서를 오기로 읽어내고도 한참 뒤에 솔닛의 잘 알려지지 않은(?) 정수(精髓)인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를 입수했다.


<모든 질문의 어머니>가 원제인 이 책을 통해 솔닛의 언어적 차원과 그것을 탁월하게 전달한 김명남 번역가의 진가를 경험했다. 다른 원서들과 역서들도 당연히 이들의 명성을 구성하고 있지만 특히 이 책이 같은 저자와 역자의 다른 책들보다도 더욱 쫀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이 이 책을 쓰고 옮길 수 있는 (타인의 눈에는) 신에 가까운 경지에 도달한 저자와 역자라 해도 이보다 더 잘 쓰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주관적 느낌이다. 해석은 자유?


그럼에도 솔닛과 김명남의 언어로 탄생한 다른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하고자하는 욕망은 있다. 그들의 경지가 너무도 탁월하여 살짝 좌절하게 될지라도. 이들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영광이니까.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시티 오브 걸스>는 다소 큰 시차가 있지만 빌 브라이슨과 더불어 20세기 미국으로 떠나는 멘탈여행의 훌륭한 포털이었다. <나를 부르는 숲>이 내가 철든 이후인 90년대 배경의 내가 지나칠 뻔 했던(?) 애팔래치아 산맥을 배경으로 한 논픽션이라 친근하다면 <시티 오브 걸스>는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인 40년대 배경의 내가 수없이 지나쳤던 뉴욕 브로드웨이와 극장가를 배경으로한 픽션이라 다른 맥락으로 두근거렸다.


길버트는 번역서를 통해 알게 된 글레넌 도일의 절친이기도 했지만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원작자로 더 유명할 것이다. 해당 작품은 책과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내게는 <시티 오브 걸스>만으로 손꼽히는 작가 중 한 분이 되었다. 이 책에 빠져들게 된 덕분에 동시대 작가의 영문학과 아주 많이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거든.




유발 하라리

리처드 도킨스, 칼 세이건



영어패치 형성 중에도 눈독 들이고 있었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3부작은 눈트임이 확인되자마자 영어판으로 정주행했던 책들이다. 눈트임을 위한 집중독서용 교재였던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다음으로 영어판 초독을 했던 그 책 말이다.


<사피엔스>를 처음 읽었을 때의 명쾌함은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와 거의 근접했던 것 같다. 리베카 솔닛이 노련한 베테랑이라면 유발 하라리는 총명한 (아직 젊은) 천재일 것이다. 그의 책은 어렵게 쓰이지 않았기에 더욱 감명을 주는 듯 하다. 해석은 독자의 몫이지만.


리뷰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때 읽어서 이미 기억이 증발했다. 특히 <사피엔스> 앞부분은 다시 읽은 시점에서부터 1년 이상 지난 듯 하다. 그럼에도 그 부분을 포함하여 재주행을 하고 싶은 작품 중에서도 손꼽힌다. <호모데우스>는 아득하지만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라이온 킹>과 함께 종종 소환하는 책이라 주기적으로 재독의 충동을 느끼고 있다. 유발 하라리의 3부작에 이어서 본격적으로 바이링구얼(?) 서평가 수련(?)을 시작한 2021년을 열었던 책이 바로 <이기적 유전자>다.


전공이 과학계열이기에 과학 교양서를 일부러 읽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나오자마자 구입한 책이 <암컷들>이긴 한데 아주 느리게 읽고 있다. <암컷들>의 저자 루시 쿡의 직속 스승이었던 리처드 도킨스는 워낙 유명하니까 원서로 읽어봤고, 덕분에 그가 창조한 유명한 단어 밈(meme)이 나오는 꿈을 꾼 적도 있다. 정확하게는 영화 버전 <헝거게임> 시리즈의 마지막 부분인 '모킹제이'가 등장하는 시그니처 장면이 밈이라는 단어와 (나의 무의식에서) 연결되는 꿈이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브런치에 입성하기 전이라 블로그에 관련된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이기적 유전자>에는 나름 통쾌함이 있었고, 어째서 생존작가의 책이 전설을 이루게 되었는지는 어느 정도 납득이 됐다. 영어 리부트를 가속하기 위해 그나마 자신있던 과학영어를 트레이닝한 보람이 있었다. 그러나 작년 내내 문학에만 집중했고, 올해는 번역서와 한국 작가에게 집중하느라 영어책 중에서는 간신히 <코스모스>의 앞부분을 읽었을 뿐이다. 이 책은 이만큼만 읽었어도 다른 모든 책을 또 능가해버린다. 그러니까 역시 전설에는 이유가 있다며. 하지만 모든 전설이 모두에게 전설은 아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나를 포함해 불호 독자가 많은 샐린저와 헤밍웨이일 것이다.



