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복선은 밤마다 한 시간 이상 노트북 앞에 앉아서 미리 사진을 깔아 둔 임시저장 포스팅을 손질했다. 오랜 시간 강유를 독점한다는 기분을 만끽할 여유는 없었다. 극장은 피크타임과 아주 썰렁한 시간을 밀물과 썰물처럼 반복할 뿐이었다. 강유 역시 초과근무에 축나는 체력을 조금이라도 비축하기 위해 손님이 없을 때는 간식을 먹으면서 고요를 충전했다.
강유는 틈만 나면 블로그 방문자수를 확인하는 복선을 힐끗 보면서 우성을 생각했다. 우성과 복선, 그들과 비슷한 또래인 친동생들, 멀어져 버린 친구들과 후배 녀석들, 여전히 친밀함은 그대로인데 각기 다른 시절에 육아 전선에 뛰어들어 이제는 묘하게 입장이 달라진 절친들, 싱글인 언니들, 싱글이었던 언니들, 소식이 끊기고도 한참인 언니들을 생각했다. 강유는 내버려 두는 사람이었다. 관찰하고 상상하되 개입하지 않는다.
만약 강유가 닮고 싶거나 이기고 싶은 존재가 있다면 강유는 그 당사자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그 사람을 분석할 수 있다. 이건 어쩌면 길고 풍부한 짝사랑의 경험이다. 심지어 미움마저도 관심이 없는 대상을 향하지는 않는다. 그녀의 레이더 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것을 그녀의 분석 서비스에 내주어야 할 것이다.
요즘에는 온라인, 소셜 미디어에서 검색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지? 강유는 엄청난 IT천재는 아니지만 인터넷을 활용한 뒷조사와 셜록 홈즈의 정신을 90년대부터 결합한, 나름의 얼리어답터였다.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에서 천재 해커 여주인공이었던 리스베트 살란데르에게 반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리스베트가 구상을 당하는(?) 동안 강유도 비슷한 행위를 했을 테니까.
우성은 영감을 주는 콘텐츠와 관련한 문장을 하루종일 머릿속에서 굴리다가 정해둔 집필시간에 쏟아내는 재미로 삶을 버티고 있다. 우성이 얼핏 눈치챈 강유의 취재력은 블로거 정신만 장착하면 엄청난 잭팟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특히 강유처럼 흐름에 맡기는 스타일이라면 옆에서 아무리 쫑알거려도 소용없다. 자기 댐에 물이 차서 둑이 터져야 한다. 그때가 되면 그만 쓰라고 쫓아다니면서 말려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검색되지 않는 기록에 회의적이긴 하나, 강유가 던져주는 단서들을 모으다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강유가 가끔 털어놓는 ‘친구가’로 시작하는 불륜 고백 같은 경우 디테일을 문서에 언급하면 일종의 범죄 고백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 강유 혹은 강유 친구의 부적절한 관계들, 강유 자신 혹은 강유가 사랑한 사람들 혹은 강유의 연적들의 특이한 행위들은 그대로 기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강유가 그 많은 소설을 리뷰도 안 하고 먹어치우는 이유는 자기 이야기를 숨길 수 있는 서술 방식을 연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가끔 우성은 우성 자신과 다른 강유의 취재열기를 불구경하듯 바라보며 상상에 빠졌다. 우성 자신이 아무런 대가 없이 리뷰를 쓸 수 있는 것처럼 기록은 그저 쓰는 사람의 치유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리뷰라면 이왕 리뷰로 태어난 김에 창조주의 블로그 조회수도 올려주면 좋겠지만 리뷰가 아니라면, 그냥 잡담이라면, 혹은 주요 검색어를 일부러 블라인드 처리한 논픽션 소설이라면, 소문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면. 가십과 비밀의 차이는 뭘까? 굳이 말하자면 없다.
연휴의 끝을 앞두고 성실함과 기묘한 작별을 해야 하는 복선은 힘이 솟구치는 동시에 나른했다. 어쩌면 내일은 잠을 설치거나 아예 늦잠을 잘 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퇴근 준비를 했다.
“언니는 내일 늦게 출근해도 되는데 한 잔 할까?“
앞치마를 벗고 있던 강유에게 달콤한 초대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복선이는 피곤할 텐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걸 보니 빼박 장녀있가, 하는 한탄이 이어졌으나 초대만큼은 기쁜 소식이었다.
“넌 피곤하지도 않냐?”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후련하지 모.”
복선은 오히려 이 끝남을 즐기고 싶었다. 연휴를 겨냥해 블로거라는 새 역할에 집중하려고 작정했으나 정작 글쓰기는 거의 틈새작업이 되어버린 알바집중구역을 지난 기념으로. 연휴 내내 참아온 맥주 한 잔이 간절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