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서평쓰는 법
책을 꼭 완독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책이 많은 집, 또는 책방 관계자(는 아니지만 그 비슷한 무언가)로 살다보면 손도 안 댄 책과 손만 댄 책이 한가득이다. 읽어본 책도 많지만, 읽다만 책이 더 많고, 어디 한번 읽어볼까? 하다가 집어치운 책이 더 많다.
사람도 그렇다. 사람이 많은 집, 또는 커뮤니티 관계자로 살다보면......그렇다.
내가 고른 책을 완독하겠다는 강박만 없어도, 책 읽기가 훨씬 재미있어진다. 놓아두고 무브 온. 다른 책을 읽다가 다시 돌아와도 되고, 잊고 있다가 잊어버려도 되고, 새로운 추천사를 보고 재도전을 해도 되고, 끝내 안 읽어도 된다. 정 읽히지 않는다면.
그 책이 다가오는 타이밍에 탐독하고, 그게 안되면 물렸다가 나중에 살살 통독하고, 소장가치는 모르겠는데 자꾸 끌린다면 서점에 갈때마다 통독이나 발췌독을 하고 그래도 된다. 정해진 규칙은 없다.
브런치와 투비컨티뉴드 정산금으로 이달의 중고책 쇼핑을 하고 책 제목 퀴즈 이벤트를 했다. 다른 데 쓰기 아까운 글로소득이라 (지난 달에는 요가웨어를 샀지만) 심지어 새책도 안 사고, 중고책을 사는데 거의 다 재투자를 하는 것 같다. 그렇게 투자해서 돈 되는(?) 글을 써야 하지만 당장의 수익을 위해 내 글을 세상에 맞추고 싶지는 않다. 스타일이 더 단단해질때까지. 돈은 알아서 벌고, 글은 내멋대로 쓸거다.
모든 국가의 모든 작가를 열심히 (모국어로) 읽기 시작한 작년 여름 이후 책쇼핑 덕후, 책수집가라는 본캐의 리즈 시절(?)을 되찾고 있다. 이번주 쇼핑목록은 그 시절 좋아하던 작가들과 최근에 좋아하게 된 작가가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한 모양새가 됐다.
중고서점의 책을 고르는 재미는 또 새롭다. 많은 신간이 등장하고 인기몰이를 하다가 거품이 가라앉는 동안 최상급 중고가 쌓이는데 가끔 주인과 합이 안 맞거나 알뜰한 주인을 만나서 일찍 나오는 양서가 있다. 최애작가의 신간을 그렇게 만나면 왠지 돈을 주운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중고로 발견할 가능성이 너무 희박하거나 오늘 막 서점에 깔린 책이 아니라면 일단 중고서점에서 찾아보는 것도 괜찮다.
그보다는 나를 부르는 책을 먼저 사는 편이다. 오늘 리뷰할 책은 20년 전에 출간되어 그 시절의 유행을 탔지만, 당시에 너무 많이 팔린 죄(?)로 절판이 되었는데도 중고는 헐값이고 새책은 나올 기미가 안 보인다. 덕분에 처분하지 못한 그 책을 재독하면서 무릎을 치고 있다.
그 책을 구입한 곳이 홍대 전철역에서 LG팰리스로 연결되는 통로에 있던 동남문고였다. 그리고 그 서점은 새책방인데도 출생일이 다른 다양한 책이 오랜 시간에 걸쳐 차곡차곡 쌓여있어서 왠지 포근했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나를 부르는 책을 자주 만났다. 이틀 전에 방문한 우리동네 중고서점도 그런 책방이다. 나를 부르는 책이 있는 곳.
그 시절엔 제목이나 키워드에 끌려서 샀다가 문체를 보고 후퇴한 책이 많다. 대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의무감에 사재기한 사회과학서적들이 읽혀지지 않고 쌓여있는 책의 요양원이 있는데, 그 중에서 처분이 가능한 건 다 처분했고(심지어 전공책은 친구가 대학원갈때 빌려가서 아직도 보관중이다!) 저자 사인본이나 선물받은 책, 언젠가는 발췌독이라도 할 것 같아서 남겨둔 책도 있다. 그렇게 남은 책으로도 중간사이즈 책꽃이 하나는 채울 것이다.