J.D. 샐린저, 어니스트 헤밍웨이



샐린저의 명작인 <호밀밭의 파수꾼>은 번역서를 읽으려다 실패했고, 원서를 오기로 읽었다. 책 자체는 불호에 가깝지만 영어독서에 속도가 붙었기 때문에 유의미한 경험이었다. <순수의 시대>와 비슷한 시기에 읽어서 상호보완을 한 작품이기도 하다. 읽어봤다는 이유로 마냥 마음이 편할 수는 없겠지만 읽지 않고 거부하는 것보다는 개운하다.


내가 읽은 책 중에서 헤밍웨이 본인이 쓴 책은 <노인과 바다>라는 노벨라가 전부이기에 그의 글맛을 아는 척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 책에 집약된 무언가를 느끼기엔 잘 공감이 되지 않았고 낚시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헤밍웨이의 작가수업>이라는 논픽션이 더 흥미로웠다. 엄청 잘 쓰인 책은 아니지만 헤밍웨이 그 자체를 차라리 매력적으로 표현한 에세이였다. 또는 헤밍웨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등장시킨 쿠바댁 린다의 <어쩌다 쿠바> 속 에피소드가 자체 가독성은 더 좋았다. (관련 리뷰 참고)


대표작을 읽어두면 세간의 명성에 휘둘리는 일이 줄어드니 손해볼 일은 없으나, 샐린저와 헤밍웨이를 덕질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엔 아직 읽지 못한, 더구나 알려지지도 못한 훌륭한 작가들이 너무너무너무 많다.




타라 웨스트오버, 하퍼 리

샐리 루니, 델리아 오언스



비슷한 시기에 읽었던 <배움의 발견>이라는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저자가 나보다 어린) 회고록과 미국 국민도서 출신인 <앵무새 죽이기>는 대도시와는 한참 떨어진, 다소 고립된 지역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나름의 시너지가 있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책 자체의 문장은 내 독서욕에 비해 느슨한데 미묘한 뉘앙스는 원어민이 아니면 잡아내기 까다로우니 어려운 동시에 쉬워서 약간 김빠지는 책일 수도 있다. 그때 아직 노련하지 못하여, 읽는 동안 과몰입했기에 이제 와 시큰둥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 다른 모든 책의 판매량을 압도하는 <해리포터> 시리즈도 2권의 1챕터까지 읽어봤는데 몰입하기엔 유치한 감이 있었고, 영어 독서의 탄력이 떨어진 상태라 지금은 휘리릭 읽히지도 않을 것 같아 손을 못대고 있다. 어서 읽자 않을 핑계지만.


샐리 루니의 <노멀 피플>은 21세기의 샐린저 같은 평을 듣는 책이다 보니, 읽긴 했지만 내 취향은 아닌 것 같다. 이런 류의 시니컬한 상류층 하이틴은 좀 고구마같다. 차라리 <가십걸> 원작소설이 재미있는 것 같은데 역시 읽다가 너무 오래 쉬었다.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앵무새 죽이기>를 아주 약간 상기시키는 느낌의 픽션이면서 <배움의 발견>에 등장하는 '고립된 무지'가 주요 소재다. 타라가 발견하는 배움이 책 속에 있었다면 카야가 발견하는 배움은 자연 속에 있었고, 극적인 요소에 더해 스릴러, 교차 편집이 등장하는데 그런 것 치고는 밍밍했다. 내 영어가 부족하여 섬세한 뉘앙스를 잡아내지 못한 탓일지도.




