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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Sep 23. 2024

자랑스럽고 자조적인 욕망

이야기는 우성에게로 돌아간다. 우성이 없는 자리에서도. 이제 막 기록하는 재미를 맛보고 욕망의 싹을 띄운 복선과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강유의 글주머니가 만났으니 우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둘 사이에서 ‘우성의 말’에 출처 표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니까, 우성이 한 말이라는 것을 서로가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그들은 우성이라는 고유명사가 암묵적으로 포함된, 우성이 실재하지 않는 우성의 말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블로그 관련된 글 위주로 보니까 비슷비슷한 얘기들만 보이는 거 있지? 요즘 사기꾼 폭로 글이 많더라고. 지목당한 계정 들어가 본 적도 있는데, 우회적으로 저격하는 글을 보니까 내가 아는 사람들 얘기 같아서 좀 그래.”

“내가 벤치마킹하거나, 나아가 어느 정도는 교주로 섬기고 있는데 그런 사람조차 내 이상형과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으니까 납득이 안 되는 점이 있을 수 있는 것 같아.”

“언니도 봤어? 우리 같은 거 본 거야?”


수제맥주를 각자 두 가지씩 맛보고 취기가 전신으로 퍼지고서야 연휴가 끝났다는 게 실감 났다. 주말에는 개인적인 프로젝트가 있었고 우성이 저녁 초대를 할 경우 시간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참석 여부를 결정했는데, 지난주에는 둘 다 미리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기에 단톡방에는 추석 전 목요일 이후로 별다른 대화 내용이 없었다.


“물론 우성이 얘긴 아니겠지. 우성이는 유료 콘텐츠 없잖아.”

“전에 유료 게시물 쓰긴 했는데, 나중에 공모전 출품하려고 전면 무료화했다고 들었어.”

“전자책도 냈나? 우성이가?”

“아니, 그냥 브런치북만 계속 발행하는 거 같던데.”


​강유와 복선이 자기만의 주말을 보내는 동안 우성은 평소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한가한 극장을 지키다 다른 친구를 수소문해서 맛집을 취재했다. 이어지는 추석연휴에 강유와 복선은 침묵의 공동작업을 했고 우성은 밀린 원고를 편집하거나 넷플릭스로 드라마를 봤다.




우성은 수익화했다는 낚시로 수익화를 하는 부류의 사기꾼들과 진심으로 스터디를 하는 재테크 인플루언서가 그라데이션되는 어중간한 지점을 응시하다 이제는 습관적인 의리 하트만 누르고 스크롤을 내렸다. 한때는 나름 괜찮은 비문학 독서계정인 줄 알았던 사람들조차 반쯤 사기꾼인 그런 계정들과 교류하는 것을 보고 어지러웠던 적이 있으나 어차피 모두가 모두와 관계 맺는 형태를 전부다 알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오히려 지금 우성의 신경을 긁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다. 자신이 ‘글 쓰는 사람‘인 것이 너무너무너무 뿌듯한 사람들. 그걸 어떻게든 티 내려고 안달 내는 사람들. 브런치 장수생과 장수합격생에게는 순수하고 무한한 축하를 보낸다. 다만 사람들이 자신을 ’수식‘하는 말이 ’글쓰기‘와 관련이 될 때 유난히 오글거리는 워딩을 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글쓰기라는 자랑스럽고 자조적인 욕망.

물론 스스로 비하하는 워딩은 더 꼴 보기 싫다.




우성은 미드를 보다가, 겸손한 미국 중산층 엘리트가 취미생활에 대해 그냥 찔러본다는 식으로 말하는 걸 보고 참 겸손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한편 미드에 등장하는 프랑스인의 클리셰는 그런 겸손함이 결여된, 문화적 자부심이 넘쳐흐르다 못해 교만한 경우가 많아서 놀라웠다.


한국사람이라면 본인이나 직계가족이 인간문화재가 아닌 이상 문화적 자부심이 넘칠 이유가 하나도 없지만(우리 중에 증조할머니가 작가였던 사람이 있나? 있으면 인정.) 오히려 와인이나 골프처럼 중산층에게는 베이직한 취미를 엄청난 교양인 것처럼 과시하는 별종들이 많다. (사실 진짜로 사람들이 알만한 ‘위인’의 후손이라면 자기 입으로 과시할 수 없는 홍길동 병에 걸려서 속이 뒤틀리기 쉽다.) 과시하지 않음으로써 과시할 정도의 아비투스에 도달한 사람은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계급을 형성할 정도의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이다.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는 문인들이 주목받았(을 것으로 보이)던 시대가 있었다. 물론 2024년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 책 보는 사람은 영화 보는 사람보다 훨씬 적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걱정과 함께 ’책 읽는 사람‘, 나아가 ’책 쓰는 사람‘에 대한 미묘한 질투 같은 것들이 너무도 만연하다. 미국에서도 너드가 힙해 보이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헤르미온느 그레인저와 마크 저커버그가 등장한 2000년대로 짐작된다.) 한국에서는 범생이 컴플렉스와 범생이로 보이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여전히 존재한다. 여전히.


그 컴플렉스 위로 텍스트힙이 겨우 까꿍 하는 수준이다. 그러니까 이런 것. 그냥 글 쓰는 게 좋아서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데 무언가를 증명해야 할 것 같은 압박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동시에, ’글 쓰고 있어요.‘라는 말만 해도 ’잘난척하냐?‘는 눈빛이 날아올까 봐 이걸 사람들이 소화할만한 언어로 해독하느라 매번 임기응변을 쥐어짜 내야 한다.


우성의 자격지심일 수도 있다. 달리 원고료를 빌드업하지 않았기 때문에 글 쓰는 게 메인 캐릭터인 존재에 대해 남모를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본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의혹은 타인에 의해 우성 자신에게 꽂히기도 했다. 달리 내세울 것이 없을 뿐인데. 마치 ‘어 그래 너 작가셔?’라는 식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피할 방법도 없는 것이다. 유일한 방법은 글을 ‘안’ 쓰는 척하거나, 진짜로 ‘안’ 쓰는 것인데 그런 삶은 살아본 적도 살 생각도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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