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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Aug 15. 2024

셀럽이 되고 보자, 일단

우성은 인플루언서이기도 하고 인플루언서가 아니기도 하다. 영화과 학생 때부터 차곡차곡 모아둔 영화 리뷰는 요령 없이 이 블로그 저 블로그에 흩어졌으나 온라인 갤러리 형식의 인스타그램에 안착하고부터 승승장구했다. 처음에는 영화적으로 구성하지 못했다. 심지어 우성의 계정은 지금도 영화 전문이 아니다. 영화 한 편의 리뷰를 작성할 때는 스틸컷을 사용하지만 그렇게 작성한 게시물이 전체의 25%를 넘지 않는다.


우성에게는 쿼터제가 있다. 주제도 25% 이하로 배분하고, 특히 자신의 얼굴은 반드시 25% 이하로 배분하며 그 비율을 초과해도 되는 사진은 국내외 여행에서 직접 촬영한 풍경이나 인테리어다. 그것이 그녀가 최적화된 인스타그램 계정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라면 비결이었다.


한국의 블로거들은 일종의 고시 형식을 통과해 인플루언서 혹은 브런치 작가, 브런치 주제 크리에이터라는 타이틀을 성취한다. 일종의 등단 시스템이라고 할 수도 있다. 모호한 경계 속 애매한 인기보다 확실한 정체성을 부여한다. 브런치의 경우 구독자나 조회수가 절대적이진 않다. 가장 대중적인 브랜드의 블로그는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다만 별도의 차별화 시스템이 없는 인스타그램의 경우 팔로워의 수, 그보다는 계정주의 역량에 따라 광고를 진행하거나 브랜드의 앰버서더가 된다.


"자기가 잘하는 걸 엄청 잘 포스팅해서 그 주제의 퀸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런 분들은 이미 학자나 기자일 거 같은데?"

"맞아, 특히 브런치의 경우 출간작가, 교수도 많고 전문 기자도 있지."


말이 나온 김에 강유는 그동안 궁금했던 부분을 확인했다. 우성은 최적화된 인스타그램 계정 외에도 준최적화 상태로 어쩌다 한 번 포스팅을 해도 키워드를 잘 잡으면 상위노출이 가능한 블로그를 보유한 데다, 브런치의 최고 레벨이라고 할 수도 있는 브런치 영화 분야 크리에이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니는 언니가 안 나온 여행 사진을 더 많이 올리잖아?"

"글, 정보 위주일 때는 스틸컷 여러 장으로 해결이 되는데 인스타는 원래 글 플랫폼이 아니잖아."

"언니가 나온 사진이 더 인기 많지 않아?"

"하지만 예쁜 사람도 맨날 자기 사진 올리면 자뻑 같고, 지겹거든. 아무리 좋은 사람이래도."

"첫인상이 좀 그렇지. 아는 사람이어도 질리지만."

"맞아, 특히 첫인상이 별로야. 아, 얘는 셀카로 처바른 애."


복선의 관심사는 역시나 셀피였다. 복선은 셀피를 빨리 올리고 싶은 욕구와 셀피를 보다 자연스럽게 배치하고 싶은 욕구, 무엇보다도 셀피로 도배하지 않고 전신샷과 음식 사진 등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서 관종처럼 보이지 않고자 하는 자기비판적 관종의 욕구 속에서 갈등해 왔다. 이 분야의 권위자인 우성에 따르면 이와 같은 갈등은 매우 합리적이다. 다만 복선에게는 주제가 없었다.


"복선아, 너도 드라마 리뷰나 영어공부를 포스팅해봐."

"사실 연초에 블로그 메뉴 설정하고 내가 공부했던 책 리스트도 뽑았다?"

"뭐야. 그럼 쓰기만 하면 되잖아."

"맞아, 쓰기만 하면 되는데 안 써."

"너무 완벽주의자야?"

"그건 아닌데 추진력이 딸리는 것 같아."


