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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Apr 22. 2024

고양이가 세상을 구한다

박연준 <고요한 포옹>

 동동거린다고 달라질 게 없으므로 태평한 척을 한다. 태평한 척은 진지한 연기로 이어지고, 연기를 하다 보면 정말 태평함을 갖게 되기도 한다. -67p




​비슷한 문장이 작년 크리스마스 직후에 썼던 '나머지정리' 4 챕터에 있다. 그 문장은 '마감 전날까지 태평 그 자체였다.'로 끝난다. 관련 에피소드는 무려 시간제한이 있는 판타지 메이크업 대회를 소재로 각색한 것이다. 계획을 안 세워서 내가 얼마나 엉망인지도 모른채 대회 전날까지 애드립만 주구장창 하고 있는데 나중에 언니들에게 들은 얘기로는 선생님이 '저런 여유를 본받아야 돼.'라고 해서 나를 싫어하는 언니들은 나를 더 싫어하게 됐다고 한다. (난 선생님한테 혼났는데!) 그 태평함의 일부는 연기였다.


그로부터 얼마 전에는 대학생이었고, 친했던 후배들이 내게 '쿨한 척 하다가 진짜 쿨해진 것 같다.'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 그때 롤모델은 (한동안 비밀이었지만) <위험한 관계>의 하이틴 버전,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의 팜 파탈인 사라 미셸 갤러였다.




 고양이는 모든 것을 바꿔놓을 수 있다. -24p



고양이가 세상을 구한다. 지브리 캐릭터로 (은유해서?) 보는 MBTI에 친구들의 이름을 넣어본 적이 있다. 이럴수가. 다 황금매치라서 내심 뿌듯했는데(내가 왜?) 결정적 한수는 ENTP인 내가 갈 곳이 바로 검은 고양이, '지지'의 자리였다.


가뜩이나 인간계에서 고양이처럼 조련당하고 팽당하는 게 서러운데 MBTI까지 고양이? 그만큼 나 다움이 확실한 캐릭터, (강아지가 아닌) 고양이라서 내심 즐겁기도 했다. <마녀배달부 키키>에서 유일무이한 호감 캐릭터는 지지였다. 인간들은 너무 시끄럽거나 너무 조용한 양극단에 모여있는 영화니까.




저자의 '처음 본 영화' 테스트에 살짝 소름. 나의 첫 영화는 전후가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두 편을 연달아 볼 수 있는 패키지였다. (1992년, 도원극장) 그 중 하나는 (아마도 리메이크일?) 한국영화 <미스터 맘마>였고 다른 하나는 <피터팬>이었다.


현재의 나는 <미스터 맘마>의 디스토피아 버전을 구상중인 <피터팬>같은 어른아이로 살고 있(?)다.

​현실은 고양이 문장을 읽다가 눈물범벅이 됐다. 작년에는 '옷 사러 가자'라는 문장(정보라, <한밤의 시간표> 수록작)을 읽다가 대성통곡을 한 적도 있다. 이번에는 소리없는 통곡이었다. 나만 없어 고양이.




​그는 언제나 자기보다 더 높은 곳에서, 혹은 더 낮은 곳에서 자신을 찾기 때문에 자기와 온전히 포개져 스스로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가는 사람. -34p


쓰는 사람은 자기를 비우는 데 온 힘을 쏟는다. 다 비워냈을 땐 허기인지 슬픔인지 모를 감정을 들고 기진맥진하여 서 있는 사람. -41p


누군가 내게 노력을 요구할 때 거부감이 드는 건 외부에서 요구하는 노력이 나를 상하게 할 위험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59p


이제 우연히 서점에 들러 온라인에 노출된 적 없는 보물 같은 책을 발굴(?)해 집으로 뛰어가는 경험은 하기 어려울까. -85p


늙음의 첫 징후는 '듣지 않는 자세'에서 찾을 수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말을 공들여 들을 것이다. -143p


슬픔이 '사건'으로 지나간 후, 그다음 여진처럼 밀려드는 자잘한 슬픔(혹은 개켜진 슬픔)은 타인과 나눌 수 있다. 감당하기 버거운 슬픔 앞에서라면 한사코 혼자이고 싶다. -165p


저는 귀가 부스러질 때까지 듣고 또 듣는 사람이 시인이 된다고 알아요. -233p




시적인 산문과 시집의 추천사를 읽고 덧붙일 말을 찾는다는 건 내 능력 밖이다. 지난달에도 시집을 리뷰하려다 결국 다른 포스팅을 했다. 터져나오는, 달려나가는 언어의 홍수를 경험했고 (꼭 이런 경험이 있어야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게 뭔지도 모르고 몰라서 용감하게 쓰는 사람도 많고 많다.) 무려 박연준발 홍수도 경험했다!


박연준을 정주행하겠다 결심한 것도, (앞서 여러번 언급했듯이) 그녀가 창작부스터이기 때문이다. 장르 불문, 아니 박연준이라는 장르는 읽고 울고 치유하는 효용도 있지만 지금 내 홍수를 적절하게 관리하려면 적절한 분량의 박연준이 있어야 한다. (이번 책은 너무 빨리 읽어서 실패할지도 모르겠다.) 나름 신간 같은 구간을 득템했다고 열심히 읽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또 신간이 나왔다! 신간에 묻히지 말라고 꿋꿋하게, 아니 고요하게 역주행 시켜본다.




신간이 또 나왔다. 나는 시인 박연준의 책을 소설, 산문으로 접하고 세번째로 이번 시집을 읽었는데 시집이 페이지터너일수도 있다니. 역시 연준월드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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