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즈 사강의 편지들
다행히 테네시 윌리엄스가 여기 있고, 어떤 장소를 사랑하게 만드는 건 바로 사람들이지. 뉴욕은 대단히 덥고 습해. 불쌍한 플릭은 사진 찍히고 인터뷰하고 심지어 온종일 영화 촬영을 하기도 해. 미국 언론은 그녀의 애정 생활에 열광하지. -90p
아니 에르노 입문작이기도 한 <얼어붙은 여자>를 선물해주신 레모 대표님을 도서전에서 우연히(?) 만나 프랑수아즈 사강 입문작이 될 <인생은 너무도 느리고 희망은 너무도 난폭해>를 구입했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청소년기에 만나 청년기 내내 진한 우정을 나눈 베로니크 캉피옹에게 보내는 편지들로 이루어진 이 책은 두 번의 도서전 관람을 함께한 정은(파랑나비) 작가님과의 커플책이기도 하다. 레모의 다른 대표작인 <얼어붙은 여자>는 호영(에린) 작가님의 소환으로 함께 읽었던 커플책이기도 하다.
테네시 윌리엄스(아직 안 읽음)와 장 폴 사르트르(아직 안 읽음)를 만난 사강(이제 막 읽음)이 부럽지 않다. 장강명 작가님의 <책 한번 써봅시다>에 등장했던(아닐 수도 있음) 번역되지 않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미국여행기>에 대한 감질나는 갈망(원서는 너무도 느리고 밀려있음)도 조금은 해소가 됐다.
뉴욕은 지저분하고 정신없지만 다시 가고 싶고(물론 나는 '파리 쇼크'가 더 기대된다!) 플로리다는 미국 사람들에겐 쿠바처럼 느껴지겠지만 (한가한) 외국인 관광객에겐 그야말로 미국미국하니까. 아직 젊다못해 애기애기한 사강의 감성에 녹아든다.
사강 입문작에서 밀려난 <슬픔이여 안녕>을 비롯해 다른 작품들도 부지런히 읽겠지만 외전(?)으로 입문한 것도 행운이다. 왠지 모르게 진입장벽이 있었던 작가와 급속도로 친해졌고 작품 밖 책연도 깊어졌다. 레모의 책을 더욱 주시해 볼 예정이다.
오드리는 내게 예비교양과정에서 공부하고 사랑에 빠지라면서 그 모든 게 내 나이에 맞는 일이라고 하더라. 그의 상식은 정말이지 성가셔. -40p
하여튼 필리프는 스물네살이고 문학을 비웃지.
사강은 멀리 있어. -46p
플로리다는 분홍 새우 색깔 자동차며 상어, 냉장고, 그리고 모든 게 있는 진짜 미국 영화를 찍는 것 같아.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일광욕을 하고 있어. -58p
만약 그렇다면 빨리 돌아와, 내가 돌봐줄게.
그렇지 않더라도 빨리 돌아와. 네가 없으니 지루하단 말이야, 얘, 미치겠어.
네가 나를 보면 아마 변했다고, 아주 많이 이상해졌다고 생각할 거야 소설이 나를 정화했어. -82p
네가 돌아오면 술을 곁들인 멋진 지성인의 저녁 식사를 하자. 벌써부터 기뻐. 다만 식사 10분 전에 내가 내 머리칼을 쥐어뜯을테니 너도 나의 불안, 공포를 함께해줘야 한다는 점만 빼고. -108p
나만의 방식으로 영화 블로깅을 하다 시나리오를 쓰다 오래 쉬었지만 블로깅에 대한 열망과 습관이 쌓이고 쌓이다 어느 시점에 폭발했고 지금은 그 폭발 후의 온기에 의존해 더 큰 '폭발이라면 폭발'을 준비하고 있다. 계획은 냉정한 행위이기에 열정은 계획할 수 없다. 계획 없이 열정의 순간을 마주했던 청년기의 '성취 없던 경험'을 어떻게 토해낼 수 있을지 체력을 고려하며 계획하지만 때가 되면 알아서 터져나올거라 믿는다. 누구도 계획적으로 구토를 하지는 않기에 나올 기미가 없다면 나올 때까지 무언가를 무한리필해서 먹는(읽는) 수 밖에.
곧 등장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와도 제대로 눈이 맞았다. 정주행할 작가들이 늘어났다. 번역서가 폭증하고 있는 이 작가들(뒤라스, 사강, 리스펙토르)을 특히 주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