우성이 오랫동안 관찰한 바에 의하면, 기존의 얼짱 셀럽들은 상당수가 퇴화했다. 여전히 수만에서 수십만의 팬을 거느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치열하게 공구나 광고를 하지 않는 자기만족적 셀카 계정은 더 이상 관심을 얻지 못한다. 이미 2년 전부터 그런 공갈빵 계정의 공감수가 폭락하는 것을 목격해 왔고, 우성 자신의 공감수가 일취월장하기 시작한 1년 전부터는 알고리즘의 농락으로 성실한 계정도 타격을 받았다. 최근 3개월 동안 우성의 공감수도 다시 정체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팔로워는 더 이상 늘지 않는다. 하지만 비슷한 계정의 정체는 더 오래되었다. 오히려 우성이 좀 더 일찍 자리 잡고, 좀 더 일찍 정체되는 바람에 피나게 노력해서 2차 전성기가 잠깐 왔던 것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내가 특정 브랜드 인플루언서 타이틀에 도전하지 않기도 했지만, 마케팅 용어로의 인플루언서는 온라인 광고, 홍보를 대행하는 개인이야. 난 아니지. 나는 광고, 홍보를 목적으로 제작하고 싶지 않거든."

"형식적인 직함도 그렇지만, 언니는 크리에이터랑 더 맞는 거 같아."

"맞아. 그렇지만 모든 창작자에게는 팬이 필요하지. 여기에 포인트가 있어."


우성이 가장 불편하게 여기는 용어는 인플루언서도, 작가도 아닌 팬이다. 그러니까, 타인에게 인플루언서나 작가, 심지어 평론가와 같은 부담스러운 호명을 듣는 건 차라리 괜찮은데 우성이 온라인 친구 내지는 동료로 여기는 사람들이 제삼자에 의해 팬이 되어버리는 것은 차원이 다른 모욕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우성 자신이, 단지 팔로우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팬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좋아하는 배우, 감독, 작가님들은 맞팔로우를 안 해주셔도 상관없고, 좋아요나 리스토리만 해주셔도 성덕이 된 느낌이야. 심지어 그들의 팔로워가 거의 없어도 나는 그들을 일방적으로 좋아할 수 있지. 문제는 내가 그만큼 미쳐있지 않은 사람들이 나를 팬 취급한다?"

"그런 사람도 있나? 스타병?"

"온라인에서 최초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설득의 심리학자*나 동기부여 강사라면 애초에 팔로우도 안 해."

"아, 그 사람들 가스라이터 같아."

"이런 '일타 강사'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솔직히 이단 종교 같은 느낌마저 들지만**, 내가 비교분석하는 대상은 그런 '팔이피플'이 아니야. 예술가들."

"아, 크리에이터?"

"그렇지. 작품활동하시는 작가님이되 생활인들. 우리, 혹은 그들 중에 롤링이나 톨킨은 아직 없잖아?"

"우리와 그들의 뉘앙스가 다를 것 같아."

"우리라 함은 나를 포함해 전반적인 창작자들을 말하는 건데 온라인 활동은 나도 많이 하는 편이고, 그들이라 함은 종이책처럼 오프라인에 나름 증명 가능한 활동이 있어서 국가 공인 예술가 같은 느낌이랄까. 인스타는 취미로 하는 '진짜' 작가님들? 약간 '너도 내 독자니?' 느낌으로 대하는 느낌? 그런데 오히려 인스타에서도 활발하신 분들은 절대 안 그래. 이 세계의 암묵적인 룰을 아시니까."   


우성은 팬이 되기 싫어서, 스스로 팬을 자처하는 스타 대접에 감사하면서도 가시방석일 때가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스타라면 얘기가 좀 달라지는데, 이미 스타와 팬의 관계를 초월한 찐친, 혹은 찐인친이라 부르는 친한 온라인 친구들의 경우 스스로를 팬으로 호명하기도 한다. (물론 제삼자가 그런 호명을 한다면 그 제삼자를 차단할 수 있음주의) 만약 우성에게 팬심을 표하는 온라인 친구가 있다면 '나는 너의 스타'라는 마인드로 팬 서비스를 하기보다는 최대한 온라인 친구의 본분에 충실하려 한다. 애초에 슈퍼스타보다 인플루언서가 급부상한 이유도 이런 것들이었다. 모든 것이 변질되었을 뿐. 하지만 언제나 가장 무서운 건 동네스타였다. 동네에서 가장 잘 나가는 언니.



(계속)





*심리 마케팅학자 로버트 B. 치알디니(Robert B. Cialdini)의 <설득의 심리학(Influence)>의 원제를 패러디한 표현

**볼프강 M. 슈미트, 올레 니모엔, 강희진 옮김, <인플루언서>, 미래의 창,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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