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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Mar 19. 2024

잘난 척을 안 해서

단편소설 <나머지정리>

그때 사람들은 대놓고 표고를 부러워했다.


색감이나 치밀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표고와 친했던 사람들은 표고가 '항상 성공한다' 가정 하에 모든 것을 준비한다는 것을 육감으로 알아냈다. 한번은  젊고  욕심 많고 스케일도 있는  괜찮은 예술가와 동시에 비슷한 주제로, 그러나 경쟁적으로 작업을 진행했던 적이 있다.  젊은 예술가의 치명적인 약점은 마감이 다가올수록 주변까지 자신의 초조함으로 물들인다는 것이었다.


반면 항상 조금은 마음이 콩밭에  있던 표고는 준비되지 않은 것들 투성이였으나 마감 전날까지 태평  자체였다. 들의 태도와 분위기를 두고 언니들이 뒤에서 수군거렸다는 이야기는 한참 뒤에 표고에게 돌아왔다. 표고가 '숨은 질투심' 없는 친구로 꼽는 언니  명은 대놓고 런 말을 했.


"표고 너는 잘난 척을 안 해서 더 재수없어."


연수와 마찬가지로,  언니도 앞뒤가 똑같은 투명한 멘탈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표고가 많이 좋아했다. 연수도 그렇지만 이 언니도 속을 꽤나 드러냈기 때문에 아주 믿고 의지할 수는 없었. 저런 대사를 적들이 있는 곳에서 하게 되면, 그들은 표고와  주변 인물을 더욱 싫어했을 것이다. 그렇다. 표고는 항상 적이 있었다. 그걸 스스로 인정하기가 너무 피곤했고, 그걸 의식할 정도로 자신 없지 않았 그냥 자기  길을 갔을 뿐이다.




서로 죽일 필요까지는 없는 가벼운 경쟁모드의 협업을 했다. 듬직하 조용한 친구와 아까  투명한 언니, 표고 자신만큼 기복이 심해서 서로에 대한 감정도 널뛰기를 하는 언니, 머리로는 표고를 응원하는데(?) 본인과  맞는다는 것까지 쿨하게 인정한 언니, 그리고... 적들의 캐릭터는 흐릿하다.


그들이 표고를 적대했던 것이지, 표고가 그들을 적대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냉정하게 말하자면 관심 밖의 대상들이다. 하위 랭커이자, 성격까지 쓸모 없는 인간들. 표고가 서른 직전에 했던 가장 큰 실수는 삶을 너무 쉽게 생각했고, 사람들을 너무 쉽게 대했다는 것이다. 약간의 관심이나 부러움이 멀리서 보면 거대한 인연의 시작일 수도 있었는데, 많은 상황에서 그 모든 것을 가벼이 여겼다.




가장  실수는 영신이 실없는 대사 속에 담아서 던진 암시를 거의 매번 놓친 것이다.  작지 않은 관심과 케어가 이렇게나 귀해질 줄 몰랐. 그러니까,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쉴새없이 돌아다니고 쉴새없이 새로운 사람의 눈에 띄고 있을 (체력이 있을) 때는 전혀 몰랐다.


표현이 직접적인 연수는 표고에게 주목할 만한 재능이 없다는 마저 투명하게 티를 내서 처음에는 서운했다. 연수의 인간성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자신의 재능과 저평가, 인정욕구불만이 핵심적인 문제였고, 사소한 부스러기 같은 인정, 또는 애정이라도 계속 뿌려줘야 활력이 생기는 연수의 입장에서 자기와 비슷한 도끼병 환자인 표고는 관심 대상일  없었다. 나를 바라봐  사람이 필요한데, 자기를 바라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호감이 생길  없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다른 재능, 아직 몰랐던 그녀 내면의 단단한 자신감, 생각보다 훨씬  비슷할지도 모를 세계관, 다자연애주의(?) 같은 성향을 알아가는 동안 연수와 표고의 심리적 거리가 좁혀졌다. 그땐   젊었고, 허세왕이었다. 지금은   잃을 것이 많고,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지성이나 해금 아끼지 않았다. 아낌없이 애정표현을 한다고 했는데 그쪽에서 기회를 주지 않았기에 무리해서 달려들지 않았다. 여전히, 만나면 좋은 친구, 좋아도 너무 좋은 친구다. 연수는 노력없이 유지할  없을 거리에 있었다. 지나치게 가까웠다.


당연히 멀어졌고, 멀어진 거리에서 어떤 제스처를 취해야 자연스러울지 고민하다 기회는 사라. 연수와 가까웠을  서로 잘난 척을 너무 많이 했다. 잘나지 못한 부분까지 잘난  하며 허세를 공유한 사이였. 표고도 그때는 투명했는데 유독 영신에게만 완벽하고 싶어서 약점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어렸을 때의 허세도, 지금의 조심스러움도 결코 가볍지 않다. 표고는 여전히 연수를 아끼고 있다. 벽장 속에 아껴둘 것인지, 아끼며 가까워질 것인지는 풀리지 않은 숙제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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