대규모 처분의 시기를 거쳤기 때문에, 거침없는 책쇼핑을 다시 할 수 있게 됐다. 새책방에서 신간이나 눈에 띄는 책을 보는 습관도 습관이지만 많은 새책에 실패했다는 것을 깨닫는 정리 과정을 거쳐보니 충동구매는 자제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충동이 운명 같은 터닝포인트가 되기도 하기에. 그런 충동으로 인한 손실을 중고구매나 판매로 완충할 수 있는 곳도 중고서점이다.
서재에 들여놓은 책이라고 해서 같은 책을 자주 읽거나 정해놓은 순서를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읽거나 매일 조금씩 읽지 못한다. 대신 책꽃이나 책탑(?)에 수납 이외의 기능이 있다는 것을 새삼 알아가는 중이다. 리뷰는 애기때부터 썼고(지난 챕터 참고) 대학교 졸업 이전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쓰려고 시도까지는 했었다. 하지만 중간 보상이 없는 무한 습작을 계속하기에는 다른 자극적인 우회경로가 너무 많았다. 겨우 서재다운 서재를 갖춘지 고작 1년이다. 엎드려서 쓰고 식탁에서 쓰는 드라마틱한 여정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책상이 있으면 춤을 추고, 책상이 없으면 글을 쓰는 청개구리였다.
책꽃이, 책상이 옵션으로 딸려있는(!) 집에 살아보니 레퍼런스를 장르나 주제별로 분류하고 눈에 보이는 곳에 꽃아두고 싶은 작가들의 자리를 정해주는 일이 새삼 즐겁다. 작년 내내 책을 들이기만 해서 점점 책상이 좁아졌는데 연초에 대대적인 재배치를 했고 일단 지금은 일시적으로 개운한 상태다.
발 밑에 쌓아둔 책과 이중 수납한 책을 보이는 곳에 정리하려면 공간을 더 확보해야하는데, 책꽃이가 많아지면 집이 좁아지므로 집과 책꽃이를 함께 구입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둘 다 보류하는 게 낫다.
여기에 책덕후의 영원한 딜레마가 있다. 책만 사는 건 괜찮은데, 책의 수납공간은 결국 부동산과 직결되므로. 지식에 대한 욕구는 솔직히 별로 없다. 지금은 그저 냉온탕같은 치유 효과가 있는 작가들만 수집하면 되는데 그조차 쉬운 덕질은 아니다.
공간이 여유롭다고 해서 책정리를 자주한다는 보장은 없으니, 어쩌면 모든 책의 위치를 대략 파악하고 있는 지금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이번 달과 다음 달에 읽을 책은 따로 쌓아두고 자주 들여다보거나 곧 읽을 책 중에서 진짜 벽돌처럼 건축 기능도 있는 키가 같은 책들로 책상 위에 수납공간을 만들었다. 발 밑에 있는 책은 어차피 계속 들었다놨다 할 것 같아서 공들이지 않고 사이즈별로 박스에 세워서 꽃아두었다. 이 곳은 특히 독서테라피 원고를 쓰거나 관련 도서를 소개, 인용할 때 한번씩 난리가 난다.
어떤 책은 제목이나 저자만 확인하려고 꺼냈다가 그 자리에서 인덱스 붙인 곳을 발췌독 하고, 그 책이 나온 자리 옆에 있는 아무 책에게 더 좋은 자리를 주고 싶어서 다른 구역을 편집하기도 한다. 어차피 발밑인데도 눈에 보이는 자리, 발보다 손에 가까운 자리가 있으니 그때그때 달라지는 책의 지위에 따라 꽂는 자리도 달라진다. 원래 새로 구입한 책은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애착형성을 하는데 이번주에 구입한 책들을 워낙 아는 맛, 최애 작가들이라 발밑으로 직행했다. 어차피 곧 볼거라서.
