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디트 헤르만 <레티파크>
밤에 꾼 어떤 꿈들은 하루 종일 당신을 따라다닌다.
-9p, 한국의 독자들에게
지금은 사실 내 인생에서 최고의 시간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모든 걸 잘 극복했다. 나는 뉴욕으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스물네 시간을 더 보냈다. 더 이상 특별한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지만 아주 멋진 시간이었다. -167, 편지
헤르만은 이 원칙을 자신의 글쓰기에도 적용한다. 어떤 이야기를 한번 쓰고, 다시 쓰고, 또 썼을 때 마지막 버전에서 영영 사라져 버린 것, 그게 그 이야기를 쓴 이유라면서. 즉 헤르만의 소설은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과 트라우마를 서술한 이야기, 그러나 내밀한 핵심을 지우고 숨기는 이야기이다.
-246p, 옮긴이의 말(신동화)
표지를 보는 순간 읽기로 결심한 책, 그 이유를 딱 꼬집어서 말하기 어렵다. 표지 디자인과 컬러는 트렌디하면서도 독특하고(커버를 벗기면 커버의 안쪽에 사진이 있다.) 저자는 생판 처음 보는 이름의 독일 작가다. 책의 존재를 처음 알았던 반년 전에는 파스텔 톤 색감이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했으나 이제와 보니 엔딩이 늦어지고 있는 여름 날씨와 더 어울린다. 발행일은 작년 11월 20일이다.
작은 판형에 짧은 소설 열일곱 편이 수록되었는데 두께도 얼마 되지 않는 이 책을 읽는 동안의 포만감 역시 뭐라 설명할 수 없다. 저자도 그걸 안다. 명쾌한 주제를 명쾌하게 밝히지 못했다는 걸. 그런데 그걸 못해서라기보다는, 못하는 걸 알지만, 아니 못하는 걸 알기에 설명이나 규명에 집착하지 않아서 괜찮았다. 못하는 걸 끝내 인정하지 않아서 결국 더 모호해진 글은 확실히 아니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 한 글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게 또 대단히 우아하다. 기를 쓰고 쥐어짜 낸 그런 글에서 쾌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이번에는 미니멀리즘에서 희열을 느꼈다.
분량도 짧고 의도적인 생략과 번역을 뚫고 솟아오르는 언어유희와 리듬감이 시적이다. 운문에 가까운, 그런데 소설. 같이 읽다가 추월해 버린 짧은 소설과 장편들이 있는데 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없는 건 아니다. 어떤 소설은 분량과 상관없이 한자리에서 여러 편을 읽을 수 있지만 조금은 아껴 읽어야 하는 책들의 잔상이 더 오래 머문다. <레티파크>는 워낙 짧은 소설의 모음이라 한자리에서 두 편 정도는 읽되 네 편 이상은 권하고 싶지 않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완독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설명할 수 없는 호감은 거울처럼, 설명할 수 없는 난해함도 되겠지.
빈센트는 보이지 않는 반쪽이 결여된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몸 주위로 반쪽의 후광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19p, 석탄
스파클링 와인은 얼음처럼 차갑고, 스파클링 와인 때문에 이날 오후에 아다는 귀 뒤쪽이 아프다. 아다가 짐작하기로 그녀의 몸에서 행복이 숨어 있는 자리가 아프다. -46p, 솔라리스
몰라요, 모드는 말했다. 제가 인생을 즐기는지, 인생을 소중하다고 여기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그래야 하나요? -131p, 어떤 기억들
이 분기점에서 그는 놀랍게도 또다시 결정을 내리도록 강요를 받을 것이다. 비록 그는 진실을 말했지만. 진실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이유에서.
-158p, 뇌
테레자는 그 암시들을 받아들인다. 그녀는 그것들을 모으고 보관하고 그것들에 몰두한다. 열정적으로, 그러나 희한하게도 무관심하게. -177p, 꿈
그녀는 사실 그게 가능하다는 걸 안다. 세상 모든 건 거의 항상 이렇게 혹은 저렇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녀는 그걸 해내지 못한다. -197p, 동쪽
읽어야 한다고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넛지 당하는 책은 종종 반항심에 미루게 되기도 한다. 그냥 내가 반골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 한편 아무 이유 없이-그저 블링크에 의해 운명 지워진 책은 엄청 열심히 읽지 못했더라도(일종의 과몰입방지턱이 느껴지는 책이기도 하다.) 여운이 길다.
이 순간, 나를 스쳐간 치명적인 책들이 촤라락,
떨어지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