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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브루클린 브릿지 스냅 촬영

삶의 질이 달라졌던 여행 타이밍과 기록의 완성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첫 여행에서 탐욕스럽게 헤매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와 준 수많은 보물들, 비밀의 정원과 아기자기한 서점들, 핼러윈 퍼레이드와 새벽 지하철의 좀비들, 지치고 힘이 들 때 곁에 있어 준 프레타망제 들통커피와 스타벅스의 2달러 커피, 우연히 찾아간 브루클린 선셋파크에서 보는 <자유의 여신상>뷰와 뉴저지에서는 한 폭에 담기는 어마무시한 맨해튼뷰. 그 모든 행운에 감사했지만 인간의 욕망이란 끝이 없다.


뒤늦게 <가십걸>을 보고 눈이 높아진 나머지, 내가 발견한 수많은 아름다움과 진리를 뒤로 한 채 내가 얻지 못한 장면들에 집착했다. 그러니까, 나는 어떤 목표가 눈에 밟히면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야 그것이 한이 되고 컴플렉스가 되어 종국에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특히 자기 자신에게 큰 피해를 주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인내하고 인격 수양을 해서 부족한 나를 극복하는 것은 일단 소기의 목표 달성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목표를 완전히 포기하고는 자기완성을 이루기 힘들 것이다.



브루클린 브릿지 스냅 화보, 생활한복


뉴욕에 다시 갔다. 첫 여행도 어디까지나 자유여행이긴 했지만, 뉴욕에서 보낸 22일이 완전한 자유 의지의 결과는 아니었다. 다시 미국에 가는 일정은 훨씬 복잡했다. 그러기를 원했다. 겁 없이 새 도시를 탐색하는 한편, 길을 잃을 정도로 너무 멀리 가지는 않고, 뉴욕으로 돌아왔다.


뉴욕에서 한숨을 돌린 이후로는 좀 더 과감하게 움직이려고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예정된 지역에서, 연달아서, '심야버스 타기'라는 미션을 완수해야, 마지막 국내선 항공편을 탑승할 수 있는 나만의 <무한대 미국일주>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뉴욕에 돌아왔을 때, 내가 찍을 풍경도 중요했지만 내가 찍힌 완전한 사진도 있어야 했다. 첫 여행의, 혼자 또는 친구와 찍었던 셀프 화보가 '거의 모든 것의 킬짱'의 프로토 타입이긴 했지만, 그간의 셀프 화보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들이 있다. 셀프 화보는 어떤 의미로는 결코 화보일 수 없는 사진이다.



브루클린 브릿지 스냅화보, 이브닝 드레스


프로터치가 항상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다. 이번에 섭외한 포토그래퍼 선생님은 도시의 스냅 촬영에 이미 통달하셨다. 그러나 스타일리스트인 내가 아마추어 모델인 나 자신을 지켜보려면 거울을 통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사진작가님의 금 같은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는데, 거울 볼 시간이 어디 있겠나. 한 장이라도 더 찍어야지. 저 멀리 보이는 맨해튼 건물의 윤곽이 잡히는 만큼, 내 얼굴을 스쳐간 머리카락이 만들어낸 빗살무늬도 잡힌다. 그럼에도 피사체임에 충실했던 이 사진들은 걸작이다.


내가 찍은 사진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어서 더 통쾌하다! (일단 이 정도의 카메라를 가져본 적이 없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그러니까 나는 내가 북 치고 장구치고 촬영까지 한 콘텐츠들을 자랑하는 것에 익숙하지만, 한 발 물러서 보면 언듯 완벽(?)해 보이는 그 연출 안에 담겨있는 여러 사람 몫의 노고가 겹쳐 보여 삭신이 쑤신다. 게다가 일인다역의 결과물은 대체로 완벽하지도 않다. 협업이라는 것은 섭외와 보수까지 책임져주는 기업에 고용되거나, 그런 기업을 창립하거나, 진짜 셀럽이 돼야 가능한데 그렇다고 1인 기업이라는 한계를 긋고 그 밑에 나를 쑤셔 넣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 이유는 없다.



브루클린 브릿지 스냅 화보, 이브닝 드레스


이제는 완벽이란 단어 자체가 지긋지긋하다. 그럼에도 내게는 약간의 도움닫기가, 저 '절정'의 순간이 필요했다. 뉴욕을, 그것도 새삼스럽게 21 세기에 와서, 아마도 인스타그램 때문에 다시 주목받는 브루클린 브릿지를 두 번째로 완전히 정복한 30대 여행덕후 한국언니. 이로써 뉴욕 사진의 한을 풀었다. 정신적인 차원에서 해방감을 크게 느꼈다. 프로필 사진으로의 유효기간도 끝난 지 한참이지만 이 결과물이 없었다면 팬데믹과 그 후를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대로 30대를 보내버렸었다면, 그대로 2019년을 보내버렸었다면, 정체불명의 콤플렉스를 안고 고통스럽게 버티고 있었겠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바디 프로필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요즘 사람들, 가끔 과하다 싶은 장면도 있지만 당사자에게는 필요한 의식일지도. 셀프로는 나도 과하게 찍어보기도 했지만 어차피 이후로 모든 사진에 목숨 걸지 않게 됐다.



브루클린 브릿지 스냅 화보, 생활한복


여전히 못 담은 풍경이 아른아른하다. 떠나온 여행지들의 기록되지 못한 추억들이 안타깝고 그립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못 나온 사진을 웃어넘길 수 있게 되었다. 이 경지를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꼭 '뉴욕 스냅'을 찍어볼 것.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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