최애 작가의 범주도 실시간으로 조금씩 바뀌고 그에 따라 장르별 몰입도도 조금씩 바뀐다. 여행에세이를 먹고 토하던 시기를 지나 논픽션 중수필 혹은 내게는 여전히 어색한 '인문' 도서(한국식 분류?)를 계독하다 그 정점에서 벽돌 여러권을 펀딩해서 벽돌쌓기를 하고 있다. 한편 그 벽돌 수집기에 만난 인생작가 엘레나 페란테를 거쳐 비영어권 작가와 국내 작가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애초에 국내 작가들을 떠났던 이유, 그건 아마 미국드라마를 보다가 한드를 보면 답답하거나 화나는 이유와 비슷할 것이다. 완전 현실적 또는 비현실적이어야 말이 되는데 어느 쪽이든 석연치 않다. 그나마 미드 스타일로 집필하는 김은숙이나 홍자매 드라마만 보는데도 좀 그래.
하지만 작년 여름 이후로 한국 작가들에 대한 호기심이 급상승하면서 한국어 창작욕구도 함께 터지고 있다. 미드도 너무 많이 봐서 질렸고 번역서는 재미보다 작품성 위주로 보게 되는데 한국 작가들의 책은 가급적 모든 장르에 열어두고 있다.
산책덕후 영국언니(들)처럼 산책하고 싶어서 산책덕후 한국언니를 선언했다. 그러나 한국에 산책덕후가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작년에 주목받기 시작한 이서수나 권여선처럼 (특히 나에게) 늦게 알려진 작가도 있고 박경리처럼 내 읽기가 깊어져서 새롭게 다가오는 작가도 있었다.
번역을 거치지 않고 같은 모국어로 책속에서 만나는 약간 외계인 같지만 그게 일종의 암호명인 과몰입 작가들이다. 나는 나름의 갈고 닦은 리뷰력으로 이들을 홍보하지만 진짜, 오프라인에서는 진짜, 아, 이런 감탄사로 묘사하는 작가들. 아, 진짜.
그런 작가들이다. 자주 등장하고 반복 등장하는 작가들, 다시 호명하지 않아도 느낌 아니까. 그들의 작품 속에 파고들어 멘탈여행을 하는 동안, 정말 너무 교과서적인 단어라 오글거리지만 물아일체를 경험한다. 그때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어 위로하고 위로 받는다. 특히 픽션에 열광하는 포인트도 이것이다. 저자와 나의 합을 떠나, 나와 화자와 등장인물이 같은 멘탈 속에서 시너지를 일으킨다.
1. 발췌문을 쓴다.
+가장 강렬한 문장이나,
추천사 발췌문은 눈에 띄는 곳에 배치하자.
2. 책과 만나게 된 여정을 여행기처럼 쓴다.
(읽게 된 경위는 읽을만한 명분이기도?)
+주제, 배경, 캐릭터 등이 연결되는 관련책 소환!
내 안에 (넷플릭스 같은) 알고리즘 있다.
3. 책을 관통하는 짧고 강렬한 표현으로
소개를 마무리한다.
+띠지 추천사를 쓴다고 생각하기!
+요약하는 연습을 반복하면 뭐든 잘하게 된다.
4. 악평은 시간낭비다.
+내가 소비자, 고객 입장에서 '평가'하기 보다
정말 홍보하고 싶은 책만 리뷰하기
+악평은 쓰는 사람, 그 리뷰를 보는 사람, 저자 모두를 불쾌하게 한다. 책이 실망스럽다면 언급을 아예 안하는 것이 지능적 안티이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각자의 마음이지만 부정적인 워딩을 쓰고 되새길바에야 그 시간에 좋은 책을 더 많이 읽자. 부정적인 워딩은 무엇보다도 '나'의 정신건강에 해롭다.
회고록과 소설 모두 꼼꼼한 정독이나 무심한 통독이 가능하지만 (오히려 너무 재미있고 가독성이 높으면 빨리 읽고 잊어버릴 수 있음주의) 특히 과몰입 탐독에 최적화된 장르는 소설이다. 이때 독서법은 저자도 독자도 아닌 책이 결정한다. 저자와 독자의 겹치는 궤도에 놓인 책은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이곳에서 저자의 멘탈은 번식한다.
뛰어난 화가의 뿌리에 무수한 모작이 있는 것처럼 뛰어난 저자의 뿌리에는 무수한 밈(meme)이 있을 것이다. 책을 수집한다는 건 사실, 밈을 수집하면서 닮고 싶거나 적어도 동행하고 싶은 작가들의 특징을 나와 연결하는 일이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