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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브라이언트 파크의 보랏빛 향기

판타지 뉴욕, 미드타운에서 리졸리까지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혼자 간직하고 싶은 브라이언트의 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뉴욕 드라마, 그냥 미국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독보적인 시티뷰와 시니컬한 캐릭터들을 보유한 그 장르의 핫플. 나만의 추억인 줄 알았던 순간들이 흔한 뉴요커의 클리셰라는 것을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많은 뉴욕 드라마를 보기 전에도 브라이언트 파크의 초록색 철제의자에 앉으면 급격하게 뉴요커 필이 충전됐었다. 이 근처에는 앉을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브라이언트 파크의 선셋


센트럴파크도 가깝고, 타임스웨어 바로 옆에 있지만 스카이라인에서 느껴지듯 이 근방의 어마무시한 인구가 바쁜 점심시간을 최대한 즐기려면 여기에 올 수밖에 없다. 허드슨 야드의 베셀에서는 10분이 걸렸다. 해가 지고 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저녁 하늘을 앉아서 즐겨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이 하늘을 보기 전에는 보라색, 분홍색 노을 사진이 다 포토샵이나 필터를 통해 만들어낸 판타지라고 생각해 시큰둥했었다. 허나 직접 본 보라색 하늘은 판타지가 아니었다! 뉴욕 평행세계 드라마인 <고담>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검은색 스카이스크래퍼가 보라색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있다 보니, 여기는 고담인가. 그런 기분이긴 했다.


아직 이름도 모르는 그 건물은 21세기에 완공됐거나 현재 건설 중인 수많은 고층 건물과 마찬가지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다. 게다가 검은 녀석, 바로 옆에 있잖아. <고담>에도 저 건물이 나왔다면 완전 신축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왜 그 전에는 본 기억이 없을까.



분수(west, 6th)뒤로 보이는 동쪽하늘과 도서관(east, 5th)


이 공원은 뉴욕 공립 도서관과 연결되어 정원 느낌인 데다 이 근방에서 유일하게 개방된 녹지이다. 도서관과 엠파이어 사이에는 흔한 벤치 하나 없어서 항상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며 공원과 카페 중 어디가 가까운지 수없이 검색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센트럴파크 southeast 지역 명품거리인 5th와 매디슨 애비뉴를 오갈 때면 늘 이 도서관을 지나가야 한다. 그러나 도서관을 목표로 이곳에 와본 적은 없다. 처음에는 도서관에 들어가도 되는지 몰랐었고, 그 후에는 다른 지역과의 밸런스를 위해 남는 시간에만 왔다. 이 날 허드슨 야드에 다녀와서 잠깐 야경을 보고 뉴욕을 떠나는 날 허드슨 야드에 가기 전에 잠깐 들렀다. 한 번으로는 아쉽더라고.



분수에서 등을 돌려 6th 애비뉴에서 바라보는 서쪽하늘


사위가 어두워지자, 공원의 포근함이 사라졌다. 더 늦기 전에 유니언 스퀘어까지 걸어가 볼까. 야경으로 바뀐 Midtown 풍경은 쓸쓸하니 반가웠다. 삼 년 만에 다시 찾은 뉴욕에서 혼자 보는 첫 야경이 결국 늘 보던 곳이라니. 믿어야 할지 말지 모르겠는 그분의 뜻이 참 오묘하구나.


유니언 스퀘어를 노리는 이유는 그곳에 <리졸리 예술서점>과 <반스 앤 노블>이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핫플이 많지만, 리졸리가 그리웠다. 지금은 흔해도 6년 전에는 나름 희귀템이었던 하드커버 컬러 원서들이 가득한 책방! 예술서점이라 대부분의 책이 화보집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들의 특징은 비싸지만 그림만 봐도 아깝지 않은 것.



유니언 스퀘어 가는 길에 뒤를 돌아보면 엠파이어가 있다


<책 한번 써봅시다>의 저자 장강명의 책쓰기론에 의하면 화보집은 책이라기보다 굿즈다. 전직(당시에는 현직) 스타일리스트 겸 어반디자이너 지망생인 미술덕후에게는 진짜 책 보다 더 좋은 것. 더 저렴한 페이퍼백을 영어로 읽겠다는 꿈을 꾸고 실현시켰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본인 포함 언어 콘텐츠 창작자들에게 갑자기 미안해진다.


디자인과 사진, 순수 회화를 포괄하는 화집은 컬러인 경우가 많아 인쇄비가 당연히 비싸다. 인쇄비를 떠나서 <타이타닉>에도 나오는 명대사지만, 화가가 죽으면 그림값이 오른다. 이 현상은 라이프스타일 건축 게임인 <심즈>에도 반영된다.


문학의 저작권은 사후 70년이 지나면 만료된다. 하여 한국어 번역을 거치지 않은 19세기 영어 원서를 페이퍼백 기준으로 300페이지에 3달러, 1000페이지에 8달러에도 구입해봤다. 무려 한국에서, 물론 달러 오르기 전에.



34th 스트리트의 메이시스 백화점, 중심의 중심의 중심


그림은 소유주가 있어도 사진으로 또는 미술관에서 함께 볼 수 있지만, 문학은 널리 읽혀야 하므로 적정선에서 가격 제한이 이루어지는 걸까. 거장이라고 불리는 현대의 인기 화가들이 당대에는 굶주렸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부자들은 업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화가를 고용하여 그리게 하거나, 가치 있는 그림을 재빨리 알아보고 헐값에 사들일 것이다. 개츠비의 위대한 라이프 스타일을 21세기형으로 재현한 <가십걸>의 척 배스, 블레어의 소울메이트인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우리는 책을 쓰지 않아. 책에 나오지."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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