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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Sep 09. 2024

셀럽의 조건*

​원고 작업이 일찍 끝나면 우성은 그들의 직장이기도 한 극장에 와서 영화를 보거나, 퇴근시간에 맞춰 강유를 데리러 와서 저녁식사를 한다. 한 번은 마중 나온 우성과 막 퇴근한 강유가 만나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는 순간 상영관에서 복선이 나온 적도 있다. 복선이 서운한 티를 내지는 않았으나 강유는 그 마주침에 불편함을 느꼈다. 복선이 언제든 근처에서 나타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하자 차라리 셋이 만나는 걸 기본으로 빠질 사람이 빠지는 게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오늘은 복선이 자발적으로 빠졌다.


추석 연휴에 추가근무를 하려면 미리 블로그에 임시저장을 하고, 마음 편하게 주말을 보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단톡방에서 복선의 재결합 취소가 확정된 이후 우성과 강유는 복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전화로 짧게 약속하고 퇴근시간에 로비에서 만났다.


“전엔 어떻게 그렇게 겁도 없이 무대에 올랐을까?“

”지금은 겁이 많아졌어?“

”막 두렵고 떨리고 그렇진 않은데, 익숙하거나 금방 익숙해질 거 같은 공간이 아니면 적응하는데 너무 에너지를 많이 쓰게 돼.“

”그건 나도 그래. 전에는 무대에서도 안 하던 긴장을 지금은 객석에서 한다니까.“


팬데믹이 갈라놓은 시간 때문인지, 나이에 따라 강도가 미친 듯이 수직상승하는 소셜프레스 때문인지 강유도 우성도 타인과 공유하는 시공간이 갑자기 죽도록 부담스러운 순간들이 있다. 기분이 너무 좋아도 문제였다. 넘쳐흐르는 도파민에 정신을 못 차리고 안 하던 실수를 한다거나, 다음에 할 일을 떠올리지 못해 한참을 서성이기도 한다. 어쩌면 전에도 그랬는데 기억을 못 하는 걸까?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은 관종이었다.




물론 관종이 다 똑같지는 않다. 불특정 다수의 선망하는 시선이나 순수할지는 몰라도 별로 핵심적이지 않은 칭찬들, 특히 이성애적 관점에서 이성들의 호감을 얻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고 그런 관심은 단호하게 차단하는 사람이 있다. 복선은 자기만 모르는 외모 인정욕구가 아직 다스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욕구, 그러니까 이 결핍을 70대가 되어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남성 일반 또는 특히 헤테로섹슈얼 남성들의 무해하지만 살짝 지나친 관심을 즐기는 편이다.


강유는 그런 것에 좀 질색하는 편이다. 그러니까, 그녀 자신도 그랬던 적이 있고 일명 호모소셜, 즉 여성들이 무리를 지을 때(원래 이 단어는 남성들의 흡연실 토크 같은 그들만의 리그를 의미하는 듯하다.) 인기를 얻는 타입은 아니었다. 다만 강유는 자신이 호감을 가진 게 아닌 남성이 관심을 보이는 걸 모욕으로 취급했다. 그런 관심에 거부감을 표현하지 않는 여성들을 질투했었다. 그보단 그런 관심(들)이 시너지를 일으켜 인기가 많아 보이는데 정작 그 인기 속에서 무력해지는 당사자의 나약함 같은 것에 분노했다. 그때는 그 당사자들이 그 상황을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했다.


”전신사진이 다른 콘텐츠보다 조회수가 높았었는데 지금은 안 그래. 다른 사진들이 따라잡았어.“

”전신사진이 많은데 그게 자연스럽고 반응이 좋으면 부러워?“

”이게 반응이 좋으니까 가끔 올리는 거지, 막상 올리고 나면 좀 민망해. 너무 반응이 많아도 그렇고, 반응이 없으면 더 민망하고. 뭐라고 해야 하나, 이걸.“

”몇몇 사람들에게 풍족한 사랑을 받거나 본인이 사랑에 빠져있을 때 에너지의 흐름이 바뀌나 봐. 그런 생각해본 적 있어?“

강유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의지가 되는 존재가 되기까지 그와 같은 존재를 너무도 원했으나 현실적으로 거의 만나지는 못했다. 딱 한 번, 직장의 여자 선배이자 상사가 벤치마킹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고 덕분에 그 후로 직장생활을 겨우 좀 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성은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은데 인맥도 인프라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예술계로 뛰어들어 이도저도 아닌 정체성에 열등감이 폭발했다. 자신을 자연스럽게 잘 드러내거나 혹은 (마치 독자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골방작가처럼) 두문불출하거나 하는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을 잘 활용하는 작가들은 매력적이다. 그런데 팬데믹 5년 차에 그 틈새(?)도 포화상태가 된 것 같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독자를 확보한 작가들도 이미 너무 많고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이 비집도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에도.  


여전히 스레드에서 글벗을 찾는/찾은 사람이 있고, 브런치에는 날마다 새로운 작가들이 등장하며 세상에는 아직도 우성이 모르는 수많은 작가와 영화인, 예술가들이 있다. 인기라는 게 달이 차고 기울듯 기복이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밀어주고 빛내주는 것도 중요하다. 우성이 소셜미디어를 공략했던 이유는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인 동시에 실력이 넘쳤(?)기 때문이다. 자기를 쫓아다니면서(?) 뭘 써달라고 하는 사람을 만났던 게 벌써 20년 전이다.


그때 그 청탁을 받은 건 그녀가 그 사안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었고 그 ‘가장 잘‘의 범위란 관계자 모두의 모든 정보와 인사이트를 더해도 그녀가 혼신을 다해 겪고 있던 최선의 영역을 채우지 못할 정도였다. 그에 대해 책 한 권을 써도 모자랐겠지만 그때는 그것 말고도 할 일이 많았다.


​아마 그 시절에도 어렴풋이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기록을 남겨야 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성은 영화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치면 그녀도 꽤 오랜 경력을 가진 셈이다.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한, 요약할 수 없는 기나긴 이력서와 경험담.




글을 발행하기만 하면 알아서 찾아와서 읽어주고 퍼 나르고 밝은 눈을 가진 누군가에게 도달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 환상은 우성이 가끔씩 커리어의 정점을 찍을 때마다 여지없이 무너졌다. 일이 많을 때도 본인이 욕심껏 자원했거나 들어오는 일을 다 받아서 일정이 가득했을 뿐 누군가가 그녀에게 일을 주기 위해 줄을 선 적은 없었다. 지금도 구독자수의 허수성을 생각하면 종종 아찔함이 몰려든다.


하지만 꼭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도 억울한데 그나마 잘 아는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계속 스스로를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 끔찍하게 불편했다. (그동안 그러지 않을 수 있었던 특권이 있었거나.)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시간이 지나고 (소셜프레스를 감당하며) 조금씩 나이가 들다 보면 내가 참 선무당이구나,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깨달음이 오는 한편 경험을 통해 습득한 지혜를 나누고 싶어 하는 자신에 대해 ‘내가 뭐라고’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자기 검열에 빨간불이 들어오면 다른 노이로제가 함께 기승을 부린다. 다른 사람들이 ‘너 따위가’라고 생각할까 봐 두려워진다. 늘 그렇지는 않지만 그런 순간이 있다. 스펙이 없거나, 있어도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거나, 네이버에 인물등록이 된 지금도 검색어인 이름 석 자가 자동완성이 되지 않거나. 동명이인이 먼저 유명해지거나.


(계속)




*산책덕후 한국언니, <셀럽의 조건> 브런치북의 제목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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