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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Sep 25. 2024

다시 여행갈 수 있을까

산책하기 싫은 날 2

하기 싫은 마음을 하고 싶은 마음이 이기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시카고 5주년의 다른 의미는 시카고를 마지막으로 공항에서 등을 돌린 지 5년이 되었다는 것. 귀국하고 여행빨이 조금 식었을 때 새해를 맞이해 콘텐츠 제작과 더 많은 여행을 결심하고 파리 가이드북으로 (근미래의) 책샀다그램을 예고하는 포스팅을 했다.


그때는 책리뷰를 하려고 책 사진을 찍어 올린 것이 아니었다. 나는 영화 소개하는 유튜브를 준비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흐지부지됐다가 인스타그램에 영어원서 인증샷을 올리다가(지금의 관점에서 이건 콘텐츠가 아니다.) 미국드라마 리뷰하는 블로그를 ‘먼저’ 시작했다. 리뷰를 하다 보니까 영화도 들어가고 책도 들어가고 생각해 보면 영화 리뷰하는 블로그는 20년 전에도 하고 있었다.


싸이월드 영화 폴더 Animovie*에서.




내년에 <위대한 개츠비>의 100주년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 (이벤트 콜?) 그런데 2025년은 위대하신 개츠비 100주년이기만 한 게 아니다. 별로 성실하지 않았으나 결국 성덕이 될 거 같은 영화 블로거(인 나의 부캐?)의 20주년이기도 하다. 그나마 좀 더 활동폭이 넓은 리뷰어라는 페르소나를 소환했지만 실제로는 2004년부터 시나리오 독학을 했고 (클럽도 다니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2년 후에 장편시나리오를 엎은 대신 단편소설을 탈고했고 (왈츠도 추기 시작했고!) 미취업 졸업생으로 멘붕이 와서 좀 이상한 짓을 하고 다녔지만 (살사도 추기 시작했고!) 밥을 끊지 못하듯 책을 끊지 못했다. (밥 진짜 좋아함)




브런치에 연재하고 있는 중편소설은 13년 전에 반쯤 혹은 그 이상 쓰다가 완성하지 못한 장편소설과 닮았다. 스물아홉에 쓰던 소설의 주요 캐릭터가 모두 30대였는데(제목에도 ‘30대’가 들어간다. 그때 시중에 나온 삼십 대가 들어간 책을 다 샀다.) 마흔둘에 쓰고 있는 소설의 주요 캐릭터도 모두 30대다. 졸업하기 직전에 춤바람이 나서 서른이 되기 직전까지 내 인간관계는 애송이 대학생과 30대 직장인이 거의 전부였고 서른을 맞고 나서야 나보다 젊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서른부터 서른다섯까지는 그야말로 현생의 폭풍을 맞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책(교재) 쓰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일을 하다 보니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고 뭘 기획하고 쓰는 행위에 부대끼기도 했고 그걸 정면돌파하느라 창조관광공모전 같은 시키지도 않은 프로젝트를 하느라 더 많이 기획하고 쓰다가,


그래서 어떻게 됐더라?




퇴사하고 미국에 갔다. 뉴욕은 훨씬 전부터 그리고 있던 큰 그림의 일부였고 뉴욕에 다녀온 뒤 뉴욕이 더 좋아져서 3년 후에 다시 갔다. 이번에는 시카고를 포털 삼아 숫자 8자 모양의 미국일주를 했다. 공항에게 등을 돌린 건 내가 아니다. ‘추석’에 파리를 가려고 계획한 그해가 2020년이었으니까, 이 여행은 ‘내’가 취소한 게 아니다. 그럼에도 여행뽐뿌는 점점 식었다.


시카고 2주년이 되던 2021년 가을에는 미친척하고 부산에 갔다. (더 가까운 곳에도 갔다.) 그야말로 총 맞은 것처럼 40대를 맞고 나서 입이 터졌는데, 그러니까 만 39세 생일을 기념(인스타 고정게시물!)하는 에세이를 쓴 직후에 미국여행기를 장편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결국 그 원고를 가지고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고 그 후로는 ‘쓰는’ 계획이 다른 삶을 압도했다. 여행을 다니는 동안 애초에 왜 여행을 다니게 됐는지 잊고 살다가 팬데믹을 맞고서야 기록하는 본캐(?)를 되찾았다. 여전히 여행은 소리 없이 다가와 사람을 흔들어놓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희미한 기억 속의 석류나무**처럼 활기를 잃은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는 시카고 5주년이었기 때문에, 브런치 2주년이기도 했다.




작년에 제주 (또는 이탈리아) 여행을 허술하게나마 계획하고 있었는데 경조사를 챙기다가 흐지부지됐다. 요약할 수 없는 인간이지만 완벽주의(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에 가까운 집착과 대충(이데아는 이데아일 뿐이기에 실속만 챙기겠다는 마음)이 공존하는 와중에 시간은 계속 간다. 허술했지만 더 이상 허술하지만은 않은 20년 차 블로거, 어떤데?


(계속)




*Animovie는 당시 휴대폰의 대명사로 기능했던 브랜드명에서 가져왔다.

**석류나무는 진짜 시골집에 있는 진짜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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