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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Mar 14. 2024

정상이라는 작자들은 모두 비열한 놈들뿐인걸요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더이상 기웃거리지 않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내게는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로자 아줌마 곁에 앉아 있고 싶다는 것. 적어도 그녀와 나는 같은 부류의, 똥 같은 사람들이었으니까. -256p




의도한 유치함에 숨겨 넣은 진실에 가까운 순수함, 그야말로 가진 것이라고는 '사랑' 밖에 없는 사람들이 기꺼이 의존하고 그에 상응하는 돌봄을 제공하는 관계. 특히 여기서 세상으로부터의 '인정' 오히려 방해요소다. 모모, 로자, 롤라, 또는  선한 영향력을 그냥 이해하고 알아보는 사람들 중에 세속적인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이가 거의 없다는 것은 그만큼 이들이 온실 바깥의 존재라는  증명한다.


물론 '우리 편' 등장인물 모두가 내놓은 자식들은 아니지만, 회색지대 사람들은 그 나름의 역할이 있다. 하밀 할아버지도 그러지 않았나. 우리 모두는 회색이라고. 청년의 푸른 물이 빠지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너도 나도 회색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나만 흰색인 척 하거나, 남들이 검다고 손가락질 하는 것은 열네살 먹은 모모도 하지 않는 짓이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무리지어 세력을 형성하고 국가라는 불가피한 조직도를 등에 업고 혐오를 정당화하거나 전체 속에 숨어서 무능한 개인을 싸고도는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이름과 이름에 갇힌 창작자의 페르소나와 드라마틱한 연애사까지, 그 자신의 생이 한 편의 소설이었던 로맹 가리가 <자기 앞의 생>을 새 필명으로 발표한 1975년으로부터 50년이 다 되어가지만 모모 앞의 고통은 여전하다.


환갑에 부캐를 데뷔시킨 로맹 가리는 머지 않아 생을 마감했고 ( 아버지와 동갑인) 모모는 2024 현재 칠순을 앞두고 있다. 여전히 '어리둥절하게 잠시 머무르고 있을'지라도 문학이라는 불멸의 세계는 그에게 영원한 생명력과 설명하기 어려운 응집력을 끝없이 공급할 것이다.




빌어먹을, 나는 이제 행복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 그러다가 또 발작을 일으키면 큰일이니까. 그런데 하밀 할아버지는 내가 표현할 수 없는 것, 바로 그것을 추구해야 하고, 설명할 수 없는 것, 바로 거기에 그것이 있다고 말했다. -104p


그때 결혼했으면 오십 년 동안 서로 미워하게 됐을 거예요. 그렇지만 지금 결혼하면 서로 잘 볼 수도 없고, 미워할 시간도 없잖아요. -158p


정신이 맑을 때 로자 아줌마는 말하곤 했다. 완벽하게 죽고 싶다고. 죽은 다음에 또 가야 할 길이 남은 그런 죽음이 아닌. -173p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고, 그것은 프랑스의 것이 아니었다. 하밀 할아버지가 종종 말하기를, 시간은 낙타 대상들과 함께 사막에서부터 느리게 오는 것이며 영원을 운반하고 있기 때문에 바쁠 일이 없다고 했다. 매일 조금씩 시간을 도둑질당하고 있는 노파의 얼굴에서 시간을 발견하는 것보다는 이런 이야기 속에서 시간을 말하는 것이 훨씬 아름다웠다. -178p


프랑스에서는 미성년자들을 극진히 보호한다. 너무 보호하는 나머지 보호해줄 사람이 없는 아이들은 감옥에 처넣을 정도로. -184p


우리가 세상에서 가진 것이라고는 우리 둘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은 지켜야 했다. -232p


세상에는 관심을 끌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산과 바다로 동시에 바캉스를   없어서 한군데를 선택해야 하듯이 사람들도 그렇게 선택당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관심을 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한다. -250p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 사람이에요. 의사들을 즐겁게 해주자고 아줌마를 식물처럼 살게 해서 세계 챔피언이 되게  생각은 없어요. 내가 불쌍한 사람들 얘기를  때는 누굴 죽이지 않고도 하고 싶은 얘기를 모두  쓸거예요. 그건 누굴 죽이는 것과 같은 힘이 있대요. -268p


나는 절대로 정상은 안 될 거예요, 선생님. 정상이라는 작자들은 모두 비열한 놈들뿐인걸요. -272p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279p


로자 아줌마는 내 수양엄마가 아니었으니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렇게 오래는 내가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310p




알고보면 조금 난감한 모모와 성인 여성들의 관계. 모모 본인도 자기 나이를 모르게 설정한 로맹 가리는 과연 천재가 아닐 수 없다. 로자의 '뻥'이 모두에게 통할 정도로 모모가 동안이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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