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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Aug 22. 2024

내가 왜 그런지 알고 싶어

신은 공평하다는 말에서 위안을 얻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일단 신이 있어야 하고(있나?) 있다면 신에게 전지전능함이 있어야 하는데(있나?) 그렇다고 해도 반드시 공평하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신은 변덕스럽다는 말에 더 이끌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신을 신으로 만드는 것은 인간성의 부재, 즉 인간이 아님이다. 강유는 불가지론자이긴 하지만 신화 속에서 신들이 사랑하고 질투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이 버겁다. 자기 감정 때문에 인류에게 피해를 주는 신이라니. 그런 걸 좋다고 추앙하다니. 각 종교의 유일신은 그보다는 초월적 존재다. 독실한 종교인들은 각자의 신을 인정하면서 무신론자에게 배타적이다. 대부분의 신자가 다른 신을 믿는 사람과는 함께 살아도, 어떤 신도 믿지 않는 사람과는 절대 같이 살 수 없다*고 한다.


강유는 모임을 주도하는 리더형 인재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편이다. 자신이 리더형 인재라는 생각은 별로 해보지 않았다. 오랫동안 속으로만 간직해 온 리더욕구와 자연스럽게 장착된 장녀의 마음이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사람들이 얘기하는 정형화된 K장녀는 아니다. 강유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 어떤 개념을 형성한다면 한발 물러나야 한다.


그게 무엇이든, 많은 사람이 동시다발적으로 하는 얘기는 자신의 현실과 들어맞았던 적이 없다. 평범하게 지적이고(그게 가능해?) 리드하되 겸손하고, 그런 건 잘 모른다. 그런 사람들은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하거나 결과적으로 내숭을 떠는 사람들이었다.


이 생각을 말로 내뱉지는 않는다. 타인의 심리가 읽히는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 이것이다. 당사자는 자기 심리를 모르는데, 먼저 간파하고 심지어 표현까지 해버린다면 당연히 그 사람에게 반발심이 생긴다. 스스로 깨닫게 될 때까지, 어쩌면 평생이 걸릴 수도 있고 그걸로도 부족할 수 있지만, 내버려 두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너무 내버려 두는 것이 디폴트가 되어버렸다.




우성이 완벽한 디자인에 집착한다면 복선은 완벽한 자신의 비주얼에 집착한다. 이들은 이 시대의 진정한 완벽주의자일까. 강유는 우성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스크롤해서 1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본 적이 있다. 우성에게도 일단 올리고 싶은 충동이 있음에도, 얼마나 피나는 노력 끝에 여기까지 왔는지 그 역사를 되짚어본 것이다. 복선은 자기만의 기준이 확고하며 그로 인해 널리 인정받기 힘든 고집이 있다. 하지만 스스로 깐깐함을 어필하는 그녀의 허술함은 반전미가 된다. 똑 부러지게 자신감을 표현하는 동시에 너무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투명하게 발산한다. 사실 후자는 본인의 의도가 아니다. 자기만 모르는 일종의 시스템 효과다.


“나도 남들이 보면 예쁜 척하는 표정이야?”


복선이 허를 찔렀다. 그들은 빙수가 녹는 것도 잊고 우성의 휴대폰으로 우성이 즐겨찾기한 인스타그래머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우성은 셀피의 빈도가 너무 높은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즐겨찾기 해제를 한다고 했다. 셀피를 자주 올리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시그니처 표정이 있다. 일단 셀피를 많이 찍어본 사람이라면 사진이 잘 나오는 각도와 방향, 입꼬리의 위치를 몸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너는 일단 정면이나 얼짱각도가 거의 없어.”

“아, 그치. 얼짱샷은 나도 오글거리니까.”


대답이 늦어질수록 곤란해질 가능성이 커지기에, 강유가 순발력을 발휘했다. 우성은 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은데, 무슨 말을 하면 지적이 될까 봐 입을 사리고 있었다. 우성이 보기에 복선의 사진은 해상도가 함량미달이다.


“근데 복선아.”


강유의 목소리가 낮고 투명해졌다. 강유는 언제부턴가 귀에 쓴 말을 유혹적인 목소리로 하게 되었는데, 그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을 것이다.


“아, 언니. 이거 심각한 거지?”

“넌 도대체 무슨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거니?”


강유는 그냥 솔직하게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사실 우성도 그게 너무도 궁금했었다. 우성도 초창기 휴대폰으로 필터 가득 넣어서 찍었던, 10여 년 전 셀피 무더기를 클라우드에서 발견했지만, 2024년에 복선처럼 사진을 찍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필터와 노필터, 뷰티카메라 어플의 티 나는 보정지수는 항상 논란이 되고 있다. 복선의 셀피는 그 모든 논란을 초월한 저세상의 분위기가 있었다. 정말 못 그린 그림에는 못 그렸다는 말도 할 수 없는 법이거늘.


”많이 이상해?“

”다른 사람들 사진이랑 너 사진이랑 같이 봐봐.“

”난 잘 모르겠는데.“

”뭐, 일단 나는 그게 궁금했어. 뭘로 찍으면 그렇게 되는지.“


어쩌면 복선이 다루기엔 요즘 휴대폰 카메라가 지나치게 섬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복선은 적당히 요즘 휴대폰을 적당히 사용하고 있지만 사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듯 하니, 알려줘도 본인이 깨닫기 전까지는 달라지는 게 없을 것이다.


우성은 한참 힘이 넘치던 시절에 친한 온라인 친구들에게 피드 관리하는 법을 알려주기도 했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발전이 없었던 사례가 바로 복선과 같은 스타일이었다. 뭐가 문제인지 아예 이해를 못 하고, 이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는 사람. 속으로는 자기가 이미 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완벽한 피드를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탈피를 거듭해 온 우성이 최근에는 오히려 사진의 단정함을 일부러 내려놓았다. 그건 피드에서 보이는 계정주의 성격을 통해 사람이 안 붙는 분위기를 알아냈기 때문이다. 차라리 복선처럼 티 나게 허술한 피드가 나을 수도 있다. 타깃이 누구냐에 따라 피드의 완성도를 조율할 수 있다면 일부러 허술하게 구성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능한 예쁘게 꾸미고 싶을 것이다. 타고난 감각과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최선의 최선을 다해도 충분히 예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계속)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엄지영 옮김, <신을 죽인 여자들>, 푸른숲,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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