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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Sep 12. 2024

로맨스와 권력

셀럽의 조건은 지속적으로 자기를 알려내고 그게 타깃에게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 운이 개입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현재는 알고리즘, 약 20년 전에는 팬덤이 그 마지막 한 수를 제공한다. 개인은 당사자나 홍보 담당자여도 완전히 예측할 수 없다. 어느 정도 답이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때조차 통제 불가능한 변수가 많다. 예를 들면 스캔들이나 모함.


어그로 마케팅, 더티 마케팅을 일부러 하는 경우도 있다. 당사자와 기획사의 콜라보인 경우도 있고, 미드 <가십걸>에서 진짜 셀럽(!)과 비밀연애를 하고 있던 전남친과 그의 새여친을 위해 자신이 가짜 여친 역할을 물려받는 세레나처럼 어쩌다보니의 연타로 계획에 없던 열애설을 터뜨리기도 한다. 시상식 노출 사건은 이제 마케팅 포인트도 되지 않는다. 물론 클릭베이트는 되겠지만, 메이저 언론이거나 개인 블로거는 각 플랫폼의 정책을 준수하기 위해서라도 모자이크 처리를 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입소문, 바이럴 마케팅 차원일 홍보전략이다.


라고 정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 더티 마케팅의 포인트를 포스터로 만들거나 공식 석상에서 언급할 수 있는 건 너무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마추어 셀럽의 세계에선 그런 것조차 다양하게 활용된다. 페이스북에서는 클릭베이트를 잔뜩 깔아 둔 계정들이 아직도 바퀴벌레처럼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단지 조회수 폭등을 위한 어그로 마케팅이나, 이슈모음집 같은 걸로 계정주가 셀럽이 될 수는 없다. 우성은 영화 고르는 ‘안목’과 그걸 가진 ‘나’를 브랜딩하고 그 정체성을 바탕으로 서로 좋아하면서 협력할 수 있는 온라인 친구를 늘려왔다. 복선은 미친 듯이 떡상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한편 그냥 ‘얼짱’처럼 의미 없는 댓글과 무차별적 사랑을 받기에는 지적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크다.


복선은 ‘예쁘다’는 말을 충분히 적립하지 못했을지라도 그게 일종의 족쇄란 걸 깨닫기 시작했다. 예쁜, 특히 예쁨 받고 싶은 여성에게 예쁘다는 칭찬을 함으로써 그루밍하는 세상의 시선에 불편함을 넘어선 불쾌함을 느끼고 있다. 강유는 얼짱이나 몸짱으로 소문이 나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나름 이 구역(범생이들의 학교)의 패셔니스타였다. 여자친구들은 패션이나 (특히) 뷰티에 대한 자문을 구하러 왔고, 아마도 남자로 추정되는 일부 학생들은 강유를 (마치 힐러리 로뎀 클린턴에게 하듯이) 끌어내리려 하는 듯한 루머를 생산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걸 전해준 친구가 더 못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동성 친구와 경쟁을 붙여놓고 여성들 스스로 자멸하게 만드는 모종의 음모의 대물림이 있었을까.


심지어 강유는 전남친에게 그런 말도 들었다. 누나와 너무 친한 형들이 많아서 문어발 연애를 하는 줄 알았다고. 그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강유는 스캔들을 전략적으로 상쇄할 수 있었다. 스캔들이 너무 많으면, 스캔들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물론 어떤 세계에서는 그러다 말 그대로 이상한 여자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강유는 친한 남사친의 규모 이상으로 친한 여사친 그룹, 그것도 여럿의 모임이 있고, 주로 여성들과 대화하며(일단 벡델 테스트 통과!) 여성들이 이성애가 아닌 자기 되기를 바탕으로 권력을 가지는 것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투입했기 때문에 흔히 눈엣가시(?)가 되는 남미새는 아니었다. 그렇게 찍혀본 적이 이미 있었다. 청소년기와 영어덜트기를 통틀어 강유는 가는 곳마다 찍히는 포인트가 있었지만 그 경험을 바탕으로 안 찍히는 방법에 통달했다. 왜 안 찍혀야 하는지 자문해 보면, 인기욕구 이전에 인기를 저해하는 요소를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기와 같은 여성이 권력을 가져야만 진짜로 세상이 조금 바뀔 거라고 약간 자만했다.    


강유는 여성인 자신의 자유만큼이나, 다른 여성들의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했다. 어쩌면 마미이슈일지도 모르겠으나 그게 이성애적 인기보다 중요했다. 그런데 약간 어쩔 수 없는 (타고난 혹은 훈련된) 강한 이성애적 욕망도 공존했다. 강유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말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내가 엠마 보바리다*!’였다. 엠마를 파멸로 몰고 간 욕망은 로맨스에 대한 로망, 소설(속 주인공)처럼 사랑하고자 하는 욕구였고 그 점에서 엠마나 엠마를 내세운 픽션인 <마담 보바리>의 실제 모델이 된 사건의 주인공이나 저자인 플로베르는 어떤 가상현실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현실세계와 소설로 구축된 세계를 연결하는 중간 세계? 소설에 대한 무의식적 냉소와 더불어 제대로 숨기지 못해 더욱 도드라지는 치정 취향을 가진 복선 역시 누구보다도 엠마 보바리를 닮았다. 강유와 다른 점이 있다면 복선은 실행에 옮길 용기나 결단력이 없었다. 그와 동시에 특히 방탕한 소설 속 인물이나 논픽션 작가 들을 돌려 까는 악취미가 있었다. 강유가 보기에는 자신을 포함한 현실의 인물들보다 까이는 인물들이 더 순진했다.




우성은 복선의 추석플랜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불타오르다 번아웃되는 블로거가 한둘이어야지. 어디 블로그뿐인가. 모든 분야에서 시작하고 한 달 뒤에도 같은 페이스 이상으로 하는 사람은 10%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볍게 시작해서 재미를 붙인 사람이 점점 더 타이트하게 성장한다고 봐야 한다.


​“복선이 블로그 쓰고 있대?”


강유가 카톡창을 열고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우성이 현생으로 소환했다.


“아니야, 복선이 말고 내 동생, 친동생.”

“아, 추석 때 오냐고 물어봐?”

“얘는 무슨 설날에 들어온 소개팅을 추석 때 잡냐.”


​강유는 나쁜 남자를 사로잡기엔 너무 순정파인데(그걸 남들은 모른다.) 착한 남자를 무슈 보바리처럼 만들 수 없었다. 그러고 싶지 않기도 하고 그런 남자에게 끌리지 않았다. 단정하고 안정적인 만남은 원래도 거의 없었지만 그마저도 멀리한 지 오래됐다. 그런 면에서는 동생들이 자기를 닮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지금은 거의 금욕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복선은 확고한 일부일처제의 수호신이고 우성은 적어도 남성에게는 이성애적 욕망이 없다. 지극히 이성애 취향의 다자연애를 고백할 수 있는 친구들은 아니었다. 특히 복선이 우성의 성적지향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 둘의 불협화음에서 축나는 건 언제나 강유의 멘탈이었다.  



(계속)





*귀스타브 플로베르, 김화영 옮김, <마담 보바리>, 민음사, 2000 중 작품 해설(5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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