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기 싫은 날 1
저녁마다 두 번째 커피를 마시고 기운을 쥐어짜서 야간자율학습을 하듯이 책을 읽고 조금 쉬다가 누워도 꼬박꼬박 10시간씩 자는 연휴를 보내고 있다. 연휴를 줄이려다, 그러니까 연휴에도 (덕질이 아닌) 일을 하려다가 실패하고 씁쓸하게 덕질이나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다른 무엇보다도 체력이 문제였다.
어제는 산책하고 기분좋게 연재를 마감하고 홀가분하게 산책하고 집에 와서 야간자율학습을 했다. 그러고 나니 아침이 사라졌다. 아침이 아니어도 되지만 모닝루틴-커피와 독서 혹은 독서계획 세우기를 할 때 정신이 말짱했으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을 적어도 5일째 하고 있다.
그렇게 잤는데, 물론 이 잠은 지난주 작가축제 기간에 일정소화를 하느라 혹은 설레서 잠들지 못한 시간을 벌충하는 휴식이지만 그래도, 매일 10시간씩 꼬박 일주일을 잤고 아침저녁 독서 시간에 각각 피자 한 판은 족히 태우고도 남을 칼로리를 소모하고 뭐라도 쓰기 때문에 충분히 쉬는 시간을 가지는 데도 역대급 다크써클이 생겼다. 피곤하다는 의미인지 햇빛이 부족하다는 의미인지 아마 둘 다겠지.
앉아있는 것 까지는 그렇다쳐도, 아니 앉아있는 시간도 길어지면 힘들고 덕질보다는 다른 잡다한 휴대폰 활동 때문에 손목은 늘 편치않지만 안하던 산책을 오래 또는 자주 하고나면 이미 은퇴했다고 착각하는 발목은 금방 비명을 지른다. 다른 곳은 몰라도 발목은 이미 20년 전에 50대에 진입한 것 같다. 자세한 건 솔직히 알고 싶지 않다. 어쩌면 아직 너무 더워서 기다려온 산책 시즌이 생각보다 버거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외출할 이유가 없으면 외출하기가 귀찮고 한번 작정하고 나가면 집에 오기 싫을 때가 반복된다. 어느 쪽이든 습관을 들이면 괜찮을 수도 있다. 매일 나가고 들어오기를 반복한다면, 혹은 장기여행을 떠나서 매일매일 그날의 분위기를 느끼고 관찰하러 나가야 한다면(물론 여행중에도 거의 안 나가고 뒹굴 수 있고, 특히 장기여행을 할 때는 그런 날을 하루쯤 챙겨야 한다.)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어제 베이직 코스로 산책을 했기 때문에 오늘은 나가고 싶은 마음도, 나가기 싫은 마음도 끔찍하지 않고 적당하다. 늦게 일어났다는 게 가장 치명적이지만 원래 추석은 저녁 이후가 피크 아닌가.
이 시점에서 음력 날짜는 당연히 헷갈리는데 5년 전 추석연휴를 시카고에서 시작했다. 양력으로 올해와 같은 주말부터 연휴였다. 지금은 인스타그램에 9월 15일이라고 기록된 그날이 원래는 미국 시간으로 9월 14일 토요일(!) 저녁이었다. 첫날의 잠 못드는 2층 철제침대에서 좁지만 훨씬 쾌적한 2층 중의 1층 원목침대로 이사한 뒤 야경을 보러 전망대에 갔다. 올해도 추석을 맞아 시카고 여행을 떠난 한 블로거는 고층의 숙소에서 자다깨서 야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내가 도착한 2019년 9월 13일 저녁에는 야경을 감상할만한 에너지가 없었고, 그냥 다음날 일찍 일어나고 싶었는데 먹을 것도 제대로 구하지 못해서 (뉴욕이라면 거침없이 돌아다녔겠지만 시카고는 처음이라 쫄았다.) 물과 쿠키로 허기를 달래다 잠을 설치고 ‘일출’을 보러갔다. 그러니까, 전망대가 아닌 그라운드(?) 야경을 보긴 봤다. 같은 날 이른 새벽에, 밀레니엄 파크에서.
그때를 생각하면 눕자마다 잠들어서 오후 늦게까지 일어나기 싫다고 몸부림을 치는(?) 요즘의 상태가 그리 나쁘지만도 않다. 다시 그런 여행을 한다면 (못할건 또 뭔가! 인간적으로 시카고는 우아한 숙소에 드는 비용이 너무 치명적이다.) 그때 부족해질 잠을 미리 자두어야 한다. 설마 5년 전에 부족했던 잠을 지금까지 자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그후로도 잠들지 못한 날이 훨씬 많았던 것 같은데?
아무리 9월 초에 매일 나갔다와서 매일 잠을 설쳤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매일 10시간씩 잘 일인가. 하다가도, 다음 여행을 위해 미리 자둔다고 생각하면 괜찮다고 할 수밖에. 괜찮다. 나는 또 갈거니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