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데미안>
이리 와보시오. 우리 지금 철학을 좀 해봅시다.
철학한다는 건 <아가리 닥치고 배 깔고 엎드려 생각하기>라고 하오. -138p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등장하기 전(?) 헤세 선집 1권으로 출간된 <데미안> 초판의 발행일은 1997년 8월 1일이다. 같은 해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구 버전(소담출판사, <지와 사랑>)을 읽고 친구(같은 선생님)의 반응을 들었던(봤던?) 기억이 아주 또렷했기 때문에 1997년에 헤세를 읽은 건 확실한데 두 책 모두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작년 추석때 임홍배 교수님이 번역한 민음세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재주행하고 <데미안>은 구판을 재독하려고 했는데 계속 밀리고 밀려서 여기까지 왔다. 이번주에 새로 산 책만 쌓아도 에펠탑(?) 높이라 Now or Never를 외치며 틈틈이 (그러나 대부분을 오늘) 읽었는데, 책 사이에서 과자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읽은 적이 있긴 있을 것이다. 아니 읽었다. 기시감은 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두 번 읽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타이틀롤인 <데미안>은 상징이다. 그는 미드 <너의 모든 것>에 나오는 스포일러처럼 스포일러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이 드라마가 피츠제럴드와 에드거 앨런 포의 단순 조합이 아니라는 증거?) 데미안과 에바 부인을 무의식적으로 반복 소환하는 화자, 싱클레어는 '환한' 세계라는 환상을 고통스럽게 깨닫고 거기서 벗어나는 과정조차 고통스럽게 경험하지만 그 투쟁은 소기의 성과가 있었다.
똑똑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건 전혀 가치가 없어, 아무런 가치도 없어.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날 뿐이야.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건 죄악이지. 자기 자신 안으로 완전히 기어들 수 있어야 해, 거북이처럼.
-88p
단 한 가지만 나는 할 수 없었다. 내 안에 어둡게 숨겨진 목표를 끌어내어 내 앞 어딘가에 그려내는 일, 교수나 판사, 의사나 예술가가 될 것이며, 그러자면 얼마나 걸리고, 그것이 어떤 장점들을 가질 것인지 정확하게 아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려내는 일, 그것은 할 수 없었다. -129p
생각을 스쳐간 모든 것을 그냥 행동으로 옮기라는 게 아닐세. 다만 좋은 뜻을 가진 착상들을 몰아내고 그걸 이리저리 도덕화해서 해롭게 만들지 말라는 걸세. -151p
때리려 달려들었을 때 나는 방어력 있는 강한 사람을 쳤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맞은 사람은 인고하는 고요한 인간, 말없이 항복하는 무방비한 사람이었다. -170p
네 마음속에 그리고 내 마음속에. -184p
그들에게는 인류가, 그들도 우리처럼 사랑하는 인류가 무언가 완성된 것, 보존되고 지켜져야만 하는 것이었다. 반면 우리들에게는 인류가 하나의 먼 미래, 우리들 모두가 그것을 향해 가는 도중에 있고, 그 모습은 아무도 모르는, 그 법칙은 그 어디에도 씌어 있지 않은 미래였다. -194p
모든 작품이 휘몰아치는 서사나 촘촘한 미문, 혹은 치열한 사색으로 가득할 필요는 없다. 취향보다는 상황적 조합일 것이다. 긴 시간의 간격을 두고 재독한 그의 40대 작품들은 어느 정도 날 것의, 어느 정도 세련된, 세계와 밀착되어 있으면서도 고독한 스타일이라고 느껴졌다. 다음 작품(뭐 읽을지는 정했지만 바뀔 수 있음!)도 긴 시간의 간격을 두고 시도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