조지 오웰, 올더스 헉슬리

F. 스콧 피츠제럴드



조지 오웰 역시 너무 일찍 읽었고, <동물 농장>만을 읽었기에 조금 느슨하게 느껴졌고 많이 어리둥절했다. 작년 말에 <1984>를 시도했으나 너무 오래 쉬어서 처음부터 정주행을 해야한다. 그 후로 또 다른 책들을 들썩거렸기 때문에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년 상반기를 노려야겠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나름 재주행 시즌에 잘 읽었다. 특히 마거릿 애트우드의 서문이 포함된 원서를 구입한 덕분에 끝까지 읽어낼 원동력이 있었고, 책 자체도 가독성이 좋은 편이었다. 동시대의 걸작인 <시녀이야기>를 논외로 한, 디스토피아 3대 명작 중에서 유일하게 읽은 책이 <멋진 신세계>라서 일단 다행이다. 유명하긴 <1984>를 못 따라가겠지만 나름 쾌활한 버전이라 읽는 동안 나름의 치유효과가 있었다. 출간 당시 대안 미래였던 소설 속의 장면은 상당 부분 현실화됐고, 현재는 대안 과거처럼 느껴지는 안도감 비슷한 것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시녀이야기>의 평행 우주라는 게 함정이다. 이 이야기는 네버엔딩이므로 다시 넣어두지만 곳곳에서 튀어나오겠지.


올해는 마무리한 책이 전부다 한글판이지만 작년에 마지막으로 '완독'한 영어 소설이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였다. 이미 영화를 봤어도 기억은 안 나지만 약간 억지로 읽어서 그리 행복한 독서는 아니었다. 다만 올해 읽은 <사랑의 책>이라는 앤솔로지의 대표 작가가 피츠제럴드인만큼, 그의 수록작이 눈에 띄었는데 덕분에 <디 에센셜 피츠제럴드>를 빠르게 구입하여 천천히 읽고 있다. 아마도 한글판을 다 읽고 방치중인 <벤자민 버튼> 영어판을 읽겠지만 피츠제럴드 자체는 심하게 방치하지 않을 것 같다. 또 누가 있더라....



메리 셸리, 브램 스토커

헨리 제임스, 토머스 하디



<프랑켄슈타인> 원서를 다소 애타게 기다려 손에 쥐었으나 펼치지는 않았다. 대신 다른 번역서에 수록된 메리 셸리의 작품을 읽고 그녀의 대표작을 꼭 완주하겠다는 결심을 어딘가에 처박아두었다. <드라큘라>의 1챕터는 나름 흥미로웠으나 당시에 나름 열심히 보던 미국 드라마 <뱀파이어 해결사>의 남주가 하차하는 바람에 충격을 받고(?) 관련 컨텐츠에 흥미를 잃었다. 한편 미드 <블라이 저택의 유령>을 열심히 완주하고 <나사의 회전>을 구입해서 읽고 있었는데...


여름 산책과 전시와 축제와 한국작가들에게 홀딱 빠져서 그 후로 <코스모스>만 월례행사하듯이 읽고 있다, 라기 보다는 읽고 있었다. 언제까지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8월까지? 그 후로는 번역서 포함 국내서만 달렸으니. 리베카 솔닛도 언급했고 이런저런 책소개책 단골이자, 90년대에 코넌 도일 다음으로 읽었던 몇 안되는 최초의 클래식 중 하나인 <더버빌가의 테스>는 원서를 구입했고! 비닐을 개봉하지 않은 상태다. 마야 안젤루도 이 상태다.




갑자기 독서계획



아직까지 언급하지 못한 보유 영어책도 있다. 더이상의 원서 구입은 큰 의미가 없지만 할인쿠폰을 핑계로 야금야금 모으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당장 읽어야 할 책을 오히려 국내서다. 어렵게 리부트한 프랑스어-한국어 번역서를 포함하여 대기하다 내년으로 넘어갈 것 같은 책들.


펀딩한 벽돌책, 그 중에서도 가장 두꺼운 <80권의 세계 일주>를 비롯해 베개처럼 생겼지만 읽는 척이라도 해야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들.


다 읽지 못하겠지만 최선을 다해보고자, 매달 읽어야 할 꽤 두꺼운 고전과 영어책을 배정해두었다. 이 도표(?)를 보면 더 이상의 고전을 들이지 않아도 1년은 충분히 든든하겠지만 그게 어디 마음처럼 되나.


크리스마스 셀프 선물로 <전쟁과 평화>를 구입할 예정이다. 어차피 <안나 카레니나>는 한국어판을 이미 처분해서 영어판으로 재구입을 했고,


그 책은 2024년 11월에 읽을 것이기 때문에.


참, <그리스인 조르바>는 언제 읽지? 아, 3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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