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다케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셜록이 될 수 있을까?
전작인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으로 등장한 블랙 쇼맨, 다케시는 '맨션의 여자'를 데려오는 마요, 의 삼촌이다. 전작을 읽지 않았기에 이들의 캐릭터를 모르고 시작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행간에 사람을 잡아두는 능력은 여전했다.
뺏고 싶은 능력, 일본어 주변을 배회하다 다른 작가에게 눈을 돌여보려고 외국 스릴러 소설을 다양하게 탐색하도록 길을 열어준 작가. 그는 십년 전 요약할 수 없는 실존의 위기가 왔을 때 조용히 문학치료를 선사한 작가였다.
한동안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팔아서 가계를 유지할 정도로 그의 문학은 나의 정신적 재산이었을 뿐 아니라 물리적 재산이기도 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요 네스뵈. 둘 사이에 인생 작가인 스티그 라르손이 있었다. 유작인 라르손의 책은 6년 전에 한국어판을 4회독했고, 3년 전에 영어판을 완독했다.
그 10,000 페이지를 통해서 살아갈 힘을 내고, 여행 계획을 세우고, 세상의 언어를 탐구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스웨덴어는 30년은 안 걸리겠지.)
밀리의 서재 체험판으로 히가시노 게이고를 읽었다. 이때는 캐나다와 영국 작가들을 영어로 읽었다.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도 영어로 읽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영어로 읽어도 되지만, 새로운 작가들을 만났고, 새로운 작가들을 더 만나는 데 힘썼다. 묵혀둔 플로베르를 거쳐, 번역서를 거침없이 수집했다. 지난 달에는 같은 날 7국의 책을 한 권씩 구입했다. 영국인 토머스 하디만 영어, 나머지는 번역서. 이제 역서금지령이 풀렸으니 히가시노 게이고를 읽어도 된다.
지금 영어독서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이 그의 탓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 작가들이 자꾸 시선강탈을 한다. 골고루 읽으려고 골고루 구입하는데 쌓이는 건 주로 고전과 영어책, 읽고 숨겨놓는 책은 미스테리한 번역서와 국내서다. 히가시고 게이고는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책을 읽다 정신없이 흡입하고 또 다른 책을 읽었다. 마침 일본 미스테리를 읽고 한국 작가들의 현대적 고딕을 헤쳐나가는 중이었다.
한국식 고딕과는 또 다른 정교한 맛의 일본식 고딕과 이과 삼촌 히가시노 게이고가 자극하는 지적 호기심이 가득한 도메스틱 스릴러가 다케시의 조금 수상한 가게에서 만났다. 애주가가 아니라면 이 감성에 매혹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스릴러 마니아가 조예은의 <칵테일, 러브, 좀비>을 읽고 강렬한 여운에 사로잡힌 그 시점에,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를 펼치면 코를 처박고 읽게 된다.
블랙 쇼맨은 진짜 칵테일을 준다. 마실 수 없지만 책으로 읽어도 맛있는 칵테일, 미스터리에 부성애 한 스푼.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부성애는 중요한 이슈였다.
애주가이자 애연가였고, 음식(안주)보다는 음주환경이나 인테리어를 중시하는 나에게 칵테일과 칵테일이 어울리는 공간은 필요악과 같은 존재다. 나를 지나치게 잡아두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가까울수록 좋은 아지트. 지금은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작업할 공간이 우선이다. 하지만 충분히 익숙해져서 와인이나 마티니를 놓고도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는 곳을 찾고 있다.
한 집은 <한밤의 시간표> 서평을 쓰러 가려다 돌아섰는데, 집에서 30초 거리인 그 곳에서 올해 안에 혼술을 하려고 벼르고 있다. 손님이 와서 대접할 수 있어도 좋겠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혼술이다. 굳이 말하자면 술 그 자체보다는 술을 마셔도 되는 외근 스팟이 필요한 것 같다.
북쪽과 동쪽에 있는 24시간 카페는 언제든 이용할 수 있고 좌석도 넉넉하고 빵도 있지만 그윽한 무드가 없다. 침대에서, 책상에서, 카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지만 책상에서 하는 와인 독서는 충분히 향기롭지 않았다.
집은 책상이 중심이되 살림 공간이기도 하다. 여기에 있으면 글을 쓰다가도 '빨리 쓰고 청소해야지'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블랙 쇼맨은 혼술 아지트에 대한 욕구를 자극한다. <코요테 어글리>나 <물랑 루즈>처럼 시끄럽지는 않되, 책을 읽더라도 무드에 촉촉해질 수 있는 곳을 상상하게 한다. 데뷔 40년을 앞둔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로운 시리즈를 계속 기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